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Satelite’, 잘 듣고 있어요. ‘수지’라는 이름으로 오랜만에 들려주는 음악이죠. 어떤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에요? 음악에서 점점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불분명해지고 잊게 되는 때가 있잖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강현민 선배님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일기예보, 박혜경, 러브홀릭스 등의 음악에서 밴드의 일원이자 작곡가로 활동한 분이죠. 네.맞아요. 그분과 작업하기로 하고 공개하지 않던 제가 작곡한 노래들을 들려드렸어요. 들으시고는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색의 노래를 하고 싶은 거구나’ 하며 서로 의견을 좁혀갔고요. 그러다 ‘Satelite’를 들었는데 인트로부터 참 좋았어요. 선배님도 본인이 아끼는 곡 중 하나라며 조금 아까워하시더라고요.(웃음) 곡을 결정한 이후부터는 ‘우리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재미있게 하자’ 하는 마음으로 완성해 갔고요.
직접 가사를 쓰며 떠올린 이미지나 분위기가 있다면 뭐였어요? 제 성격 탓인지 이번 노래에서는 말이나 의도가 선명하고 뚜렷하게 전달되길 바라지는 않았어요. 분위기 정도로만 느낄 수 있길 바랐죠. 이런 마음이 가사에도, 보컬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가사를 대부분 영어로 쓴 것도 그때문이고요. 가사를 입히기 전부터 ‘Satelite’라는 키워드가 정해져 있었어요. 그 안에서 가사를 써나간 거라 조금 어렵기도 했는데, ‘위성’의 속성만을 생각한 거같아요. 닿을 수 없는 것들, 닿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초반에는 연인을 생각하며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특정 대상이 있으니 오히려 갇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다 불분명하고 뚜렷하지 않도록 내용을 덜어냈어요.
담백한 음색도 새롭게 다가와요. 강현민 선배님이 저더러 저음이 되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음역대를 아예 낮춰서 불러보자고 하셨어요. 사실 저는 제 목소리니까 특별한 느낌을 받으실 줄 몰랐는데 다르게 들으시더라고요. 최종적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목소리 톤이 낮아서 그런지 저에게도 낯설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좋아요.
음악만큼이나 댄서 모니카가 참여한 뮤직비디오도 화제예요. 가이드 라인을 정하지않고,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해달라고 했다고 들었어요. 가이드 라인이 있다면 춤을 즉흥적으로, 몸이 느끼는 대로 춰달라는 게 디렉션이었어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재미있게 봤는데, 모니카님이 허니제이님과 배틀할 때 신발을 벗고 춤추는 장면에서 딱 ‘저거다’ 싶었어요. 당시 음악을 거의 완성하고 뮤직비디오를 구상 중이었거든요. 때마침 그 영상을 보고 ‘나의 뮤즈다’ 싶었어요. 댄서에게 3분 40초 동안 즉흥적으로 춤을 춰달라고 요청하는 게 실례일 수 있잖아요.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곡 전체를 즉흥적인 춤으로 채우는 게 어려운 일인데 매번 다른 춤을 보여주셔서 나중에는 컷을 고르는 게 힘들 정도였어요. 이 노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서 역할까지 한 셈이네요. 하나의 작업에 시작부터 끝까지 몰두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느끼는 부분도 있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된 점도있을 것 같은데요. 평상시에는 모든 일이 완벽하길 바라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크게 당황하지는 않더라고요. 되레 그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왜 본인이 100% 관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스스로 100% 관여하는 게 아니라면 뭔가 틀어지거나 타인의 말을 들어야하는 순간에 변수를 빠르게 수용하는 편인 것 같아요. 고집은 있지만 수용도 잘하는.(웃음)
집과 타협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죠. 고집을 부릴 수 있을 때, 고집을 부리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모든 일 하나하나가 다 내 기준에 만족스럽거나 충족되지 않아도 그대로 괜찮고요.
예상치 않은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이려 해요? 늘 예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웃음) 예측이 빗나가면 ‘역시 내 예측은 빗나가는구나’ 하고 편하게 넘기려는 편이에요. 예측과 결과에 연연하면 제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예측 가능한 일을 좋아하지만, 이 일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크잖아요.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아니고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생각의 방향을 바꿔왔어요.
매번 눈앞의 도전들은 잘 맞이하는 편인가요? 새로운 일을 앞뒀을 때 주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은 어떻게 돌파하는지 궁금해요. 사실 (도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단 도전하고 저질러놓고, 걱정하며 후회하는 편이에요. 결정하기 전에 오랜 시간 고뇌하고 괴로워하진 않아요. 물론 고심은 하지만 그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아요. 선택은 확실히 하고, 선택의 결과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감내하죠.(웃음) 그런데 이런 태도가 저에게는 맞는 것같아요. 사람은 일단 저질러 놓으면 어떻게든 하게 돼있다고 믿거든요.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날에도 일단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면 된다고 심플하게 생각하려 해요.
일단 몸을 움직여보는 거죠. 그런 실행이 지금의 수지를 만든 걸까요? 일단 도전하면 내가 어떻게든 그 도전을 잘해내려 노력할 걸 아니까요.(웃음) ‘도전을 하겠어!’ 하는 태도로 사는 건 아니에요. 도전을 위한 도전을 하기보다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선택하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같아요. 하지만 대단한 도전을 하기 위해 살지는 않아요.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저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저 어떤 순간에 그때 그때 잘 이겨냈다하는 정도인 것같아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움직인 것도 아니고요. 이런 순간들이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은 어떤 음악이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요?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 <조용한 희망>을 봤어요.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봤거든요. 왜 조용한 희망일까하며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잠을 못 자고 볼 정도로 몰입이 되더라고요. 이야기 초반에는 보기 힘들고 불편한 장면도 있어요. 주인공이 거듭 잘못된 선택을 할 때는 답답해하며 견뎌야 하고요. ‘아니야, 돌아가지 마!’하게되는데, 결국에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정말 좋았어요.
<조용한 희망>, 참 좋죠. 수지 씨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막연하지만 대체로 잔잔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도 무던하고 진폭이 적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요. 하지만 인간은 복잡하잖아요! 저는 즉흥적이고 성격도 급한편인데, 지금 여기서 잔잔한 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니까 스스로 되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데요?(웃음) 잔잔한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좋아하는 게 다르고… 오늘은 어쩐지 질문마다 다른 자아가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