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촬영일 기준) 2 주 조금 넘었어요. 오자마자 다시 일에 집중하고 있죠.
한동안 바쁘게 지냈을 것 같아요. 결혼식과 얼마 전 선보인 첫 번째 정규 앨범 <Pieces of_>준비를 동시에 하느라요. 태어난 이후 제일 바빴어요.(웃음) 뉴욕에서 돌아올 때쯤 앨범을 내겠다는 목표는 있었어요. 올해 4 월부터 세 달 동안 뉴욕 본가에 머물며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과는 조금 달라 다음 앨범에 넣기로 했어요. 결혼식 직전까지 제가 주로 해오던 스타일로 새로운 곡 들을 썼고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낄 어쿠스틱 포크, 첫 번째 EP 에서 시도한 신스팝 장르의 음악을 중심으로 <Pieces of_>를 구성했어요.
첫 정규 앨범이라 감회가 특별하죠? 2015년에 <슈퍼스타K 7>을 마친 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7년 만이네요.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얼른 들려주 고 싶었어요. 이 외에 큰 바람이나 기대는 없어요.(웃음) 작업 초반에 세워둔 음악적 목표는 있지만, 곡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앨범을 완성해가다 보니 어떤 결과보다는 과정이 저에겐 더 중요해지더라고요.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옛 생각과 감정 을 ‘조각’에 비유하고, 음악에 담아냈으니까요. 오랫동안 해온 생각, 아스라이 일렁이는 감정의 조각들이 흩어 져 있다가 하나의 앨범으로 모였어요.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조각도, 나쁜 기억을 새긴 조각도 있죠. 지나온 날 들을 떠올리며 당시의 제 마음을 녹여낸 음악을 완성했 을 때 오는 만족감에 뿌듯했어요.
음악이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어준 셈이네요. 이번 앨범이 특히 더 그래요. 각 곡을 ‘Pieces of _’라는 문구 로 표현할 수 있고,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가 있어요. 이를테면 너(you), 청춘(youth), 그녀(her) 등이 될 수 있겠죠. 빈칸으로 남겨둔 이유는 듣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해석으로 그 자리를 채워주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트랙 리스트를 살펴보며 첫 번째 곡에 궁금증이 생겼어 요. ‘Northside, 1995’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기억이 명확한 것 같았거든요. 1995년, 제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노스사이드(Northside)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를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만든 이 노래가 <Pieces of_>의 시작을 알리기에 적절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한가요? 항상 그리워요. 한 국에서 자라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들이 한국의 길거리 음식이나 분식집에 향수를 갖고 있듯이, 저도 오감으로 동네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자주 떠올려요. 그런데 슬픈 감정이 들지는 않아요. 따뜻한 마음으로 그리워하 고 있죠.
어린 시절의 케빈오는 집의 작은 다락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 들었어요. 뉴욕에 케빈오 의 다락방이 있다면,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업실, 녹음실, 무대요. 뉴욕의 작은 다락 방에서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아요.
앨범 발매 전에 선공개한 ‘너도 나도 잠든 새벽 (Dawn)’ 은 작사가 이름에 눈길이 가요. 배우 공효진 씨가 이 곡 의 가사를 썼더라고요. 계기가 있나요? 어느 날 그가 저한테 새벽에 직접 쓴 편지를 주더라고요. 너무나 사랑해서 이 감정이 사라질까 봐 두렵지만, 사랑에 대한 믿음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편지를 읽으니 신기하게도 가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보통 글로 마음을 전하면 말로 할 때보다 더 깊이 고민하거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어가며 진심을 담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가 제게 글을 보여줄 때 용기가 필요했을 거 라고 느꼈어요. 그 글을 가사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침과 저녁, 빛과 어둠 사이에 짧게 혹은 동시에 존재하는 새벽의 느낌을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완성된 곡을 들은 공효진 씨의 반응은 어땠나요? 작사는 처음이니 의미가 특별했을 것 같아요. 너무 기뻐했죠. 그가 평소에 워낙 솔직한 편인데, 참 좋다고 말해줘서 저도 좋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 가사 진짜 잘 쓴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근데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필명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타이틀곡 ‘Pieces of You’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자다가 깨어 즉흥적으로 쓴 멜로디를 활용해 만든 곡이에 요. 제가 꿈에 관한 이야기를 가사에 자주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음악에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이 곡이 사람들의 공감을 보다 많이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Pieces of_>의 타이틀곡으로 정했어요. 사실 제가 처음 타이틀곡으로 고른 곡은 ‘Pieces of You’가 아니었어요. 앨범의 모든 곡을 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특정한 한 곡에 힘을 주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럼 케빈오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아끼는 곡을 꼽는다면요? ‘Babo Song’이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멜로디가 뻔하고 가사도 조금 유치한 곡이에요. 심지어 제목 에 ‘바보’라는 단어가 등장하죠.(웃음) 그런데 계속 들어 보니 이번 앨범에 실어도 괜찮겠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선보인 음악의 분위기가 진중하다면, ‘Babo Song’은 가볍게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곡이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한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예요. 저와 함께 이번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이 이런 시도를 환영해준 덕분에 망설임 없이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이번 앨범에 담긴 가장 새로운 시도는 무엇인가요? ‘Dear Me, from Angel’에서 랩을 했어요. 3년 전 <슈 퍼밴드> 결선에서 부른 ‘Before Sunrise’의 내레이션 과 비슷한 느낌인데, 좀 더 랩에 가까운 형태죠. ‘Dear Me, from Angel’은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 님의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에요. 과거의 나 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노래에 담았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잠시 내려놓아도 다 괜찮다고요.
<Pieces of _>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몇 년간 연말 콘서트를 꾸준히 열었으니 올해도 기대해도 되겠죠? 그럼요. 앨범 작업도 재미있지만, 콘서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 아요.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현장에 있으면 너무 즐겁고 큰 감동을 느끼거든요. 공연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던 날들도 있지만, 이제는 우리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감사해요. 오히려 처음의 설렘과 긴장을 잃지 않으려 하고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요. 노래가 끝나면 관객과 헤어져야 하니까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입이 확 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관객들 도 같은 마음일 테고요. 첫 번째 단독 공연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마이크와 기타 없이 제 목소리에만 기대 노래했는데도 울림이 크더라고요. 꾸밈없이, 본연의 노래를 들려준 그 순간이 참 행복 했어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노래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케빈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이기적인 일인 것 같아요. 음악 안에 제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를 향한 희망 등을 담아내며 스스로 무언가를 해소 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우선이고, 노래하며 저 자신을 치유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렇게 완성한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다음부터는 저 자신을 누군가한테 내어주는 일이 시작될 테고요.
케빈오의 팬들이 사랑하는, 케빈오가 지닌 음악적 색깔 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직 명확한 색은 없는 것 같아요. 없어서 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으니까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따뜻한 노래를 많이 부르기는 해요. 제가 그런 사람인가 봐요.(웃음) 전부 제 안에서 나오는 노래이다 보니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음악의 코드나 진행 방식, 가사에 쓴 단어, 이야기 등이 반복될 때도 많고요. 그래서 제 모든 음악이 하나의 긴 노래라고 생각해요. 케빈오의 노래들은 거의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제 개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케빈오의 긴 노래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자리 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 고 생각하나요? 요즘 세상이 많이 혼란스럽잖아요. 안타까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잡음이 많고, 온라인 상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정보도 방대하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요즘 많이 헷갈려요. ‘이 모든 문제의 정답은 없다’는 생각에 다다를 때도 많고요. 그런데 그 정답의 자리를 사랑이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며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될 수는 있을 테니까요.
가정을 이루고, 첫 정규 앨범을 선보인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있어요.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이 케빈오의 두 번째 챕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스스로 많은 변화를 인지하며 좋은 기운을 품고 있어요. 다음 챕터에서 제가 무엇을 하게 될지 기대돼요. 자유롭게 작업해가며,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스스로 정의해보고 싶어요. 저에게서 비롯된 음악을 꾸준히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