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에 종영한 KBS 드라마 <고백부부>는 지루한 현실에 치이다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가 현재의 기억을 가진 채 처음 만났던 20대로 돌아가면서 서로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들이 완성해가는 사랑에 위협이 될 만큼 매력적인 조연이다. 훤칠한 키에 빚은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장기용은 진주(장나라)의 대학 선배이자 순정파 츤데레 ‘정남길’ 역할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해냈다. 욕심내지 않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천천히 찾아왔던 그는 처음으로 맡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또 좋은 스태프들과 선배들을 통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지를 터득했고 점차 욕심도 갖게 됐다.
기세를 몰아 2018년 상반기 기대작인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합류한 지금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반응에도,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도 장기용은 꽤 의연하다. 연기력이 부족하니 시행착오가 당연히 있겠지만 지나면 다 내 것이 된다고 믿는다. 이 말을 외운 듯 줄줄 쏟아내는 그가 다소 방어적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그만큼 혼자서 많은 생각을 곱씹었을 뒷면이 쉬 짐작되기도 한다. 잘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더 배워나가는 것만이 최선일 뿐.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데 가장 현실적이고 건강한 방향을 택한 청년의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지리라는 확신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다. 지면으로만 보던 자신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요즘이 어떤가? TV 속 내 모습이 신기할 때가 많다. 어릴 때만 해도 남들 다 하겠다는 선생님 이런 것 말고는 꿈이 딱히 없었다. 고3 때 우연찮게 패션 쇼 영상을 하나 보게 되면서 모델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 모델이든 연기든 카메라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TV에 나오는 내 모습은 어쨌든 부족한 점이 많으니 어떻게 하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다음 드라마 때 더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정남길’ 역할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정남길을 택하겠다’라는 현실 유부녀들의 댓글도 많았고. 준비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첫사랑의 이미지를 잘 그릴 수 있을지에 중점을 뒀다. 그런 의도가 잘 전해졌는지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좋아해주셨다. 나도 댓글을 다 보는데 힘이 됐다. 촬영할 때도 ‘첫사랑이 보고 싶다’거나 옛 추억을 회상하는 댓글이 보이면 ‘내가 이미지를 잘 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 좋았다.
드라마에서 정남길은 진주를 사랑하지만 반도(손호준)에게 보내줬다. 실제의 장기용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사랑을 희생할 수 있나? 정말 사랑하는 여자라면 남길이처럼 했을 것이다. 그냥 좋아하고 사귀고 싶은 마음이라면 반도를 버리고 나한테 오라고 했겠지.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남길이처럼 했을 것 같다.
내가 아프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장나라와 함께 하는 신이 많아 연기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촬영이 끝난 지금 어떤 변화가 생겼나? 나라 선배님에게 연기는 물론이고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많이 배웠다. 매번 현장에서 가르쳐주셔서 잊지 않고 잘 기억해뒀다가 다음 촬영 때 써먹곤 했다. 그래서 이번 촬영 때 정말 편했다. 다음 작품에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너무 훌륭한 작품의 좋은 캐릭터를 맡았고 많은 분이 관심을 보여주셔서 자신감이 약간 생긴 것 같다. 이럴 때는 쉬는 것보다는 빨리 다른 작품에 합류해서 또 다른 좋은 선배님들 밑에서 배우면서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드라마 오디션을 바로 봤고 운 좋게 다음 주부터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차근차근 찾아온 느낌이다. 연기를 더 진지하게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은 언제인가? 매 순간 그랬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적이 너무 많았고 전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은 대부분 어떤 사건에서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캐릭터였다. <고백부부>에서 처음으로 여자 주인공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첫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분명한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의미가 컸다.
조금씩 탄력을 받고 흡수해가는 시기인 것 같다. 하고 싶은 역할도 많을 것 같은데. ‘이거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도전해 보고 싶다. 기회가 있으면 준비를 잘 해서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 음, 난 어릴 때부터 항상 내 안에 뭔가가 있다, 뭔가 다양한 것이 있다고 믿었다.
꿈이 특별히 없을 때도? 꿈이 없을 때도 항상 여기, 가슴이랑 명치 사이에 답답한 뭔가가 있었다. 이걸 좀 표출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연찮게 이쪽 길을 선택하게 됐다. 지금도 여기 안에 있는 걸 하나씩 꺼내는 중이다.
<고백부부>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순간으로 가고 싶나? 과거로 돌아가기엔 나이가 어려서…. 시간을 오갈 수 있다면 과거보다는 미래로 가보고 싶다. 죽기 직전으로. 인생을 한번 다 살아봤으니까 내 아들, 내 아들의 아들을 보면 그들이 살고 있는 시기가 내가 살아온 날들일 것 아닌가. 20대인 손자를 보면 ‘내가 저만할 때 <고백부부>라는 작품을 했지. 정말 좋았는데’ 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고 내 아들이 쉰 살이라면 ‘내가 저 나이 때 아내랑 대판 싸웠지, 하하’ 이런 것도 다 보일 테고. 내가 잘 살아왔다는 걸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보람찰 것 같다.
차기작으로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다.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미생>과 <시그널>을 연출한 감독님과 <또 오해영>을 집필했던 작가님 이 두 분의 작품이기 때문에 역할이 크든 작든 무조건 하고 싶었다.
오디션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나? 나중에 들은 얘긴데 2차 미팅을 나 혼자 봤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되게 기분 좋았다. 연기력은 조금 미흡하지만 작가님, 감독님이 생각하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나와 맞았던 것 같다. 내가 보여주려 한 걸 잘 어필한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스물일곱이 됐다. 나는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바뀔 때 유난히 기분이 이상했는데 장기용은 어떤가? 나이에 대해 그다지 생각을 많이 안한다.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고 여겨서. 시간이 참 빠른 것 같긴 하다. 수능시험 본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어릴 때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나? 어릴 적에는 막연히 그때가 되면 어떨까 생각만 해봤다. 엊그제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은데 벌써 그 나이가 됐으니 그런 면에서는 살짝 무섭다. 가족이랑 2017년도 첫 해가 뜨는 순간을 본 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5월에 tvN 드라마 하나 하고 8월에 <고백부부> 찍으니 2017년이 다 지났다. 이번에 하는 <나의 아저씨>가 끝나면 2018년 상반기도 다 지날 거란 말이지. 넋놓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젊으니까 도전할 것이고, 시행 착오도 분명히 있을 테고, 그렇게 겪다 보면 내 것이 되겠지. 젊기 때문에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편이다. ‘이 일로 내가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고, 지금 힘들더라도 이겨내면 또 한 뼘 성장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잘 버티고 있다.
2018년의 장기용은 어땠으면 좋겠나? 편안했으면 좋겠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걱정이나 생각이 워낙 많아서 잘 안 될 것 같다. 새해에는 생각을 좀 덜어내고 여유 있고 편안하게 자신을 컨트롤하고 싶다. 그 뒤에는 일 얘기 밖에 없을 것 같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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