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가장 젊은 조향사로 함께하게 되었어요. 유서 깊은 브랜드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요? 다시 생각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행운이죠! 프레데릭이 제게 직접 전화한 순간이 아직까지도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어 다시없는 영광이에요.

브랜드 간 협업은 늘 있는 일인데, 이번 아크네 스튜디오와의 협업이 유난히 화제가 된 건 신선한 비주얼과 더불어 기존 분위기와 사뭇 다르기 때문인 듯해요. 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존 분위기와 다르다는 데 동의해요. 향을 결정하는 것부터 패키지 디자인, 그리고 캠페인 촬영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시종일관 아크네 스튜디오와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코드를 그대로 유지하며 진행되었어요. 두 브랜드 모두 향유하는 바운더리가 넓으면서도 대담한 취향을 지닌 곳이죠.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개성이 상충하기보다 더욱 창의적인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시너지 효과를 낼 거란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죠. 특히 향수 보틀 아래 핑크 테두리가 마음에 쏙 들어요. 아크네 스튜디오의 키 컬러가 은유적으로 잘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이 작은 디테일이 보틀 전체를 매우 유니크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향수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특징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감상 평을 밝히자면, 마치 연인의 품 같은 달큼함이 느껴진달까요. 향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나요? 아크네 스튜디오를 상징하는 아이템인 스카프의 포근함을 떠올리며 향을 만들었어요. 매우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죠. 그런데 연인의 품과 키스라는 표현도 무척 마음에 드네요. 스카프와 연인의 품 모두 부드럽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맥락이 통하니까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은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 중 하나예요. 당신의 향 취향 또한 확고한 편인가요? 개인적으로 오리스와 미모사 등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플로럴 향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거든요. 하지만 사적인 취향으로 향을 만들진 않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이미 시장에 많이 선보인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것, 다양한 향기를 지닌 수많은 향수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어요.

아크네 스튜디오 파 프레데릭 말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퍼퓨머 중 한 명인 모리스 루셀(Maurice Roucel)이 당신의 오랜 멘토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는 브랜드의 아이코닉 향수 ‘뮤스크 라바줴’를 만든 전설적인 조향사죠. 그가 함께 일했던 곳에 합류하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듯해요. 예전에 심라이즈 클리시(Symrise Clichy)의 파인 프래그런스(Fine Fragrance) 부문 기술 조향사로 합류했을 때, 사무실이 모리스의 작업실 바로 옆이었어요. 그가 먼저 제게 새로운 향수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제안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죠. 그때 모리스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흠뻑 빠져 늦은 밤까지 자유롭고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나요. 공식적이지 않아도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제 멘토예요. 그를 조향사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무척 존경해요. 항상 겸손을 잃지 않고, 동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이거든요.

이번 협업을 진행하게 됐을 때도 그가 무척 기뻐했겠네요. 너무나요! 제가 프레데릭 말과 아크네 스튜디오의 작업을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마치 자기 일인 양 좋아해주었어요. 또 작업에 사용한 알데히드의 양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선배 조향사로서 내가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껴안아주었고요.

그간의 작품을 보면 성별에 국한하지 않고 작업에 임하는 것 같아요.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향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확실한 사실은 향에 성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예요. 향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성별을 나누는 코드를 활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향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홈페이지에 당신을 설명하는 문구가 무척 흥미로워요. “짧고(short), 정확하고(precise), 읽기 쉬운(easy-to-read) 포뮬러를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일관성을 중시해요. 조향에서 이것은 ‘읽기 쉬운(easy-to-read)’ 공식을 의미하고요. 각 성분의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공식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플로럴 바이올렛이라는 향조를 사용한다면 적절한 양을 넣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들어요. 모리스 루셀을 필두로 미셸 알메라크(Michel Almairac),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 아니크 메나르도(Annick Ménardo) 같은 전설적인 퍼퓨머들도 모두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죠. 하지만 절대 쉽지 않아요. 읽기 쉬운 공식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명료하고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거든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세계 곳곳의 자연물을 촬영한 사진이 무척 많아요. 영감을 원천을 찾아 자주 여행을 다니는 편인가요? 맞아요! 저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해 여행을 다니며 많은 영감을 얻어요. 익숙한 것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마주하고 정성스럽게 갈고닦은 장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거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토론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고요.

향수는 향기를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향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향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향수는 세상을 더욱 감정적으로 풍부하게 대하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만들어요. 저는 이 현상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어요. 향에서 제가 받은 긍정적 감정이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면서요.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향이나 스타일이 있나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식물의 잎사귀에서 나는 신선한 노트를 탐구해보고 싶어요. 프루티 계열을 조합하는 데도 관심이 많고요. 두 가지를 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과 수지 르 헬리(suzy le helly).

“사적인 취향으로 향을 만들진 않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이미 시장에 많이 선보인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것, 다양한 향기를 지닌 수많은 향수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