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솔로 첫 정규 앨범 <ALPHA>가 나왔어요. 맞아요. 그럼 이 촬영과 인터뷰는 1주년 기념인 셈이 되겠네요.(웃음)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요? 앨범이 나오고 그 안에 담긴 곡들로 한참 공연을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직 <ALPHA>라는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중인 거죠. 앨범을 만들면서 느끼는 점과 거기에 담긴 음악들로 무대에서 관객과 같이 호흡하면서 얻는 경험은 또 다르거든요. 지금은 후자의 경험을 하는 단계인 셈이에요. 이건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요즘 너무 즐겁게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1년이 되었으니 이제 이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네요.
관객과 교감하며 음악이 달리 보이는 지점도 있었겠죠? 저는 공연을 할 때 감상하기 좋은 곡이 있고, 같이 놀기 좋은 곡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그 분리 지점을 관객이 만들어주거든요. 예를 들어 ‘HWA’나 ‘5 STAR’도 듣기 좋은 곡이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막상 페스티벌에 가보니 같이 따라 부르며 즐기는 분이 많아서 놀랐어요. 이런 식으로 활동하면서 저 역시 제 음악에 대해서 배워가고,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 앨범이 나왔을 때 ‘CL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심심찮게 쓰였어요. 사실 제 기준에서는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혼자가 됐을 때가 오히려 분기점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오랫동안 함께하던 회사와 그간의 시간을 마무리 짓고 발표한 첫 프로젝트다 보니까 그렇게 봐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 회사를 만들고, 팀을 꾸리며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워가면서 준비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두 번째 챕터가 맞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큰 앨범일 테지만, 특히 시작부터 끝까지 독립적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는 점에서 더 특별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다 책임져야 했거든요.(웃음) 빠르게 움직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과정을 꼭 겪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큰 회사랑 일을 하든 계속 이런 방식을 택하든, 우선은 겪어보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가기 힘들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 선택으로 만든 앨범이라서 저한테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선택에 앞서 질문을 던지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매 단계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컸어요. 그저 CL이라는 아티스트로서 결정하면 된다 싶지만, 또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새로운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또 거기에 치우쳐서도 안 되고요. 질문과 답을 스스로 찾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을 거예요. 앞으로 이 부분은 내가 계속해서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 혹은 아니다 판단할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다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어떤 부분은 자신감이 생겨 더 배워서 해나가고 싶고, 또 어떤 부분은 혼자 할 일이 아니라는 걸(웃음) 깨달았어요.
그럼 요즘 관심 있는 장르가 궁금해지는데요. 있는데, 다음 앨범에 대한 너무 큰 힌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웃음)
<ALPHA>를 만들며 독립적으로 음악 작업을 하며 누릴 수 있는 럭셔리를 경험했다는 말을 했어요. 어떤 의미의 ‘럭셔리’인가요? 자유로움이요. 어떻게 보면 틀 없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한 거죠 뭐.(웃음) 아마 이건 창작하는 모든 아티스트에게 최고의 럭셔리가 아닐까 싶어요. 그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그 자유로움이 1년여간 활동한 무대로도 이어진 것 같아요. 음악 방송부터 국내외 페스티벌, 대학교 축제까지 아주 다양한 무대에 올랐어요. 이번에 처음 해본 게 되게 많아요. 혼자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대학 축제 무대에도 오르고, 피처링도 랜덤으로 하고. 여태까지 거절했거나 도전해보지 않은 것을 이번에 무조건 한 번씩은 해볼 거야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나중에 안 할 것이 많긴 해요.(웃음) 그럼 왜 그렇게 다 한 거냐고 묻는다면, 한 번은 꼭 해보고 그 안에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고 싶어서 한 시도였어요.
귀중한 발견이 있었나요? 많이 정리됐어요.(웃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도 있었으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시도할 방식이 명확해지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ALPHA>를 만들면서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 이제 계속 물 주면서 잘 키워야죠. 다만 이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는 모르는 거예요. 2NE1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요. 꾸준히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다 보면 또 재미있는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꾸준해 해나가는 것. 그 마음이 두 번째 챕터를 이어가는 동력이 되나요? 그렇죠.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까 저에게는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었어요.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억지스러운 거죠.
담대한 사람인 것 같아요. 시스템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홀로 해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울 수 있는데, 모든 일을 그저 했다고 말하잖아요. 예전부터 그런 마음은 있었어요. 큰일은 작은 것부터, 작은 일은 크게 보고 가자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에요. 물론 두렵기도 했죠. 그런데 그건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잘해내고 싶으니까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ALPHA> 앨범의 부제가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자’거든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거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사랑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새로운 길 앞에 선 누구에게나 용기를 줄 만한 말이네요. 맞아요. 그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요.
CL이라는 아티스트로서 공개한 모든 음악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거예요. 음악을 하는 데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곧 자신인 걸까요? 그렇죠. 이걸 몇천 번, 몇만 번 부를 수도 있는데 제가 진심이 아니면 즐기지 못하잖아요. 그걸 관객도 알아볼 거고요. 그래서 혼자 만들어가는 곡에는 가장 솔직한 나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기도 할 것 같아요. 꿈꾸는 바 중 하나예요. 독립적으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면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제 앞에 나타났으니, 이를 통해 저 자신이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자연스럽게 제 음악도 더 깊고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