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딸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며,
그들은 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_배우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배우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인터뷰

캐멀 컬러 롱 코트, 튜브톱 벨티드 드레스, 슈즈 모두 막스마라(MaxMara).

배우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인터뷰

니트 크롭트 스웨터, 플리츠스커트 모두 막스마라(MaxMara).

1973년부터 시작된 ‘우먼 인 필름(Women in Film, 이하 WIF)’은 영화 산업 안에서 여성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배우로서 여러 상을 받았지만, 이번 수상은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이 상은 여성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지지해온 것들에 대한 긍정으로 느껴진다. 이 상을 받으며 여성 배우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믿는 바를 위해 한 발언과 행동에 확신을 얻기도 했다. (시상식이 진행된) 어제 다른 부문의 수상자이기도 했던 케리 멀리건(CareyMulligan) 등 앞서 이 길을 걸은 위대한 여성 영화인들을 보며 그들과 같은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우러러보는 이들과 나의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음을,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이 그러했듯 나만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WIF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MaxMara Face of the Future Award)’를 수상했다. 막스마라는 WIF 행사를 시작한 이래 공식 스폰서십을 맺어온 가장 오래된 파트너 중 하나다. 상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도 유망한 여성 영화인에게 보내는 헌사다. 이상적인 여성의 ‘미래’와 ‘진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WIF와 막스마라가 이 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발언할 줄 아는, 용기와 열정을 지닌 여성상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여성들은 더 크게, 보다 거침없이 발언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적인 미래의 여성은 긍지를 지닌 페미니스트이자, 자신이 속한 산업의 불합리하고 부정적인 요소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여성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여름, 넷플릭스 영화 <두 인생을 살아봐>로 대중을 만났다. 영화는 ‘누구의 삶보다 더 나쁘거나 나은 삶은 없다’, ‘당신의 삶이 꼭 특정 방식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당장 SNS만 봐도 타인의 삶과 내 삶을 견주기 쉬운 시대이지 않나. 이 영화에 참여하며 ‘인생의 선택’ 혹은 ‘삶의 행복’에 대해 더 굳건해진 생각이 있나? 살다 보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결정에 대해 곱씹게 되는 때가 있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그때의 질문들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게 된다. 어떤 순간에는 무수한 질문은 내려놓고 본인의 직관적 판단을 믿고 따라야 한다. 이미 본능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이로운 길, 이롭지 않은 길은 없다. 그저 다른 길일 뿐이다. 일어날 일들은 언제고 일어나며, 다만 거기까지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을 뿐이다.

영화 <미스 스티븐스> <케미컬 하츠> 등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에 주로 참여해왔다. 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는 의지가 필모그래피에서 느껴진다. 맞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인플루언서인 건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주고, 우러러보는 팬이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긍정적인 표본이 되어야 하고, 마땅히 그럴 책임이 있다. 작품에서든 작품 밖에서든.

그런 맥락 안에서 여성의 외모를 가르는 기준과 평가에 대해 꾸준히 비판해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부에는 위선이 존재한다. 잘 가꾼 외모와 패션, 날씬한 몸매, 완벽한 화장, 결점 없는 피부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일순간 어떤 자리에서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널 좋아해. 우린 너의 체형과 몸매가 어떠하든 다 받아들일게”라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젯밤 시상식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몸과 피부를 보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올렸다. 피부 결점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로.

필터 없이. 필터 없이.(웃음) 여드름이 난, 있는 그대로의 얼굴로. 사람들이 나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건 거짓이니까. 구태여 세상에 거짓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그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솔직하고 싶다.

배우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인터뷰

니트 크롭트 스웨터, 플리츠스커트 모두 막스마라(MaxMara).

배우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인터뷰

롱 플리츠 드레스 막스마라(MaxMara).

다양한 기준을 지닌 건강한 몸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당신에겐 얼마나 중요한가? 자연스럽게 이 주제에 대해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는 나 자신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나는 이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해야만 하는 사람인 거다. 그래야 타인과 유대감을 느끼고, 내 감정을 다독이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몸을 옹호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지금은 자랑스럽다. 이 주제에 대해 말할 때 행복하다.

앞서 말한 엔터테인먼트계의 위선을 처음 인지했을 때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혼란스러웠다. 배우이니만큼 사진 촬영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 의상은 배우가 아니라 모델을 위해 만든 옷이다. 모델과 배우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사람들은 배우 역시 모델 사이즈를 갖춰야 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다양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 이 함께 살아가듯, 그 삶을 재현한 영화라는 매체에는 날씬하고 마른 인물만 등장하지 않는다. 패션과 영화 산업, 그리고 배우가 지금처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 패션업계가 보다 포용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다양한 사이즈의 옷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 그 옷을 입는 사람들을 위해 서라도. 이런 점에서 막스마라는 사이즈 폭이 넓은 브랜드이고, 연령을 초 월한 디자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높이 산다.

배우로 살아가는 한편 시집<Swimming Lessons: Poems>를 발표하고, 제작사 스몰 빅토리 프로덕션(Small Victory Productions)을 설립해 운영 하며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해온 다양한 경험이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시를 쓰는 건 감정을 표현하는 창의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그 과정에서는 치유를 경험했다. 제작사를 운영하면서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내 의견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내가 진지한 존 재로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 힘 있고 성숙한 존재로 느끼게 해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확신을 갖게 됐다. 할 수 있는 모험을 해나가며 스스로를 확장하는 경험은 곧 자신에 대해 새삼 깨닫게 하고, 나아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마지막으로 동시대 여성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내가 밀레니얼 세대이자 Z세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투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안 된다’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며, 기존의 폐해에 저항할 줄 알고 변화를 만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들이 제한되고 억압받았으며, 기회에서 소외되었는지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은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 피부가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지 않나. 지금 세대는 이 모든 억압의 소리에 ‘그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딸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며, 그들은 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해야 하고, 감사하게도 우리가 그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