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킴은 고양이보단 강아지과에 가까운 사람이다. 먼저 다가와 안부를 묻고 짧은 질문에 긴 답을 조잘조잘 뱉어내고 그 좋은 목소리로 농담도 서슴지 않는 덕에 그가 있는 현장은 늘 유쾌하다. 이런 사람이 “이번에는 음반 활동을 안 하잖아요?” 하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을 때 “제가 하기 싫다고 했어요” 라고 대답하면 조금 더 몸을 그 쪽으로 내밀어 긴 얘길 듣고 싶어진다. 신변과 안부를 묻는 겉도는 대화 끝에야 로이 킴은 요즘 자신의 머리를 가득 채우는 일들에 대해 툭 털어놨다. 곡을 쓰지 않은 지 꽤 됐고 그 덕분에 맘이 좀 편해졌다고. 티는 많이 안 냈지만 그간 속으로 혼자 껴안고 있던 것들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듯 보였다. 못 본 새 핼쑥해진 얼굴과 어딘가 지친 기색이 그제야 아귀가 맞았다. “요즘엔 누가 물어보면 잘 지낸다고 말해요. 잘 지내는 것 같고.”
로이 킴은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안다. “이런 옷 싫어할걸요? 물론 전 좋지만요.” 기대와 똑같은 것만큼 시시한 게 또 있을까. 아직 사람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 매력이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들 것이다. 비록 그 모습이 누군가의 취향엔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로이 킴은 그런 것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 만큼 유연한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방학 가수’라고도 하던데요. 이번에 특히 더 그래요. 3개월밖에 활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바쁘게 달리고 있죠.
<뉴요커> 매거진 인터뷰는 어땠어요? 진짜 신기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서 읽으라고 시켰던 매거진이거든요. 회사와 소통이 느려서 직접 연락해서 만났는데 그게 <뉴요커> 스타일인진 모르겠지만 사진 촬영도 안 하고 커피 마시고 같이 짧은 공연 보고 점심 먹고 끝이었어요. 제 이야기는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휙 기사를 썼더군요. (한국에서는 가수고 미국에선 평범한 학생인) 제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요. 좀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읽는 잡지니까 더 좋았죠.(웃음)
여행 좋아한다고요. 좀 다녔어요? 뉴욕은 뭐 맨날 갔고요. 좀 멀리 간 건, 봄방학 때 페루에 다녀왔어요. 서울에서 벗어나면 맘이 편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서울에 도착하면 괜히 스트레스가 쌓여요. 미국에서 내가 신경쓸 건 공부니까 그것만 신경 쓰면 되잖아요. 점수가 안 나와도 알아서 털어버리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고 신경 쓸 것도 무지 많아요. 들어오자마자 스케줄표 받으니까 바로 스트레스. 좀 더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미국에 있을 때와 달리 여기선 왔다 갔다 해요. 혼자 짜증 내는 모습에 뜨끔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곤 하죠.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김상우가 1백 명 있는 거예요.
목걸이는 페루에서 산 거예요? 할머니가 준 거예요. 할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였었는데 거북이나 상아 같은 오리엔탈 소품을 좋아하세요. 제 사주를봤는데 상아가 잘 맞는다고 해서 할머니가 주신 상아 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녀요.
사주 종종 봐요? 고독하다는 얘기는 기본적으로 항상 나와요. 혼자 고민을 풀 수 없을 것 같을 때 종종 보는데 큰 영향을 받진 않아요. 결국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
스타일이 많이 변했어요. 머리도 짧아지고.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맨날 5:5로 가르마 타고 다니고 댄디한 스타일, 흔히 말해 ‘훈남 룩’을 자주 입었는데 전 싫었거든요. 원래 그런 스타일도 아니고. 이번엔 음반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하는 마음으로 바꿨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대해 좀 답답함을 느끼나봐요. 제가 지향하는 스타일이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살면서 이루어온 일들의 리스트만 보고 ‘FM적’이라는 이미지가 된 거지, 전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성격이나 생활방식도 전혀 다르고. 친한 형이 스트리트 패션과 힙합 쪽의 마스터예요. 그 형 영향을 많이 받았죠. 항상 어쿠스틱한 음악만 들었는데 어느 순간 차에서 힙합을 듣고 있더라고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새로운 뮤지션 찾아 그의 음악 듣는 게 버릇이 됐고 쇼핑도 스트리트 패션 쪽에서 쿨한 브랜드에 눈이 가요. 조금은 바뀐 것 같아요.
좋지 않아요? 다른 세계의 지평이 열리면 원래 내 세계와 만나면서 다르게 발현되곤 하잖아요. 너무 좋아요. 그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재밌고.
그중에서 꽂힌 거 있어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챈스 더 래퍼’라는 뮤지션을 찾았어요. 힙합과 가스펠을 섞는데 너무 멋있어요. 옷은 한동안 슈프림에 빠져 있었고요. 스트리트 패션의 입문 브랜드잖아요. 미국에 있으니까 더 편하더라고요. 매일 신제품이 공개되는 목요일 정시에 앱으로 바로 살 수 있었어요. 뉴욕 가면 숍도 있고요. 아직도 빠져 있어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죠. 좀 더 정리하고 얘기해야 될 것 같지만 그런 느낌의 브랜드. 팔려는 게 아니라 제가 만들어서 입고 싶어졌어요.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한 브랜드? 네. 슈프림이 대단히 질이 좋은 건 아닌데 그 질 자체도 아이덴티티로 만들어버렸잖아요. 그런 쿨한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옷에 관심이 많아졌나봐요. 원래 많았어요.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해서 옷만 샀어요. 졸업 후에 바로 가수 활동을 해서 한동안 옷에 신경 쓰기 싫을 정도로 바쁘다가 학생 신분이 되니까 다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대학원은 여전히 갈 계획이에요? 가야죠. 인생의 어느 지점엔 가겠다는 거지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둘러 준비해서 가고 싶진 않아요. 참, 사회학과로 전과했어요. 원래는 경영학교에 있었는데 거기선 사회학을 전공할 수 없거든요. 문과대학으로 넘어가려면 지원해야 하는데 허가됐다는 매일을 엊그제 받았어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와 나> 촬영으로 바빴다면서요. 한국에 오자마자 일주일 동안 라오스에 다녀왔어요. 부모님과 같이 시간 보낼 기회가 있었으면 했는데 엄마랑은 통화도 자주 하고 늦게 들어가더라도 얼굴 보고 대화할 일이 많거든요. 아빠랑은 그러지 않아서 이 방송이 좋은 계기가 됐어요. 막상 가는 게 힘들지, 가서는 어려운 거 하나도 없더라고요. 다녀와서 친구들한테 얘기했어요. “아빠랑 여행 가는 상상만 해도 어색해 죽을 것 같지만 막상 가니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 다 필요 없고 아빠 쉬는 날 맞춰서 가라”고요.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기는 거잖아요. 늦둥이라 아빠가 친구들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셔서 아빠는 그저 아빠로만 보였거든요. 일주일 같이 지내면서 아빠한테 아기 같은 면도 있고 제 또래 남자 같은 면도 있다는걸 깨달았죠.
24시간 카메라가 붙어 있는 게 불편하진 않았나봐요. 전혀요. 제작진이 최소한만 같이 있고 별다른 요구도 안 해요. 분량이 걱정될 정도였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기에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여행 경비가 1인당 하루에 10만원이었는데 라오스에서 10만~15만원이면 부귀영화를 다 누릴 수 있어요. 유럽 같은 데로 갔으면 좀 빠듯했을 텐데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제일 좋은 호텔에 묵고 모든 게 좋았어요.
앨범 내기 전에 취향이나 기호가 반영된 방송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일단 앨범 활동은 안 하는 거잖아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3년 동안 정규 앨범 세 개를 냈는데 너무 달린 것 같더라고요. 전 끊임없이 노래를 발표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팬들도 그게 더 좋겠죠? 그러다 보니 큰 방향을 생각할 시간이 적었던 것 같아서 이쯤엔 쉬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덕분에 심적으로 여유도 생겼고요. 선배님들은 계속 곡을 써야 한다고 얘기해요. 20대 초·중반에 쓰는 곡이 제일 좋은 게 많다고요. 근데 그건 그 나이되면 스스로 느껴보려고 지금은 그냥 살고 있어요. 요즘엔 누가 잘 지내냐고 하면 잘 지낸다고 해요. 예전엔 “바빠서 힘들어” 그랬거든요. 여유를 갖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가수도 힘든 게 많은 직업이잖아요. 전엔 힘든 점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좋은 점만 보려고 해요. 사생활을 대부분 포기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납득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거든요. ‘내가 이런 것까지 버려가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모든 연예인이 다 그럴 거예요. 그런 부분을 납득하려니 다른 직업보다 이 직업이 뭐가 좋은지 생각해봐야 했어요. 물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배부른 소리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들은 자기 사생활이 있으니까, 잃으면 어떤 기분인지 모르니까.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니 여유가 생겼어요. 없어진 건 없어진 대로 놔두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요.
찾아보니 뭐가 좋던가요?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부분이 있죠. 물론 일은 비정규직이고 잠깐 사이에 (은행 잔고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뒤집힐 수도 있지만 현재는요.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는 게 참 행복한 거죠.
가수가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나를 표현하는 일을 했을까요? 이 일을 안 했다면 분명히 증권가에서 일하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것도 하늘의 별따기지만. 근데 그건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항상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겠죠. 가수라는 직업은 내 창작물에 타인이 공감을 해주잖아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좋아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일이 없는 날이 곧 주말인 점도 좋고요. 한때 존경하던 사람,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나랑 친구라는 것도 신기하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잃어야 하는 것들이 크게 느껴지니까 힘들었나봐요. 이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럴 거예요. 되돌릴 수 없는 거라면 맘 편히 생각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곧 나오는 앨범은 왠지 이전과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흠,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요. 제대로 시작한 게 없어서. 해보고 싶은 건 있어요. 흔히 저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게 달달한 거거든요. 근데 제 앨범 들어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알아요. 오히려 쓸쓸하고 우울하다고 하죠. 그래서 작정하고 여심 저격하는 노래 해보고 싶어요. 리얼 사운드가 아닌 건반으로 전자음 음악도 해보고 싶고요. 지금까진 계속 진짜 연주만 했거든요. 잘 섞어서 해보고 싶은데 제가 쓰는 곡들이랑 전자 사운드가 어울리기가 어려워요. 그 사이를 잘 찾아봐야죠. 색다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