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셔츠, 가운 모두 노앙(Nohant), 팬츠 리스(Reiss), 슈즈 알든 바이 유니페어(Alden by Unipair), 이탤리언 코발트블루 유리 화병 빅슬립(Bigsleep).

이준혁

화보를 촬영하는 내내 모니터를 보지 않더라. 도대체 왜 이렇게 쑥스러워 하나? 나도 모르겠다.(웃음) 사실 내가 출연하는 방송 화면도 잘 못 본다. 그래도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좀 덜한 편이다. 내가 아닌 캐릭터를 연기하는 거니까. 그런데 화보 촬영은 좀 다르다. 아직은 좀 어색하고 민망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한 듯하다. 현재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을 촬영 중인데, 현장은 얼마나 익숙해졌나? 코로나19 때문에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감내하는 사람들을 만나 촬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큰 축복이다. 특히 김지수 선배님이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신다. 남지현 배우는 오랜시간 현장에서 삶을 보낸 사람이 가진 탄탄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편하게 의지하는 중이다.

이번 작품은 1년 전으로 시간을 리셋할 수 있는 ‘리세터’들의 이야기다. 어떤 점이 마음을 끌었나? 전작이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이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비교적 많은 스릴러물이기도 했고, 캐릭터 자체가 가진 우울감도 큰 편이라 늘 그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스토리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캐릭터도 귀여운 편이다.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가 늦은 밤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서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를 많이 다뤘는데, 이번 작품에서 이와 구별되는 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 자체가 하나의 규칙이다. 스릴러보다는 추리극에 가깝다. 만화에 비유하면 <라이어 게임>이나 <신이 말하는 대로>를 꼽을 수 있다. 어떤 규칙을 놓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에 ‘방 탈출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초반에 나오는 룰을 잘 파악한 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와주기 바란다.

‘지형주’라는 인물은 어떻게 해석했나? 시청자에게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다. 주인공이 워낙 유능해서 모든 걸 해결하는 전지적인 시점이 아니라, 시청자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사건을 맡고 해결해간다. 그래서 조금 더 친근함이 느껴질 수 있도록 펌도 했다.(웃음) 지형주는 적당히 뺀질거리고 적당히 유능한데, 이건 ‘보통 사람’에 더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래도 실제 나와 더 닮았을 테고. 지난해 선보인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이 완벽한 캐릭터였다면, ‘지형주’는 만능 형사는 아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분위기도 좀 더 밝아졌다.

최근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갔다. 수트를 입고 연기하는 모습이 나조차 지겨울 때가 있다. 그 때 독립영화 <야구소녀> 같은 작품을 만났다.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어지는 날이 다시 오겠지. 지‘ 겨움’은 일종의 원동력인 셈이다.

지형주와 본인이 얼마나 닮았다고 생각하나? 지형주가 불같은 성격이라 비유한다면, 나는 물에 가까운 것 같다. 다만, 가장 나무늘보 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불같이 고민 중이다. 나무늘보는 게으르게 사는데도 지금까지 종족을 잘 유지해오지 않았나. 그런 걸 보면 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전략을 분석해봐야 할 때다.(웃음)

하지만 수년간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쉼 없이 달려왔다. 계속해서 작품을 하다 보니, 최근에는 개인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다. 물론 자유 시간이 생겨도 영화나 게임, 운동을 하는 정도지만. 하지만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많은 사람이 힘든 일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우리 선조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선조들은 밥 한 끼만 잘 먹어도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봤을때 우리는 완전 금수저인 셈이다. 그래서 일단 그냥 한다.(웃음)

그게 연기를 해나가는 두 번째 원동력인가? 내 곁에 나를 지탱해주는 좋은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동기다. 스타일리스트,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매니저, 회사 식구들. 연기 활동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어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으며 함께 나아가
고 있다.

배우로 살아가는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재미’의 의미는 보통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사실 재미있는 건 집에 누워서 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일이 제일 재밌지.(웃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연기가 어떤 가치를 지닌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현장에서 수십 명의 스태프가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하며 애쓰고 있지 않나. 옆에서 나와 함께 고생하는 많은 사람과 같은 목적을 이뤘을 때 성취감이 크다는 것은, 이 일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지금 당장 집에서 영화를 볼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하겠나? 당장 보고 싶은 건 <1917>. <인비저블맨>과 <온다>도 보고 싶다. 최근에 예고편으로 접한 일본 영화 <악마> 또한 기대된다. 최근에 도저히 뭘 볼 시간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영화를 못 보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쩌면 ‘집에서 퍼질 수 있는 시간’을 길게 갖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웃음)

배우 이준혁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가장 평온한 곳. 우리 집에서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편히 할 수 있다. 영화도 많고, 게임기도 많다. 영화 <올드보이> 같은 상황이 와도 두세 달은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거다.(웃음)

이준혁

수트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스니커즈 핸스(Hance).

이준혁

레더 크롭트 재킷 노앙(Nohant), 와이드 팬츠 노이어(Noirer), 스니커즈 디올 맨(Dior Men).

동경하는 영화 장르나 감독이 있나? 어릴 때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좋아했다. 아마 우리나라에 장르물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더 관심이 갔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작품을 즐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좋아하지만, 마블 영화의 개봉도 기다린다.

몇 번이고 보고 또 본 작품이 있다면? 당장 생각나는 건 영화 <가타카>. <세븐> <가을의 전설> <파이트 클럽>처럼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작품도 많이 봤다. 시대를 타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어느 시간에 놓여도 공감되는 영화 말이다.

작품을 보며 쌓는 간접적인 경험은 연기에 어떤 도움을 주나? 영상도 하나의 문법이다. 작품을 계속 보는 것은, 그 문법을 이해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 소통할 때도 그렇게 배운 영상 문법으로 대화한다. 내일은 다시 드라마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가오는 생일에도 촬영을 하게 될까? 올해 3월 13일이 ‘13일의 금요일’이라 호러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미 촬영이 잡혀 있다. 그리고 그날은 감독님의 생일이기도 해서,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웃음)

이번 드라마의 설정처럼 1년 전으로 리셋한다면, 생일을 즐길 수 있을까? 딱 1년 전이면 <60일, 지정생존자>를 촬영하고 있을 땐데 극심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직전 영화인 <야구소녀> 때 살을 찌워서 한 달 만에 9kg을 빼야 했다.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다. 그러니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생일날 촬영이 조금 일찍 끝난다면 매니저와 집에가서 ‘랭전’을 할 생각이다.

‘랭전’이 뭔가? 게임 랭킹전. 내 선물은 그거면 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