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지 않은 삶을 멋대로 상상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 만용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징하게 드러내는 일은 그 반대의 극에 가깝다. 한 번 봤을 뿐인, 그 한 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나의 감상은 신세경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데에 편견 하나를 보탤 뿐이다. 신세경이 내가 최근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사람 가운데 가장 좋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부러 길게 말을 꾸미기보다 마주 앉아 나눈 대화로 찰나의 신세경을 갈음한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던 <육룡이 나르샤>의 ‘분이’ 캐릭터에 애정이 많았다고 들었다. 극 중 여성의 역할에 고민이 생기는 때인가? 아무래도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지. 한계가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비단 내가 여성이어서, 20대 중·후반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역량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걸 차츰차츰 넓혀가는 게 나의 의미이자 꼬리표다. 상황에 끌려가는 대신 내 책임 아래 얼마나 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귀한 일인데 그래서 더 분이에게 애정을 많이 쏟았던 것 같다.

예전 인터뷰에서 시 읽는 여배우라고 화제가 됐던 일을 기억하나? 그렇다.(웃음)

여전히 잘 읽고 있는지? 그때에 비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비교적 영화를 더 볼 때가 있고 조금 더 책을 볼 때가 있고 시기별로 한쪽에 치우치곤 하지 않나. 그래도 최근에 제일 좋았던 책을 말하자면, 독일의 여류 작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다.

취향이 확실하다. 아하하. 여.성! 막 이런 게 있지 않나?

 

책에 치우칠 때가 있고 유난히 영화가 와 닿을 때도 있다고 했는데 요즘에 어떤 분야에 빠져 있나?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보는 데 빠져 있다. 예전에 본 작품들을 지금 보니 감흥이 다르고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느껴졌다. 새롭고 독특한 지점이었다. 사실 요즘 내 삶은 친구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 하나를 하면 3개월 동안 잘 시간조차 없으니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거든. 지금 친구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무척 행복하다.

어떤 친구들인가? 다 학교 때 친구들이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친구들. 모두 직장인이고. 그래서 퇴근시간 되면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저녁을 해 먹기도 한다. 그때그때 새로운 걸 많이 하려는 강박이 약간 있다. 쉴 수 있을 때 이것저것 해봐야지, 하는.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 느낌이다.(웃음)

특히 어떤 유의 경험에 제일 호기심이 생기나.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박이 있었다기보다는 이 시간을 친구들이랑 알차게 보내고 싶다, 데일리 루틴을 벗어나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 하는 욕심들이 생겼다. 최근에 짧은 일정으로 국내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어디로? 원주에 ‘뮤지엄 산’이라고 있는데 그곳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제임스 터렐이라는 아티스트의 빛과 공간으로 만든 관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기밖에 볼 수 있는 곳이 없어서 하루 일정 비는 직장인 친구랑 같이 고속버스 타고 갔다 왔다. 당일치기로. 너무 좋았다. 고성과 통영에도 갔었다.

막상 가면 기대보다 할 일이 없지 않나? 할 일이 없어도 뭔가 할 일이 있는 느낌이다. 국내 여행을 이렇게 야무지게 다닌 적이 전에 없었다. 사극 촬영지만 갔었는데 이렇게 좋은 여행을 하게 될 줄은 기대도 못 했다. 여수 갔을 때 느낀 건데, 그냥 밤하늘만 봐도 좋더라. 밤이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여서. 맛집도 다니고 잘 돌아다닌다. 많이 걷고. 얼마 전에는 고속버스터미널가서 크리스마스트리도 사 왔다. 하하. 서울에서 가고 싶던 동네를 가서 친구랑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도 했고.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춥지 않은 계절의 한강을 최근에는 성수동도 너무 좋았다. 아주 유명한 카페가 있지 않나. 거기도 좋고 좋아하는 곳은 사실 많은데 그 동네들이 시기에 따라 변하니까 애정이 그 자리에만 머무는 건 아니더라.

서울이 그런 도시다. 맞다. 변화가 빠르고.

‘나’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즐기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게 옳은 방향 같고. 하지만 실제로 완벽하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정말 다녀도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하하하. 이게 팩트고 내가 안달복달하는 만큼 남이 나에게 신경을 안 쓴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것 같다.

내 생각만큼 남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 중요한 사실인데 그걸 깨닫고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특정한 타이밍에 알았다기보다 시나브로 알았는데, 복인 것 같다. 어쩌면 친구들의 영향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지금도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한번은 친구랑 연극 시간에 늦을까봐 지하철을 탔다. 몹시 붐비는 시간이었는데 그냥 모자 하나 쓰고 다니면 아무도 모르거든. 많은 인파에 섞여 내가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친구가 ‘뭔가 웃기다’며 사진으로 찍어줬다. 그런 상황을 즐기기도 하고, 걔들은 그걸 특별한 상황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냥 우리 모습 그대로니까.

 

말하는 걸 들어보면 댓글 같은 것 때문에 무너지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무너지지. 칭찬이 많으면 너무 좋지만 가끔 객관적인 채찍질이 보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얼마나 애정을 동반한 일인지 깨달았다. 최근에 한 친구와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렇게 셋이 친구라고 치자. 그중 하나가 이전의 모습과 다른, 비뚤어진 모습으로 자꾸 변하면? ‘너 같으면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이가 벌어지더라도 객관적으로 얘기하겠느냐, 아니면 그냥 참고 두고 보겠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도 나도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성향이라 둘이 머리 맞대고 고민했는데 어쨌든 친구라면 결국 용기를 내서 말해주는 게 맞겠더라. 사이가 멀어지더라도. 그 생각을 하면 채찍질도 애정이 있으니까 해주는 거구나 싶다.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쓴소리를 했고 결국 관계가 벌어졌다. 그 부분에서 여전히 나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개인의 기준에 따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친구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 거 아닌가.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얘기해준다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흘러 그 친구가 분명히 그때 쓴소리를 한 우리를 이해할 거다.

 

조절이 필요하겠지. 어떨 때 기분이 제일 좋은가? 아침밥 먹을 때. 하하하.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아침밥형’ 인간인데, 아침을 먹어야 눈이 트이고 입이 뚫리거든. 아, 요즘 가장 큰 재미는 요리다.

어떤 요리? 제일 자주 하는 요리는 들깨수제비? 반죽해서 하루 숙성해 아침에 똑똑 떼어내는 재미가(웃음) 너무 좋다.

와, 엄마보다 더 정성스러운데? 전날 반죽해 숙성하면 탄력이 다르더라. 하하하. 맛있는 거 먹는 걸 좋아한다. 특히 아침에!

신세경의 길티 플레저는? 생각해볼까? 음.

예를 들어 나는 이런 거다. 혼자 있을 땐 SES 1집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명반이지, 1집은. 난 CD도 있다.난 카세트테이프도 있다. 난 2집이 카세트테이프로 있다. <드림스 컴 트루>.

나는 심지어 SM타운 캐럴도…. 난 SM타운 캐럴 앨범 다 있다. 푸하하. 내 길티 플레저는 요리책인 것 같다. 요리를 할 때 사전에 연구를 아주 많이 하거든. 근데 친구들한테 선보일 때는 ‘그냥 뚝딱뚝딱 했는데 이렇게 맛있네?’ 하는 느낌으로.(웃음)

사람들, 특히 친구들과의 관계를 무척 중요시하나보다. 그럼.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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