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랑비에 옷 젖듯 무너지는 멘털 코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각성이 나의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 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어느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우리는 종종 주변을 이루는 것들, 그리고 그 주변에 쉽게 휘둘리고 영향받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헤르만 헤세의 말로 보아, 정신이 극도로 하강 나선을 그릴 때, 같은 현상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1백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우리는 꽤 자주,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닌 사사로운 일에도 마음이 우주와 지하를 오간다. 기력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고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작고 사소한 스트레스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 일상을 견딜 힘을 점점 약해지게 만든다. 멘털 코어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가 흔들리면 우리의 사고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이건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극도로 심각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흔히 ‘우울증’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우울증은 현대인 10명 중 4명꼴로 지니고 있을 정도로 이제는 흔한 질환이다. 왜 유독 현대인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걸까? 과거에도 정신 질환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따로 명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신의학자 크리스토퍼 레인의 <만들어진 우울증>에서는 과거엔 지적하지 않던 행동이나 반응이 지금에 와서 병으로 간주되고 있진 않은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단적인 예로 사회 공포증이 정식 장애로 등재된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은 정신과학 역사의 분기점으로 일컬어졌다. 1968년에 열거한 1백80개 질환 카테고리에서 무려 1백12가지의 새로운 장애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장애의 정의는 모호하고, 범주별 경계 역시 뚜렷하지 않아 단순한 신체 반응도 병으로 명명하며, 발견이 아니라 ‘발명’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우울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게 만들었다.
2 침대를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
부정적인 감정을 병으로 간주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로소 이에 대한 치료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0리나 되는 안개를 헤칠 기력도 없이 걷는 것 같은 마음으로 생을 유지하던 사람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우울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로, 정신의학자들은 이 증상의 원인을 뇌의 회로와 분비물에서 찾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것이 뇌 전전두엽의 기능 이상으로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로토닌이 감소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의 뇌는 배측 선조체와 전전두피질(세로토닌은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분비물이다), 그리고 측좌핵이 서로 교감하고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사고 전체를 지휘하는 전전두피질이 아주 능숙하게 모든 것을 관리하지만, 불안과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지면 충동과 반복적인 행동을 담당하는 배측 선조체와 측좌핵의 발언권이 세지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털이 무너지는’ 경우에 나쁜 선택을 하게 되고,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사고 회로의 불통으로 인한 결과다.
3 몸과 마음의 유기적 연결
뇌는 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몸으로 하는 일들이 뇌의 신경화학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의학계는 ‘바이오피드백(생되먹임)’이라는 치료법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원리인데, 몸이 하는 일에 따라 뇌의 활동이 달라지는 생체 구조를 적용한 것이다. 뇌는 심장박동수와 호흡수, 근육 긴장 등 수십 가지 신체 활동을 감지하고 행동하게끔 지시한다. 겁을 먹거나 흥분하면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지고, 좌절을 느끼면 턱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보자. 일차원적으로 보았을 땐 뇌의 반응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모든 감정과 사고는 일방이 아닌 쌍방 통행이다. 즉 몸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감정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우울감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미주신경의 활동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심장박동이 빠른 상황에서 속도를 잘 바꾸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피드백을 적용해보면, 이 떨어져 있는 미주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몇 가지 간단한 행동이 도움이 된다. 다들 한 번쯤 차가운 물로 세수했을 때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껴봤을 터. 이 행동은 간접적으로 미주신경을 자극해 심장박동수가 느려져 불안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평온해진다. 또 자세를 바꾸면 신경호르몬 수준이 변화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다리를 넓게 벌린 상태로 서거나 앉는 자세가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증가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은 뇌의 상승 나선을 가동하는 가장 단순 명료하고 효과가 큰 방법이다. 안면 근육을 크게 움직이는 미소 짓는 행위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 미소를 짓는 것,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안면 근육의 수축을 감지하면 ‘무언가에 행복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모 희극인의 이야기가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4 성실은 나의 힘
보고 싶은 것이 없는데도 TV를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배고프지 않은데 음식을 먹은 경험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우리가 거기에서 전혀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데도 실행하기 때문에, 그 행동은 종종 뇌의 하강 나선 움직임을 초래한다. 우울감을 지닌 사람일수록 이 행동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언제부터 그런 행동을 시작했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습관은 우리 뇌 속 배측 선조체에서 특정한 패턴을 활성화해 만들어지는데, 우리가 매번 같은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뇌 속에 더욱 분명하게 새겨진다. 바꿔 말하면 배측 선조체의 뉴런들이 더 강력하게 발화하는 것이다. 일단 생겨난 패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한번 익히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아쉽게도 우리의 뇌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무력화하는 습관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울해지면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억지로 음식을 먹는 등 습관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더 습관대로 행동하고 싶어진다. 계속해서 나쁜 습관에 사로잡혀 일종의 쳇바퀴에 갇히게 된다. 우울에 젖으면 이런 상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느끼게 되는데, <우울할 땐 뇌 과학>의 저자 앨릭스 코브는 이를 탈피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습관을 다른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 쉽게 말해 버릇을 새로 들이는 것이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 우리 뇌는 오래된 행동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단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나비효과처럼, 나쁜 습관에서 벗어난 아주 사소한 행동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잠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보고, 그렇게 일어난 김에 소파에 앉아보고, 앉은 김에 탁자에 놓인 책을 집어보길. 이렇게 순차적으로 행동해 뇌가 재배선될 때까지 억지로라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보자. 천천히 내쉬고 다시 깊이 들이쉬자. 필요한 만큼 반복하라. 길고 느린 호흡은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좋은 습관을 점차 재배선하다 보면, 우리는 이 행동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것이 바로 ‘성실’이다. 성실하게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우리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나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준다. 외부의 궂은일에도 내가 들인 좋은 습관을 유지하하는 것. 이것은 결국 무너지는 멘털 코어를 붙드는 힘이 된다.
5 감정의 바다를 부유하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물밀 듯 이는 때가 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순간들이다. 뭍에 있지만 번번이 바다에 와 있는 것 같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런 감정은 보통 계획 밖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황하고, 때때로 이 감정에 매몰된다. 단언하건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 이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들여다보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그러다 문득, 이 실체 없는 불안의 수렁에서 헤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들이쉬는 숨에 불안을 가득 껴안다가, 내쉬는 숨에 그것을 다시 흘려보낸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잔뜩 들이밀었지만, 결국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오래된 경구로 귀결된다. 아주 소소한 움직임으로 마음에 해진 자국을 영영 남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