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카즈하 인터뷰

르세라핌 카즈하 인터뷰

민트 컬러 드레스 지방시(Givenchy), 펑키한 디자인의 데인저 트라이브 이어링과 이어 커프 모두 타사키(TASAKI).

르세라핌 카즈하 인터뷰

슬릿 포인트 드레스 스포트막스(Sportmax), 강렬한 디자인의 네크리스 불가리(Bulgari).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데뷔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카메라 앞에서 꽤 능숙해 보였어요. 재미있었어요. 컷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아직도 조금 어색하지만 경험 많은 멤버들 덕분에 비교적 빨리 적응하는 중이에요.

어떨 때 가장 어색해요? 귀여운 컨셉트를 소화해야 할 때요.(웃음) 제가 가진 모습과 가깝지 않다고 느껴서 그런가 봐요.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 르세라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빼곡히 담긴 영상이더라고요. 사실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기도 하고 좀 놀랍기도 했어요. 저는 네덜란드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제 막 시작하는 제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지금까지 제가 어떻게 해왔는지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그때의 저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보면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겠죠? 제가 우는 장면이요. 한국에 와서 팀에 합류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때라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선생님이나 멤버들 모두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울컥했어요.

낯선 환경에서 안도감을 주는 존재를 만났을 때, 힘이 탁 풀리면서 울음이 나는 순간이 있죠. 맞아요. 그런데 그 정도로 운 줄은 몰랐어요.(웃음) 엄청 서럽게 울더라고요.

멤버들과 줌 미팅으로 처음 만났다는 것도 다큐멘터리를 보며 알았어요. 팬데믹 시대의 만남이랄까요. 네덜란드에서 연습하다가 한국에 왔는데 격리 기간을 거쳐야 했거든요. 그때 우선 줌 미팅으로 인사를 나눈 거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한국말을 지금보다 훨씬 못할 때라 번역기로 미리 정리해둔 인사말을 하느라 멤버들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요. 자기소개를 하느라 바빠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던 거죠.

어떤 말을 준비했어요? 열심히 준비해온 멤버들에겐 저라는 존재가 갑작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거 말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대로 된 인사는 직접 만나서 한 것 같아요.

네덜란드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던 시절, 방에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겠다’, ‘행운의 여신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등 좌우명 같은 문구를 포스트잇에 적어 벽면 가득 붙여둔 장면도 인상 깊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습관 같은 거예요. 잊지 않고 싶은 단어나 말을 써놓고 계속 봐요. 제가 마인드 컨트롤 하는 방식이에요.

요즘은 어떤 문구를 붙여놨어요? ‘즐기는 사람이 이긴다.’ 요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에요. 하면 할수록 욕심이 생기고 그만큼 고민도 많아지는데, 이런 시기일수록 걱정하기보다 상황 자체를 즐기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어차피 해내야 하는 일이라면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단순하게 바라보고 즐거운 부분을 찾아내려고 해요.

그런데 한국말을 참 잘하네요.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익힌 언어라고 하기에는 어휘력이 풍부해요. 그런가요?(웃음) 영어를 배울 때도 그랬는데, 결국 계속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그러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꾸 말을 거는 용기를 내는 게 더 어려웠죠. 다행히 멤버들이 제가 실수해도 겁먹지 않도록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빨리 익힐 수 있었어요.

 

르세라핌 카즈하 인터뷰

그린 컬러 톱 베이스레인즈 바이 비이커(Baserange by BEAKER), 니트 크롭트 베스트 더오픈프로덕트 바이 비이커(TheOpenProduct by Beaker), 실버 스커트 래림(Rae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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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컬러 드레스 지방시(Givenchy), 펑키한 디자인의 데인저 트라이브 이어링과 이어 커프 모두 타사키(TASAKI).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 외에도 처음 마주하는 것이 많았을 거예요. 모든 것이 처음이었어요. 발레를 할 때도 무대에는 많이 올랐지만 지금의 무대는 완전히 다른 형태잖아요.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아이 콘택트를 하는 게 중요한데 처음에는 무척 어렵더라고요. 안무도 발레와 몸을 쓰는 방식이 달라서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요. 팬들의 존재도 신기했어요. ‘어떻게 나한테 팬이 생기는 거지?’, ‘어떻게 대해야 하지?’ 싶어서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김)채원 언니랑 사쿠라 언니가 하는 걸 보면서 많이 따라 했어요.(웃음)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도 있었을 거고요. 랩을 하면서 중저음을 처음 내봤어요. 처음에는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서 괜찮나 싶었는데, 의외의 매력이라는 반응을 접하고 조금씩 제 중저음을 좋아하게 됐어요.

낯설고 생소한 이 세계를 탐험하며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가끔 그냥 발레를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아마 그랬어도 제 방식대로 열심히 했을 거예요. 다만 지금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 길이 훨씬 더 다양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더많은 길이라는 점에서 잘한 선택이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나요? 계속 성장해서 더 큰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은 늘 있어요.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더 많은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또 무엇보다 무대에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 없이 완벽히 즐기기만 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고요. 아직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많은 편인데, 언젠가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상태로 무대에 서는 게 목표예요. 제가 그런 퍼포머들을 좋아하거든요.

르세라핌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어요. 전작과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던 걸요. 데뷔 앨범에서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시련이나 충격도 다 나를 만드는 과정이니 잘 마주하고 극복하겠다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어떤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 식대로 재미있게 즐긴다는 태도가 있어서 전보다 더 경쾌하고 신나는 무드를 보여주려고 해요.

가장 마음에 와닿은 가사는 무엇인가요?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토슈즈/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제 파트인데, 오랜 시간 제 삶의 일부였던 발레를 멈추고 새로운 길을 택한 제 선택을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가사나 퍼포먼스로 제 이야기를 전하는 시도를 계속 해보고 싶어요.

데뷔곡 ‘FEARLESS’와 두 번째 앨범의 ‘ANTIFRAGILE’에선 지금까지의 나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제는 앞으로의 자신을 이야기할 기회도 있을 거예요. 맞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 같아요. 이제는 더 강하고 당당해진 저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도 해보고 싶어요. 계속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중인가요? 연습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직접 몸으로 부딪쳐 해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 오늘도 촬영 끝나고 연습실로 향하나요? 그럼요. 매일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