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튼 아티스트 오버올, 라지 테크니컬 나일론 가죽 럭색 모두 버버리(Burberry).

코튼 아티스트 오버올, 라지 테크니컬 나일론 가죽 럭색 모두 버버리(Burberry).

지코의 곡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요즘 누가 제일 핫해, 요즘 누가 곡 잘 써/ 아주 좋은 질문이야 brother, 답은 차트에 나와 있어’. 스스로 ‘난 감출 것이 없고, 허세도 필요 없다’는 듯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음악으로 답하고, 음원 차트로 파급력을 입증해온 지코. 그는 힙합과 아이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논쟁인지 증명하며 신을 뒤바꿔왔다.

새 싱글 ‘She’s a Baby’를 발표한 다음 날, 주요 음원 차트 맨 꼭 대기에 이름을 올린 그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1위 가수’라고 반기는 스태프들의 너스레에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한 뒤 거울 앞의 자에 앉은 그는 시안 이미지를 확인하고, 정리된 몇 가지 질문을 하고선 일말의 지체없이 정확하게 제 할 일을 해나갔다. 시간이 자신의 최대 기회비용임을 지각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어떻게 저축하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가진 이의 움직임이었다. 또래에 비해 압도적인 부와 명예를 누린 ‘영 블러드 프로듀서’라는 화려한 수식 뒤, 그가 지금까지 이뤄낸 성취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지코는 손에 꼽을 만큼 명쾌한 인터뷰이이기도 했다. 자기표현에 주저함 없는 자신의 랩처럼 질문과 답 사이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오래 묵혀둔 듯한 생각이 깔끔한 문장이 되어 돌아왔다. 특유의 시원한 발성과 분명한 발음은 단단한 생각에 힘을 보탰다. 지코는 그간의 성취를 부정하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올해는 완전, 아예 다 쏟아낼 거다. 장전된 것들이 좀 많다’고 했다. 초조나 불안의 그림자라곤 없는 그 명쾌한 답을 듣고 있자니 이 젊은 아티스트의 다음이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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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1위를 축하한다. 지코에게 1위는 여전히 놀라운 일인가? 겸손 떠는 게 아니라 매번 놀랍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최근 음원 차트가 개편되면서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를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힘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싱글 ‘She’s a Baby’ 커버 이미지를 직접 촬영했다. 귀여운 토끼 두 마리는 어떻게 촬영하게 된 건가? 코드를 만들고 반주 기타를 받을 때부터 이 곡 은 포근한, 동물을 쓰다듬는 듯한 느낌이었다. 멜로디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촉각이 있었다.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을 이미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촬영도 했다. 재킷 촬영을 항상 해주는 형의 말로는 전문적이지 않아서 표현되는 감성이 있다고 하더라. 내가 그걸 노렸다.(웃음)

이번 싱글은 소프트한 무드의 곡이더라. 지코의 센 곡을 좋아하는 편이라.(웃음) ‘아, 이땐 이걸 해야 돼’ 하는 식으로 주판을 두드리기보다는 당시에 다루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그걸 그냥 하는 편이다. 노래를 만들 당시 날씨가 쌀쌀하기도 했고 추우면 되레 감성이 따뜻해지기도 하지 않나. 또 멜로영화를 한창 봐서인지 감성이 풍부하던 때였다.

지코의 사랑 노래를 듣고 있으면 굉장한 로맨티스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렇지만 평소에는 아니다.(웃음) 확실히 곡 안에서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우지호로 살 때보다 지코일 때 더 로맨티스트다. 감성적인 곡을 만들어 청취자를 대리 만족시켰다면 그게 내가 한 가장 로맨틱한 행동 아닐까. 내 음악을 듣고 조금이나마 설렘을 느끼거나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말이다.

 

본인 이야기를 랩의 소재로 삼을 때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항상 본인에 대한 생각이 먼저라고 본다. 주로 랩으로 음악을 표현하는데, 랩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이 난다. 그리고 난 내 이야기를 할 때 가사가 잘 나온다.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 바쁜 시간 속의 나의 모습도 결국 나 아닌가. 거기에 대한 생각을 가사로 쓰기도 한다.

더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자신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고? 그건 아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꾸며내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억지로 영감을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생각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생각이나 감정이 작업에 도움을 준다. 지금 이 순간 내 기분이 어떻다 하는 식의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현재 가장 감 좋고 예리한 프로듀서로 지코를 꼽는다. 이런 수사가 거듭 될수록 재능이 소진될까봐 걱정되지는 않나? 내가 가진 재능 중에 그나마 갖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름의 성실함이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큰 일 났을 것 같다. 재능이라는 것이 내게 머무는 것은 찰나니까. 그래서 많이, 꾸준히 결과물을 내는 것 같다. 내 감이 가장 생동감 있게 팔딱거릴 때 가능한 한 많이 뿌려놓고 싶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표현들이 분명 있으니까. 물론 소진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휴식이 필요한 것 같고 그래서 고민이 많다. 2015년에 24곡을 낸 것과 비교하면 작년에 작품이 적었다. 쏟아낸 만큼 그만큼의 강제적인 슬럼프가 온다.

일전에 인터뷰에서 ‘무난하게 살 때가 가장 할 말 없는 때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은 어떤가? 계속 작년과 비교하게 되는데, 작년에도 바쁘긴 했지만 뭔가 많이 허탈한 해였다. 감사한 것과 행복한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사는 것에 감사하다 보면 행복이 뒤따라오겠지 생각했는데 행복을 느끼는 감정선과 감사를 느끼는 감정선은 별개더라. 감사하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행복하다고 감사한 게 아니다. 작년의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감사하고 행복한 해가 될 것 같다. 적어도 4월까지는 그랬다.

2017년에는 다시 쏟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완전, 아예 다 쏟아낼 거다. 장전된 것들이 좀 많다.

잘 노는 이미지 때문일까 안 보이는 곳에서 성실하게 장전하고 있는 지코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좋다. 나에 대해 완벽히 알아서, 음악을 들을 때 끊임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에 싸여 고통스럽게 짜내며 만드는 나를 떠올린다면 음악을 감상하는데 영향을 미칠테니까.

 

가사 한 줄 쓸 때도 분석을 하는 통에 그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고 했다. 강박적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은 여전한가? 연차가 쌓이면서 요령도 생기기 마련이지 않나? 결국 모든 작업은 자기만족이기 때문에 강박과 요령은 별개의 문제 같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마 똑같지 않을까? 원고를 마감하기 전까지 수십 번 수정할 것이고, 그중에 버리기 아까운 내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평생 본인만이 알겠지.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걸 하면 남들이 내 빈틈을 알아챌 거야’ 하기보다 2, 3년 후에 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거기에는 강박이 필요하다.

힙합과 아이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논쟁이 이제는 무의미하다. 거기엔 지코의 역할도 컸다.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고, 이제 더 이상 본인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전에는 그 이분법적인 생각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으로 쓴 랩 가사가 태반이었다. 결국 많은 분들이 일부분 인정해주고, 그만큼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니까 이제는 거기에 보답하는 느낌으로 음악을 계속하는 것 같다. 한데 증명은 다른 문제다. 달려서 완주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결 승점에 도달했을 때 또 그만큼의 목표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증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앞으로 실현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질 뿐이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본인이 지닌 잠재력을 눈치채지 못하는 독창적인 플레이어들이 빛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 자신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코라는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뒤바뀌는 형태를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우리 무리와 섞였을 때 잘할 것 같은 이가 있으면 음악을 같이하려 한다. 이런 걸 잘하는 사람 같은데 왜 저런 음악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 그가 우회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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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드 헤드 프린트 코튼 셔츠, 잉글리시 울 모헤어 하이웨이스트 테일러드 팬츠, DK88 도큐먼트 케이스 모두 버버리(Burberry).

프레임드 헤드 프린트 코튼 셔츠, 잉글리시 울 모헤어 하이웨이스트 테일러드 팬츠, DK88 도큐먼트 케이스 모두 버버리(Burberry).

래퍼들은 흔히 ‘내가 진짜다’라고 말하지 않나. 지코에게 ‘진짜’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인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거다. 스스로 진짜라고 이야기 할 때마저 자기가 진짜라는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다.

지코는 항상 진짜였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매 순간에 솔직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음악이 재미없다거나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늘 진짜였다. 할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웃음)

싱글 발표 후 다음 스텝은 뭔가? 비밀이다.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올해 지코라는 글자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될 거라는 점이다. 래퍼로든 프로듀서로든 TV나 인터넷에 등장하는 모습이든. 아, 인터넷은 뭔가 무서우니까 빼고.(웃음) 지코(ZICO)라는 폰트를 많이 볼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우지호의 시선으로 지코라는 큰 그림을 그렸을 때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나? 대한민국에서 음악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정말 치기 어린 생각일 수 있지만 산울림, 김광석, 서태지와 듀스 등 많은 분이 있는데 그분들 옆에 아주 작게 쪼그리고 앉을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정말이지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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