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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처럼 주고받던 다이어트 토크는 설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어진다. “저 비만이래요.” 촬영장에 삼삼오오 모여 새로운 다이어트 비방에 대해 역설하던 중 포토그래퍼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키 크고 날씬하기로 모델 못지않은 그가 비만이라고? 무슨 아이러니한 말인가 싶었는데, 건강검진 후 의사가 경고의 눈빛과 함께 날린 최후 통첩이라고 했다. 그는 믿지 못하는 나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배 위에 살포시 올렸다. 볼록하고 말랑한 무언가를 만지고 나니 “네가 무슨 비만이냐”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겉보기엔 호리호리하지만 속에는 거대한 지방 폭탄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저근육형 비만, 대사형 비만으로 분류되는 마른 비만은 체중만 따지면 정상 또는 저체중에 가깝지만 근육량이 매우 적은 유형을 가리킨다. 마른 비만은 일반 비만과 마찬가지로 당뇨, 고혈압, 심장 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고, 혈관 내 콜레스테롤 수치와 중성지방 수치도 높다.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하지만 외형적으로 도드라지는 부분이 없어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내가 일반 비만인지, 더 주의가 필요한 마른 비만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우선 체중계가 보여주는 몸무게는 잊자. 마른 비만은 근육이 매우 적어 체중이 아닌 허리둘레나 체성분 분석을 통해 그 여부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기준은 성인 여성의 경우 체지방률 30% 이상에 허리둘레 33.5인치 이상, 성인 남성의 경우 체지방률 25% 이상에 허리둘레 35.4인치 이상. 이 방법이 어렵다면 일명 눈바디를 활용하자.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이 많을 땐 큰 근육 위주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 복부 근육이 더 많이 빠지는데, 그 결과 배가 많이 나오는 체형으로 변한다. “식사 후 복압이 올라간 상태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식후 배가 많이 나오면 복부 근육 부족으로 인한 마른 비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오의원 비만클리닉 최원철 대표원장의 말이다.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볼록 나온 ‘거미형’이나 영화 속 캐릭터 ‘ET’ 같은 체형이 마른 비만을 가진 사람의 체형과 유사하다.

마른 비만의 문제는 비단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다.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이 많아 나타나는 인슐린 저항성 문제, 칼로리 소비가 적어 발생하는 요요 현상, 체지방 과다로 인한 여성호르몬 증가 등 감정을 더 예민하고 우울하게 만들며 이는 더 나아가 생리 불순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비만이 야기하는 질환의 위험은 일반 비만과 동일하지만, 근육이 적은 만큼 가속도가 붙는 셈이다.

만병의 근원으로 꼽히는 스트레스도 마른 비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는 근육이 쉽게 빠지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식으로 꾸준히 언급되는 간헐적 단식 또한 무관하지 않다. 체지방이 쌓이는 경우는 공복 시간이 길어질 때인데, 칼로리 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위기 상황으로 인지한 몸이 체중 감량을 최대한 막기 위해 지방을 최후의 보류로 남기고 근육을 먼저 분해한다. 결국 칼로리가 몸에 들어오면 최대한 이를 저장하기 위해 지방 축적률이 증가하고, 같은 음식과 식사량이라도 축적되는 체지방 양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칼로리 섭취가 과다해 생기는 비만과 달리 마른 비만은 긴 공복 시간과 적정량 이하의 칼로리 섭취 등 생활 습관이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에도 비만과 마른 비만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일반 다이어트는 체지방 감소가 목표지만 마른 비만은 근육량 증가까지 더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운동 구성은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를 병행해야 하며 유산소운동을 일주일에 적어도 3회, 회당 30분 이상 하고 근육운동은 주 2회 정도 하면서 점차 강도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규칙적인 식사도 다이어트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하루 세끼 끼니를 거르지 않는 규칙적인 식사를 기본으로, 특히 아침은 반드시 먹어 몸의 신진대사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과는 인바디 검사같이 체성분 분석을 통한 지방과 근육 비율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다년간 운동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마른 비만을 가진 사람의 특성상 혼자 다이어트를 이어나가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룹 운동을 통해 의지를 함께 불태울 파트너를 두거나 단기 플랜을 세워 성취의 기쁨을 자주 맛보는 것이 롱런의 비법이다.

“최근 많이 먹었더니”, “나이 먹으면 다 그렇지” 하는 등의 안이한 핑계는 이제 버려야 한다. 배에 둘러진 줄자의 눈금을 단 한 칸씩이라도 줄이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필요한 때다. 앞으로 펼쳐질 혹독한 다이어트의 시간을 새로운 내가 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채우자. 세상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내 몸뿐이라는 진리가 당신의 다이어트에 좋은 러닝 메이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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