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servicel - 마리끌레르 2016년 1월호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트위드 재킷, 크롭트 팬츠, 버선에서 영감 받은 굽 없는 디자인이 특징인 블랙 부츠, 스틸과 블랙 레더가 연결된 3줄의 브레이슬릿으로 이루어진 프리미에르 트리플 워치 모두 샤넬(Chanel).

self-service - 마리끌레르 2016년 1월호

블랙 캐미솔 톱 드레스 샤넬(Chanel), 레이스업 슈즈는 본인 소장품.

Self-service - 마리끌레르 2016년 1월호

비대칭 커팅이 돋보이는 베이비핑크 톱, 스팽글 장식이 독특한 블랙 팬츠, 여성스러운 앞코가 특징인 메리제인 슈즈 모두 샤넬(Chanel).

Self-service - 마리끌레르 2016년 1월호

자개를 섬세하게 장식한 블랙 시폰 드레스, 블랙 부츠, 18K 화이트 골드에 1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와 2백42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시그니처 이어링 모두 샤넬(Chanel).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트위드 재킷, 크롭트 팬츠, 버선에서 영감 받은 굽 없는 디자인이 특징인 블랙 부츠, 스틸과 블랙 레더가 연결된 3줄의 브레이슬릿으로 이루어진 프리미에르 트리플 워치 모두 샤넬(Chanel).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트위드 재킷, 크롭트 팬츠, 버선에서 영감 받은 굽 없는 디자인이 특징인 블랙 부츠, 스틸과 블랙 레더가 연결된 3줄의 브레이슬릿으로 이루어진 프리미에르 트리플 워치 모두 샤넬(Chanel).

Self-service 마리끌레르 2016년 1월호

까슬까슬한 질감의 누비 패브릭으로 만든 화이트 재킷, 오팔 컬러의 레이스 디테일 팬츠, 스틸과 블랙 레더가 연결된 3줄의 브레이슬릿으로 이루어진 프리미에르 트리플 워치 모두 샤넬(Chanel).

<안나의 눈물>에서 당신이 연기한 ‘안나’라는 인물은 성폭력 피해자를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성폭력 피해자다. 피해자를 관찰하는 저널리스트와 피해 당사자가 된 안나, 이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떤 작업이었나? 시나리오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영화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취재하던 주제의 피해자가 되는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었다. <안나의 눈물>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영화와 상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안나는 다른 주인공들처럼 남들은 모르는 대단한 비밀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마치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잔인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지를 반증하듯이.

극 중 안나는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여배우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이 역할을 어떻게 준비했나? 초반부만 읽어보겠다는 마음으로 펼친 시나리오를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끔찍한 장면이 워낙 많아서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이미 마음속으로 안나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주제와 연관된 사회학이나 인류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내 속에 내재된 공포를 잠재울 필요도 있었고, 인신매매라는 무거운 범죄에 대한 사전 지식과 감성을 내 속에 충분히 저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구적 설정이긴 해도 이 같은 험한 배역을 연기하고 싶어한 내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녀가 겪었을 격렬한 고통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의미심장한 경험이었다. 물론 촬영이 마무리됐을 때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무척 후련했지만.(웃음)

<안나의 눈물>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잔인함을 내재한 인류의 비극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파리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극도로 비관적인 결론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접한 많은 작품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움직인 아티스트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투안 다가타(Antoine D’Agata)다. <안나의 눈물>이 주는 메시지는 창녀와 마약 같은 어두운 화두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앙투안 다가타의 주제 의식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라는 인물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 예산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이 촬영 현장에서까지 이어진 탓에 완성된 영화 속의 안나는 내 의견도 많이 반영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불쌍한 여주인공이 힘겨운 상황에 처해 눈물을 흘리는 뻔한 설정은 모든 스태프가 피하고 싶어했지 만, 그렇다고 안나를 <킬 빌>에 등장할 법한 강인한 헤로인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없었다. 안나는 공포를 경험하며 무기력함도 느끼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삶을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는,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여성이다. 안나를 연기하며 그녀와 나의 직업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도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주제를 자아가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심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당신의 표현처럼 이 잔인한 세상에서 영화와 예술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예술은 인간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끌어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혹시 너무 성급한 결론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는 뜻이다. 내 인생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영화나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소설 <돈키호테>를 만난 후 달라졌으니까.

당신은 평소에도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내가 살아가는 세상 전반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변에 대한 관심은 끊은 채 단순히 개인적인 성공에만 집중하는 삶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웃음)

작품을 어떻게 선정하는 편인가? 한동안은 캐릭터나 시나리오보다 프로젝트를 보고 작품을 골랐다. 그중에는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도 있었고 망친 것도 있었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는 팜므 파탈 역할이 많이 들어왔지만 오랜 시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내게 여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는 시몬드 보부아르나 코코 샤넬처럼 현존한 위대한 여성들의 역할로 찾아왔다. 그녀들을 연기하며 그녀들의 시대를 앞서간 비전과 역사,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샤넬의 앰배서더인 당신이 직접 코코 샤넬을 연기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메종의 앰배서더가 된 이후로 캉봉 거리에 자리한 샤넬의 아파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드무아젤 샤넬이 낮잠을 자던 소파에서 잠이 든 적도 있고, 재떨이 같은 그녀의 소품을 직접 사용하기도 했다.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이런 경험 덕분이었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걸 그리 즐기지 않은 탓인지, 샤넬의 앰배서더가 된 이후로 내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모델 활동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코 샤넬 역할과 함께 폭넓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는 내게 여전히 소중한 선물처럼 여겨진다.

코코 샤넬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다워야 했던 시대에 용감하게 반기를 들고 아름다운 분노를 표출할 줄 알았던 여성.

당신에게 뮤즈나 멘토가 있다면?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좋다. 단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칼 라거펠트, 특히 그의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들고 싶다.

당신도 한 아이의 엄마다. 엄마로 보낸 삶과 세월이 여배우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노출 수위에 대한 고민을 제외하면 엄마라는 이름이 배우로서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촬영장에서의 나는 여배우고 집에서의 나는 엄마니까. 그저 나의 존재가 딸의 삶에 무게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촬영장으로 떠나는 날 아침이면 딸에게 ‘play’하러 간다고 말해 준다. 딸에게 직업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고, 일하는 엄마는 행복하다는 점도 일깨워주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은 <마리끌레르> 1월호 표지의 주인공이다. 마리끌레르의 2016년을 당신이 열게 된 셈인데 새로운 한 해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예전에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린 딸의 엄마가 되고 난 이후로 그 성향이 더 강해졌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해에는 세상의 모든 여성이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남성들을 상대로 싸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상대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