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무대 인사에서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봤는데, 오늘 촬영장에서도 활기찬 기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했다. 오늘 내 딸도 봤나?(웃음)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두고 아들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투 에너제틱.(웃음) 나를 닮아서 내 딸도 힘이 넘친다.
힘차고 씩씩한 기질이 배우로 살아가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우선 체력적으로 도움을 받고.(웃음) 그보다는 낯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작품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연기하고 싶기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 일이 작품마다 새로운 감독과 스태프, 배우를 만나야 하는 일이지 않나. 환경과 사람 등 다양한 변화에서 활력을 얻는다. 단점이 있다면 피로가 극에 달해도 알아차리지 못해 무리할 때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이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그러잖아도 박찬욱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 후시녹음 당시 탕웨이 배우가 좁은 부스 안에서 대사 하나를 수백 번씩 해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그랬었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웃음) 근데 그건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다. 촬영 당시 같은 장면을 무수히 반복해 촬영하기도 했다. 근데 그건 우리가 완벽한 결과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때문일 거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생각에.
‘송서래’로 산 덕분에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어떤가? 처음 겪은 일이 굉장히 많다.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커피 차 문화다. 재미있는 게 가족들도 커피 차를 보내줬고, <원더랜드> 찍을 때는 박찬욱 감독이 커피 차를 보내줬다. 심지어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웃음) 영화 상영 전후의 무대 인사도 내겐 새로운 일이다. 중국 영화계, 미국 영화계 등 어디에도 없는 문화다.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기는 듯 보인다. 맞다. 이 모든 과정이 신선하고 즐겁다. 무대 인사를 다니다 보면 한국 팬들이 굉장히 귀여운 게 플래카드를 많이 주신다. 중국에도 플래카드 문화가 있지만, 배우에게 선물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받은 플래카드 중에 ‘내가 당신의 부인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게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외국인이어서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박찬욱) 감독님에게 이야기하니 감독님도 예전에 ‘감독님 나한테 시집오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받으신 적이 있다더라. 감독님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셨다고.(웃음) 한국의 젊은 영화 팬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청소년 관객의 메시지도 몇 번 받은 적 있다. 이 에피소드를 감독님에게 전하면서 ‘감독님은 우리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서도 일하시지만 한국의 중・고등학생 관객을 양성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답다는 말이 이렇게 힘이 없나 싶을 정도로 영화가 아름답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며칠 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지 않나.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웃음) 마지막 해변 장면 중에서도 특히 해준(박해일)이 내내 꽉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고 해변을 뛰기 시작하는 신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휴대폰을 꺼내 스틸 컷을 보여주며) 오늘 아침에 이 스틸 컷(해변가에서 해준이 하늘을 보며 우는 장면)을 보는데 순식간에 수많은 기억이 쏟아져 울고 싶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이다. 이 사진(해준이 소파에 앉은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장면)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많은 배우들과 연기했지만 박해일 배우처럼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낄 정도로 몰입하는 배우를 만나지는 못한 것 같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고 박해일 배우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근데 나는 여기 이렇게 남아 있는데 해준은 떠났다. 해준 씨는 지금 다음 영화 홍보하러 갔다.(웃음)
서래는 쉽게 품위를 놓지 않는 사람이다. 탕웨이 배우가 지닌 성정을 떠올리며 영화 속 ‘꼿꼿하다’는 대사가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탕웨이와 서래의 접점을 느끼도 했나? 돌아보면 서래와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다.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도전하려는 태도도 그렇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하는 부분도 비슷하다. 근데 나는 오히려 박찬욱 감독이야말로 꼿꼿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현장에서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세팅되도록 하고, 실수가 없도록 매사에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이다. 감독님이 쓴 콘티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느껴진다. 모든 스태프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섬세하게 작업을 이끌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단단하고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서래는 꼿꼿하면서도 주도적인 사람이다. 이 사랑의 끝이자 시작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지 않나. 좋은 영화 감상법이 아닌 줄 알지만, 순간순간 서래에게서 배우 탕웨이를 봤다. 서래에게서 나를 봤다면, 아마 그건 중국 남방 여자의 특징을 본 걸 수도 있다. 중국 남방 지역에서는 주로 여자들이 많은 일을 주도적으로 이끈다. 내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랬다. (동석한 매니저를 가리키며) 이 친구 어머니도 그렇다. 주관이 분명하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어쩌면 그게 서래의 얼굴이 고단한 삶에 지쳐 피로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이유라고 생각했다. 메이크업을 해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웃음) 근데 정말 늘 피곤했기 때문에.(웃음) 촬영 기간 내내 하루 종일 촬영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촬영 마지막 주에야 겨우 한국어 단어 발음을 하나하나 연습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영화 마지막 부분, 서래가 석양이 지는 바다 먼 곳을 바라보지 않나. 서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묻는다면 그 순간이라고 답하고 싶다.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은 상태의 얼굴. 사랑으로 인한 모든 것을 각오하고 감내하는 동시에 가장자유롭고 홀가분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서래의 어떤 면을 가장 사랑했나? 운명이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든 회피하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결정한 것을 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태도. 그가 품고 행한 모든 결의를 사랑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면 탕웨이 배우였기에 서래의 기품이 더 단단해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웃음) 어릴 때부터 주관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빠르게 파악하는 편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매번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설사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걸 겁내는 편은 아니다.
본인의 무엇을 믿는가? 타고난 방향감각을 믿는다. 주변에 나만큼 방향 감각이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웃음)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가서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 그래서 어딜 가도 좀체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경험 덕분에 독립적 성향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어디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갈 것임을 믿는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얻은 게 있다면 뭘까? 한국 관객을 더 많이 만날 기회였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 굉장히 기쁘다. 박찬욱 감독과 박해일 배우를 생각하면 가슴 저 아래에서 훈훈한 온기가 돈다. 이는 세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서로 공유하는 특별한 감정 같다. 그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촬영장에서 아주 작은 테이블 놓고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던 풍경이 떠오른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공통점이 있나? 밝고, 선량하고, 독립적이다. 일상을 즐길 줄 알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지녔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일에도 자주 ‘뭐지?’ 하는 눈빛을 짓는 사람들. 남편도, 딸도, 아버지도 다 그런 사람이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와 해준도 서로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보고,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사람이다. 아, 그리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지독한 집순이, 집돌이들이다. 매 순간 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