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을 위해 LA에 다녀온 하석진을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가 도착하기 10분 전, 평소엔 조용하던 작은 카페에 스무 명 남짓한 여자 손님들이 들어온 것은 정말이지 내 탓이 아니다. 무심코 카페 문을 열던 하석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여자들의 시선에 잠시 당황하더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천장을 보며 걸어 들어왔다.
사실 그는 연예인치고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모자도 눌러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편의점에 가서 로또 복권도 사고,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직접 중고 물품 직거래에 나서기도 한다. 연예인이 뭐 그러냐고 물으면 ‘죄 짓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고 대답하는 조금 이상한 연예인이다. 또한 그는 연기나 인기, 명성에 대한 생각보다 설거지, 로또, 그리고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찌 됐건 그의 자유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훈남을 연기한 드라마 <전설의 마녀>를 끝마치고,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요즘의 하석진은 말 그대로 ‘핫’하니까.
이번 LA 여정은 어땠나? LA는 처음 가본 거라서 틈나는 대로 많이 돌아다녔다. 휴양지보다는 도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LA에 가기 전에는 맛있는 걸 실컷 먹고 싶어서 일본에 다녀왔다.
요즘 ‘문제적 남자’가 인기다. 출연자 중 성향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들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들이라서 누구 하나를 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진 많이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편해졌다. 근데 사실 <문제적 남자>는 첫 촬영부터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퀴즈쇼에 출연한 기분이랄까?
그 프로그램에서 좌뇌와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사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좌뇌가 집중적으로 발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멍청해 보이고 싶은 남자는 없을 테니까.
지갑에서 나온 2인분의 중국집 배달 영수증을 두고 패널들이 ‘썸’의 증거물로 몰아가도 거짓말은 못 하더라. 연예인은 거짓말도 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로 거짓말을 해야 할 때는 잘할 거다.(웃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라 안 한 거다. 연애가 아니어도 이성과 짬뽕 한 그릇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양 공대 시절의 학생증 사진도 공개되었는데 상당히 훈훈했다. 당시 강의에 들어온 교수가 ‘당신은 그 외모로 왜 여기 앉아 있나’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들었다. 제대하자마자 머리에 젤 바르고 집 앞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11년 전이니까, 지금은 많이 늙었지. 그 프로그램에서 비공개로 바꿔놓은 줄 알았던 싸이월드 다이어리도 들춰냈는데, 오글거리는 한편 재밌기도 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예전의 나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지금도 일기 같은 걸 쓰나? 매일 어디에서 뭘 하고,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잤는지 드라이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사실을 나열해두는 것이 생각이나 기분 같은 걸 적어두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 나중에 되짚어볼 일이 생겼을 때, 사실의 기록만 있으면 전체적인 그림이 함께 떠오른다.
좌뇌형 인간이 맞는 것 같다. 요즘의 관심사는 뭔가? 영어 공부를 좀 하려고 한다.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인 것 같다. 그리고 2주 동안 일본과 LA를 여행하면서 쌓인 내장지방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도 많이 생각한다.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없나? 설거지. 지금도 집에 수북이 쌓여 있는데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무언가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한 명의 30대 남자로서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찾은 다음에 그것을 채우려 한다.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할 것 같나? 자유로워지는 것. 일에 얽매여 있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게 지금의 과제인 것 같다. 결혼을 늦게 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먼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값어치를 좀 더 높인 후에 하고 싶다. 지금은 싸구려다.(웃음)
막연하게나마 서른 정도에는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이루었나? 스무 살 무렵 잡지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양주를 마시는 광고 이미지를 봤다. 나도 저 정도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그 양주를 마실 수 있는 정도는 된다.(웃음) 당시의 꿈이 좀 소박하긴 했지만.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정말 어떤 운을 필요로 할 때 그 운이 찾아올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가장 필요한 운은 무엇인가? 로또 1등 당첨. 정말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을 거다. 작년 이맘때 꿈이 심상치 않아서 로또를 샀는데 5천원에 당첨됐었다. 지갑에 끼워놓고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난 거다. 꺼내 보니 딱 그날이 5천원을 받을 수 있는 유효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걸 5천원어치 로또로 다시 바꾸면서 이번에는 무조건 당첨될 거라 생각하고 별별 상상 다 했다. 결과는? 5천원어치 통틀어 숫자 세 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