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에스테틱 기업 멀츠 에스테틱스(Merz Aesthetics)가 아름다움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캠페인 ‘뷰티풀 프로미스(Beautiful Promise)’를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벗어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개개인의 열정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캠페인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다운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4명의 앰배서더가 선정되었다. 그중 비걸(b-Girl)김예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브레이킹 댄서로서 자신이 갈고닦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10월 말 2022 WDSF 세계 브레이킹 선수권 대회와 2022 브레이킹 K 시리즈 3차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초 부상이 있었는데도 무대에 올라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부상당한 직후에는 춤을 예전처럼 출 수 있을까 싶었어요. 3개월 동안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거든요. 치료를 받다 보니 괜찮아져서 운동과 재활을 병행했고, 지금도 회복 중이에요.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은 게 도움이 되었어요. 조금 괜찮아졌다고 바로 연습에 돌입하지 않고, 춤동작이나 스타일에도 변화를 줬죠. 춤을 추기 위해서는 몸을 똑똑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3일간 연달아 진행된 대회 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대회를 3일 연속으로 치르는 게 처음이고, 두 대회 이외에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많았어요. 걱정이 앞섰지만,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죠. 내년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 대회들을 무사히 마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2022 브레이킹 K 시리즈 3차 대회에서 1위를 해 2023년 브레이킹 국가대표 선발전이라 볼 수 있는 파이널 진출이 확정되었어요. 파이널 대회를 준비 중이지만, 그것 만을 목표로 삼진 않아요. 제가 춤을 춰나가는 과정에 크고 작은 대회가 존재할 뿐이에요. 2년 전 브레이킹이 올림픽 정식 정목으로 채택되어 국가대표 선수가 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책임감이 좀 더 큰 세계 대회가 새롭게 생긴 셈이죠.
올해 국내 최초의 브레이킹 국가대표 선수 중 한 명으로 활동했어요. 직접 경험해본 선수촌 생활은 어땠나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춤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거든요. 선수촌을 자유롭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집과 연습실을 오갈 때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며 언제든지 춤출 수 있었어요. 제 개인적인 의지에 선수촌의 훈련을 더해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브레이킹은 거꾸로 서서 돌거나 가만히 멈춰 있는 등 여러 어려운 동작이 있어서 체력과 근력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그래서 운동선수 못지않게 훈련해야 실력을 확실히 키워나갈 수 있죠. 그게 브레이킹이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체력적으로 지치는 순간도 찾아올 것 같아요. 그렇죠. 하지만 투정 부릴 이유는 없어요. 힘들 걸 알고 시작했으니까요. 어려움을 감수하고 시작한 이후에는 그게 무엇이든 불평하지 않는 편이에요.
예리 씨가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한 계기는 지난해 방송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예요. 요즘도 방송 출연으로 인한 인기를 실감하나요? 식당에 가면 아직도 서비스를 받아요.(웃음) 신기하게도 <스우파>의 인기가 쉽게 식지 않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만큼, 춤추는 사람으로서 더욱 성장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스우파>를 통해 예리 씨가 펼친 선한 영향력도 있죠. 청력이 좋지 않은데도 음악을 섬세하게 듣고 표현해 화제가 되었어요. 어릴 때 악기 연주를 배웠어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바이올린, 하모니카, 기타 등 제가 흥미를 느끼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었죠. 음감이 발달한 덕분에 춤출 때 흘러나오는 음악의 느낌을 빠르게 인지하고, 각 곡을 어떤 움직임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보다 수월하게 알 수 있어요.
신체의 한계를 딛고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비걸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해왔어요. 세계 곳곳의 실력있는 비걸들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연대감이 있어요. 이번 세계 선수권 대회를 위해 해외 비걸들이 많이 내한했는데, 그중 한국에 며칠 더 남아 있겠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어요. 서울에서 함께 어울리며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도 있고요. 또 다른 문화권의 비걸들과 연습하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경쟁자로서 어느 정도 견제하면서도, 남성 중심의 춤으로 여겨지는 브레이킹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서로를 존중하거든요.
최근 ‘나다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멀츠 에스테틱스의 캠페인 ‘뷰티풀 프로미스’의 앰배서더로 선정되었어요. 이 캠페인에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멀츠 에스테틱스가 캠페인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어요.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고,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진짜 아름다움이 라는 메시지가 참 좋더라고요. 저도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브레이킹의 영역 안에서 여성이자 청각 장애가 있는 저도 멋지게 춤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나다운 아름다움’을 본인의 언어로 정의한다면요? 보통 아름다움 하면 외모를 먼저 떠올리잖아요. 전 외모를 포함해 스스로 갈고닦은 ‘최고의 나’를 발견하는 게 나다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열정이 아름다움의 근원이 아닐까 싶어요.
매 순간 열정으로 임하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열정이 사그라지는 순간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어디에서 얻고 있나요? 혼자 이겨내는 것도 좋지만, 주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곤 하는데, 그럴 때 주변에서 “너 잘했어”, “레벨이 다르다”라고 말해주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요. 애정 어린 긍정의 말들이 제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줘요.
예리 씨가 춤추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춤출 때 머릿속을 부유하던 잡생각이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춤추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춤이 마치 제 인생의 동반자 같아요. 연인보다는 이미 결혼한 사이에 가깝죠.(웃음) 부부 싸움을 하듯이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춤은 제 삶 가까이에서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춤추고 싶어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계를 부수면서요.
현재 한국의 댄스 신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비걸을 위한 알맞은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어요. 몇 년전 청소년 올림픽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국 비걸은 저뿐이었고, 지금도 저를 비롯한 소수의 비걸이 한국을 대표해요. 그런데 우리가 후배들이 세계로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한국과 다른 나라의 비걸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한국 비걸의 실력은 부족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 비걸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끗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은 한국 비걸들이 세계적으로 기량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요.
미래의 비걸들에게 어떤 선배이고 싶나요? 일본의 1세대 비걸 나루미(Narumi)가 자국의 선수들을 돕기 위해 이번 세계 선수권 대회에 함께 왔어요. 한 일본 선수가 무대에서 실수를 해 넘어졌는데, 대회가 끝난 뒤 나루미가 그 선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더라고요. 4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에 남아 후배들을 보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언젠가 저도 후배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