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김무열은 자신의 자리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다. <연평해전>부터 매년 꾸준히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포함해) 영화에 출연했고 홈그라운드인 뮤지컬에서는 늘 그랬듯 홈런을 이어가고 있다. 연기외에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리듬으로 묵묵하게.
그는 올해 영화 <대립군>을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 타인의 이름으로 군역을 대신 살던 조선시대 대립군의 여정에 어린 광해가 함께하며 벌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김무열은 대립군의 행동대장 격인 ‘곡수’로 분했다. 활과 무장을 벗고 오랜만에 해사한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는 필요한 일에 빠르게 집중했다. 영화 이야기를 넘어 배우 아닌 인간 김무열을 볼 기회가 없어 아쉽다는 말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라는 흔한 대답 대신 이대로 좋지 않냐고 말했다. “별로 매력적이지 않거든요. 그냥 똑같아요. 강아지 산책 시키고 텔레비전 보고.”
김무열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해내고 그 외의 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서클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도 연기가 아닌 다른 통로로 자신을 보여줄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꼭 연기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난다. <대립군>은 어떤 영화인가? 대립군은 조선시대에 남의 군역을 대신 산 사람들이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자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거나 군역을 살 사람들을 돈을 주고 사는 거지. 실제 있었다. 남의 이름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결국 남을 위해 살고 희생까지 하게 되는 셈이다. 영화 <대립군>은 의병이 이런 인물들에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가상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이정재 형님이 맡은 ‘토우’는 대립군의 리더 같은 존재고 내가 맡은 ‘곡수’는 오른팔, 행동대장 격이다. 성격이 불같아 갈등을 유발한다.
어떤 역할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사극을 할 때는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 조선시대는 워낙 사극에서 많이 다루다 보니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 전에 가야시대가 배경인 영화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자료를 많이 찾아본다. 어떤 신분이었는지,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같은 것들.
각각의 대립군마다 굴곡과 사연이 많은 인물들일 텐데, 곡수의 생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대립군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전쟁터로 끌려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든다던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직접 표현되지는 않지만 행동이나 말투에서 그런 면이 드러난다. 곡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설명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곡수를 연기할 때 대립군의 기본적인 심정을 참고했다.
자신을 닮은 배역에 끌리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자기한테 없는 모습이라 배역에 매력을 느꼈다고 하는 배우가 있다. 김무열은 어느 쪽인가? 두 가지 다. 나와 다른 역할을 맡으면 처음에는 다소 어렵지만 찾고 찾다 보면 결국 약간의 교집합을 발견한다. 거기서부터 단서를 찾아가는 쾌감이 있다. 나와 닮은 역할은 좀 더 편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겉보기에는 닮아 보여도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거기서 오는 어려움도 있고. 장단점이 있다.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시대극 촬영이 육체적으로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대립군의 여정을 그리는 로드무비다 보니 장소가 올 로케이션이 었다. 경치 좋다는 곳은 다 가본 것 같은데 그래서 좋긴 했지만 장소를 일일이 다 찾아다녀야 해서 힘들었다. 스태프들은 카메라나 조명을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갔고, 배우들은 산 밑에서 의상을 입고 무기까지 장착하고 올라갔다.
살도 많이 빠졌겠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촬영이 항상 오래 걸렸다. 영화가 대립군의 여정을 함께하는 광해의 성장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립군들도 저마다 이 여정을 선택했기 때문에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드라마가 강렬하다. 스무 명이나 되는 대립군을 카메라 안에 어떻게 담을까 감독님들과 배우들 모두 고민이었다.
감독이 고민할 때 같이 고민하는 타입인가? 내 캐릭터만 빛나기 위한 영화가 아니고 그렇다고 광해나 토우만 있는 영화도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서로 빛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했던 것 같다. 원래 고생하는 영화는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술자리도 많이 가졌고 형들에게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 산에 올라가면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으니 심심해서 나중에는 치맥 걸고 동전으로 땅따먹기 하고 놀았다.
얼마 전까지 뮤지컬 <쓰릴 미>를 공연했는데 영화와 뮤지컬은 호흡도 다르고 현장 분위기도 다르지 않나. 각각 어떤 매력을 느끼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좋은 곳에 가서 24장짜리 필름을 다 찍고 나서 사진관에 맡기지 않나. 그러고 나서 사진관에 사진 찾으러 갈 때의 설렘이 영화에는 있는 것 같다. 뮤지컬이나 공연 쪽은 배우가 관객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그 시간, 순간의 예술이라는 매력이 있고.
내 신경과 눈동자 하나까지 캐치되는 상황이 더 긴장되지는 않나? 인물의 감정 상태에 집중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연기에 들어가면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연기가 매번 다르더라도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으면 오히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니까. 아직도 첫 회 공연할 때는 많이 긴장하고 떨리는데 해내고 나면 쾌감도 있고 매력을 느낀다.
드라마나 예능을 하지 않으니 김무열이라는 배우는 알지만 김무열이라는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무열과 실제 김무열은 얼마나 다른 것 같나? 글쎄,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무열도 잘 모르겠다.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보여드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거든. 센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지 않다고 하는 분도 있고, 바르고 진중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고 하는 분도 있다. 나의 다양한 면을 역할을 통해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대중에게 개인적인 김무열을 보여드릴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매력적일 정도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거든. 똑같다. 강아지 매일 산책시키고 쉴 때 TV 보고 영화 보고 운동하러 다니고.
요즘은 무엇을 제일 고민하나? 체력이 왜 이렇게 점점 떨어질까.(웃음) 일하면서 항상 고민한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어떻게 하면 일을 오래오래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배우는 이미지가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내 한계에 매번 부딪힌다. 그때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나 이미지가 관객들에게 소진되기 시작한다. 그런 걸 원하지 않아서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러려면 뭘 준비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에도 막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나?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그렇다. 후퇴하더라도 한계를 부술 수 있는 용기를 항상 갖고 싶다. 늘 나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조바심 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영화, 책, 음악. 이 세 가지 중에 김무열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영화. 책은 긴 글을 점점 못 읽겠다. 그나마 단편을 주로 읽고, 와이프나 나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자기 전에 꼭 본다. 일주일에 많이 보면 다섯 편 정도 보는 것 같다.
둘의 영화 취향은 어떤가? 다행히 둘 다 잡식성이어서 히어로 무비부터 저예산의 예술성 짙은 영화까지 다 잘 소화한다.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보고 싶은 걸 볼 때가 많겠다. 맞다. 몸의 피로도 있으니. 그저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미 있게 보고 싶은데 그게 사실 쉽지 않다.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분노>. 뚜렷한 주제로 아주 잘 만든 영화다. 강렬해서 참 좋았고. 다양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이 나왔으면 좋겠다.
올해엔 또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나? 하늘이(강하늘)와 영화 <기억의 밤>을 촬영 중이다. 끝난 후의 계획은 아직 없는데 올해 가기 전에 작은 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하나 하고 싶다. 사실 별다른 플랜은 없다. 하던 대로 영화 하면서 오래오래 길게 길게. 매번 한계에 부딪히지만 나를 부술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인간적인 모습은 앞으로도 좀 가둬놓을 생각이다.
지금 이 호흡에 만족하는 건가? 좀 이기적인가? 이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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