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성유빈

김여진 러플 디테일 블랙 드레스 유돈 초이(Eudon Choi), 블랙 드레스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골드 이어링 알라인(Alainn).
성유빈 화이트 니트 스웨터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성유빈

화이트 터틀넥 톱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체크 니트 스웨터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키링 디테일 팬츠는 자라(Zara).

내 아이가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와의 조우.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이 불편한 관계에서 시작한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죽은 ‘은찬’은 의사자로 지정되고 은찬의 부모는 웃지도, 마냥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채 일상을 꾸역꾸역 이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은찬이 살린 아이 ‘기현’이 나타나고,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은찬의 부모와 기현은 은찬의 죽음을 둘러싼 새로운 진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은찬의 엄마 ‘미숙’ 역의 김여진과 살아남은 아이 ‘기현’ 역을 맡은 성유빈은 거미줄처럼 얽히는 감정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고도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 <살아남은 아이>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입증했고, 8월 30일에 대중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김여진

화이트 니트 터틀넥 스웨터와 가죽 스커트 모두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싱글 드롭 이어링 엠주(mzuu).

김여진 성유빈

김여진 울 드레스 코스(COS), 실버 이어링 엠주(mzuu).
성유빈 와인색 터틀넥 톱과 블랙 진 모두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울 재킷 자라(Zara).

성유빈

요즘 가장 바쁜 10대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다음 영화와 대입 준비가 겹쳐서 좀 정신이 없다. 하하.

<살아남은 아이>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부산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시나리오대로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몰입이 무척 잘 됐다. 시나리오를 읽는 행위를 숨 쉬는 행위에 비유한다면 <살아남은 아이>는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이 잘 살아서 좋았다.

‘윤기현’은 외롭고 마음에 상처가 난 인물이다. 연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인가? 감독님과 기현이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장면마다 기현이가 은찬의 가족과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느끼며 행동하는지 가늠해보아야 했다. 왜냐하면 모든 등장인물의 감정이 층층이 쌓여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감정의 완급 조절, 강약 조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느꼈거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됐다. 찍는 내내 우울한 느낌이 좀 들긴 했지만 일상에서는 오히려 밝게 지내려 했다.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하고.(웃음)

내내 우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작품에서 연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특히 표현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사건의 진상을 미숙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때. 그 장면에서 여러 버전의 연기를 준비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터뜨릴 수도 있고 참으면서 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일이 실제라면 무척 힘든 일이기 때문에 감히 확신을 갖고 연기하기가 힘들었다. 완급 조절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웠다. 사실 정답은 없다. 어떤 연기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표현해야 이 영화의 맥락에 좀 더 잘 맞을지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은찬의 부모를 대하는 기현의 태도는 단순하지 않다. 기현의 마음을 해석하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건 무엇이었나? 감독님이 도움을 제일 많이 주셨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기현이의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기현이에게 과거 이야기가 있다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기현이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라고. 그런 배경을 알고 나니 기현이 은찬의 부모님에게 빠르게 마음을 열었던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은찬의 부모님과 기현은 영화가 끝난 후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각자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같이 무언가를 해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기현이 먼저 연락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가능한 일 일것이다.

처음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은 언제인가? 처음 작품을 찍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촬영할 때 왠지 모르게 재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했는데, 연기를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다. 계기는 많다. 현장에서 혼난다든지(웃음) 그러면 오기가 생기거든. 그렇게 계속 촬영하면서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자꾸 ‘나도 저 사람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기도 해보고 싶다’든지, 그렇게 슬금슬금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재미로, 호기심으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대호> 등 굵직한 작품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쌓았다. 매번 느끼는 성장 포인트가 다를 것 같은데 <살아남은 아이>를 찍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 사실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아주 많다.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많이 배우고, 선배님들과 연기하는 때는 물론이고 옆에서 그분들의 생각을 엿듣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배움이다. 나는 엄청난 행운아다. 미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앞서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다양한 연기. 어떤 연기든 쉬운 건 없다. 평범한 캐릭터라고 해도 사실 그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인물이든 잘 소화하며 내 연기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여진

체크 수트 재킷과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푸시버튼(pushBUTTON). 실버 이어링 엠주(mzuu).

김여진

<살아남은 아이>의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제목 때문에 시나리오를 펼쳐 보기가 두려웠다. 읽지를 못했다. 더 묵히면 안 될 것 같고, 같은 시기에 다른 영화가 잡혀 있기도 해서 거절할 이유를 찾으려고 읽었는데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시나리오를 참 잘 썼다. 세 사람의 감정만 가지고 굉장한 스펙터클을 만들었다.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숙’이라는 인물이 내 마음으로 훅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 역할을 왜 나한테 줬는지 느껴졌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촬영이었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대본이 잘 쓰여 있고 상황이 아주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으면 사실 연기하기가 힘들진 않다. 오히려 감정 과잉이 될까 봐 조절하느라 애를 더 많이 썼다. 많은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최근에 부쩍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미숙이 병원에 있을 때 기현이 죽을 사서 찾아오는 장면. 기현을 미워하는 미숙의 감정이 완전히 꺾이고 기현에게 마음을 확 여는 모습이 표현되는 데, 내 감정도 딱 그랬다. 미숙도, 김여진도 기현이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열리면서 아주 잠깐 행복했다. 그 전까지 그 누구와도 슬픈 감정을 공유할 수 없고 감정이 꽉 차서 체할 것 같던 사람이, 혼자 자고 혼자 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현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참 행복했는데, 하고 생각이 난다. 그래서 후반부가 더 슬프긴 하지만.(웃음)

‘미숙’으로 사는 동안 김여진을, 혹은 미숙을 견디게 해준 건 무엇이었을까? 참 아이러니한데 굉장히 슬픈 연기를 하면서 나는 행복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연륜이 쌓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도 감독님과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슛 들어가면 몰입하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우울해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웃음) 일단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하니까 그 전의 모든 것이 정지되고 당장 내 아이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된다. 그 덕분에 사생활과 연기가 잘 분리된 것 같다.

김여진이 영화의 끝을 이어본다면 은찬의 부모와 기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작품에 한창 빠져 있을 때, 기현이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비롯해 몇몇 신을 촬영하고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감정을 느끼던 그때 꿈을 꿨다. 나는 결말을 알고 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그 결말이 참 안타까웠나 보다. 꿈에서 기현이와 내가 희희낙락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지내는 모습을 봤다. 그만큼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기현이도 너무나 외로운 아이고 미숙도 그렇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두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겠지. 해피 엔딩이면 너무 좋겠다. 관객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성유빈 배우와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촬영하는 동안 어떻게 보였나? 유빈 씨는 이미 아주 훌륭한 배우다. 처음 촬영을 할 때 내가 놀라서 “너 연기 되게 잘한다”라고 했다.(웃음)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을 때였는데 어린 나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툭 하는 느낌으로 연기하는데 무척 좋았다. 성인 배우들도 그렇게 하지 않거든. 자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유빈 씨는 그런 부분이 없고 그 덕분에 그와 함께하는 장면은 다 아주 쉽게 갔다.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저절로.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끝내면 김여진 개인의 삶을 위해 환기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자꾸 배우는 타입이다. 지금도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 같이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 노란 띠를 땄다. 아이는 빨리 시작해서 태극 노란 띠. 하하. 비슷한 시기에 성악도 배웠다. 개인 교습을 받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취미로 한다. 그러다 덕질도 하고.

어떤 덕질? 한동안 국카스텐에 엄청 빠져 있다가 최근에 뒤늦게 샤이니에 빠져서 그들의 음악을 열심히 듣고 있다.(웃음)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데 사실 뭘 잘하게 되기 전에 자꾸 바꾼다. 배우에게는 자기가 안 해본 걸 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필라테스를 한다고 해서 필라테스 강사가 될 건 아니니까 필라테스 했다가 태권도 했다가 요가 했다가 춤도 췄다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기분 전환이 된다. 그때 싹 발산하고 엄마로, 연기자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세 축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20년간 성실히 연기해온 비결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충동적이고 뭔가에 엄청 빠져서 허우적거려야만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몰입할 때 확 몰입하고 바로 빠져나올 수 있는 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강한 삶이다. 이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나? 누구나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상실과 슬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위로해준다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르니까. 그런데 아주 우연히 누군가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는 때가 있다. 누군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뱉은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문제가, 내 마음이 ‘아, 그렇지’ 하고 풀어질 때가 있다. 사람에게 위로라는 것이 뭘까.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힘을 받을 수 있고, 그 부분 때문에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모를 아픔 하나쯤 갖고 있는 모든 분이 미숙의 감정에 공감할 것 같다. 용서할 수 없는데 용서되고,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하게 되는 감정에. 참 신기한 것이 내가 했던 작품을 통틀어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다. 그런데 힘들지 않았고 연기를 하면서 위로받았다. 내가 내 마음을 꽉 잡고 있어서 힘든 것이다. 그것을 놓는 순간 위로가 된다. 미숙이 그랬던 것처럼.

Ⓒ MARIECLAIREKOREA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