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환경’을 말할 때, 보통은 생태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술가에게는 스튜디오, 그리고 영감을 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를 이우환 미술관 레지던시의 환경이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빈 캔버스만 가져왔고, 아를과 이우환 미술관은 제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좋은 환경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를에 도착했을 때는 이우환 미술관에서 큰 전시회를 열기 전이었는데, 가장 먼저 알리스캉(Alyscamps)을 방문했어요. 눈앞에 거대한 고대 로마의 공동묘지가 펼쳐져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 풍경을 보자마자 밤의 소멸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이 장소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첫 그림은 알리스캉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장의 그림이 다른 장으로 이어졌고, 신비로운 보랏빛 하늘을 그려 넣는 계기가 됐죠. 저는 독일의 낭만주의 풍경화가인 프리드리히의 스타일로 하늘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수평으로 펼쳐진 풍경 중간중간에 수직적 요소가 더해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표현 기법입니다.

지난 1년간 꼬박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 방법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저는 원래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섬세하게 덧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캔버스의 일부가 비칠 정도로 색을 아주 얇게 칠하는 기법입니다. 이러한 표현법은 제 그림의 옅은 갈색으로 거칠게 칠한 영역에서 관찰할 수 있어요. 최근 작품을 보면 보라색, 베이지색, 노란색은 유화물감을 사용하고, 그 위에 과감하게 파스텔을 문지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전에 기억과 향수를 주제로 작업했다면, 밤의 소멸을 표현하기 위해 덧칠한 물감 층을 표면으로 끌어내기 위한 테크닉을 탐구했습니다. 물감을 켜켜이 쌓아 올릴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특징을 가진 파스텔로 터치를 더해 붓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았습니다.

작업할 때 특히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가장 큰 고비는 보라색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점이에요. 매우 강렬한 컬러라 다루기가 더욱 어렵게 느껴졌죠. 제가 생각한 해결책은 컬러의 톤을 낮추거나, 주변의 다른 색을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레지던시에 머무는 첫 달에는 걱정도 무척 많았고, 난관에 직면하는 순간이 계속됐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만의 표현 방법을 찾아가면서 작가로서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미니멀리즘 아트를 선보이는 한국 미술의 아이콘이자 세계적 거장인 이우환 작가에게 헌정하는 레지던시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과는 다른 결이 느껴집니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서 순수한 물질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특히 1970년대 작품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림에 색이 스민 모습을 보고 매우 아름답고 시적이라 느꼈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지금도 아를 이우환 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하고 있고, 또 여기서 전시를 앞두고 있어 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는 저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처럼 압도적 인상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으로 파스텔을 과감하게 문지르고, 캔버스를 파괴하기 위해 부쉈으며, 매트한 파스텔을 활용해 두꺼운 층으로 쌓아 올리는 작업 과정을 거쳤어요. 그 결과 스스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캔버스 위로 두껍게 쌓인 물성이 만들어내는 절대적 존재감이랄까요. 레지던시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고착된 테크닉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고, 이 새로운 방식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탐구해나갈 생각입니다.

당신에게 이우환 작가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우환 작가는 존재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혼자 작업하기보다는 미술학계와 저술가, 철학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려 하는 지점이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줄 거예요. 이우환 작가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새롭게 도약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10년은 그에게 영감 받은 것을 계속 탐구해 나갈 생각이에요.

“자브릴은 우리에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독서에도 진심이죠. 예술가로서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안 카롤린 프라장(Ann Caroline Prazan, 겔랑 브랜드 문화 & 유산 아트 디렉터)

그의 그림에서 생동감을 전하는 요소는 모두 파스텔이다. 유화물감 위로 비비드한 블루 컬러를 문질러 화폭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자브릴 부케나이시의 <밤의 소멸(À Ténèbres)> 전시는 2024년 9월 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