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스텔라 도넬리 화보와 인터뷰

프린지 재킷과 줄에 걸린 랩스커트 모두 잉크(EENK), 셔츠 보카바카(VOCAVACA), 데님 스커트 메종 마르지엘라 바이 육스(Maison Margiela by YOOX), 부츠 레이첼 콕스(Rachel Cox), 줄에 걸린 니트 브라톱 아옵트(Aopt), 하늘색 카디건 문스워드(Moonsward),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데믹으로 멈췄던 콘서트 월드 투어를 3년 만에 재개했다. 아일랜드에서 출발해 영국, 덴마크, 일본을 거쳐 마지막 여정으로 한국에 당도했다. 투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그 사실만으로도 무척 신나는 여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 한국 공연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쁘고.(웃음) 여러 의미에서 한국에 가기를 바랐다. 한국에서는 첫 공연이다. 설렘과 기대가 공존할 것 같다. 기대보다는 놀라움, 신기함에 가까운 감정이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한국 팬 한두 명이 인사를 남긴 적이 있어서 그들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어를 간다니, 그럼 최소한 두 명은 넘는 것 아닌가.(웃음)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과 음악으로 교감하는 과정은 매번 내게 새롭고 진기한 경험이 되어주는데, 그런 면에서 궁금증을 잔뜩 안고 한국에 왔다. 이번 투어는 두 번째 앨범 <Flood>로 시작되었다. 이 앨범의 시작점에 대해 묻고 싶다. 2020년 말, 팬데믹으로 호주가 국경을 폐쇄했을 때 잠시 정착지로 삼았던 벨링겐(Bellingen)에서 새를 관찰하고 요리하고 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보내며 만든 음악이라고 들었다. 아마 그때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예전보다 일상이 느리게 흘렀고, 그래서 지루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던 시기였다. 자의적 선택은 아니지만, 그저 새를 보고 요리를 하며 보낸 시간 덕분에 나자신이 변할 수 있었고, 그래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지루함에서 탄생한 창작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새를 보며 받은 많은 영감을 담은 앨범이라고 들었다. 앨범 커버에 수십 마리의 새 사진을 담고, 투어 굿즈로 좋아하는 새 그림이 잔뜩 프린트된 티셔츠도 만들었다. 맞다. 새를 아주 좋아하게 됐다. 벨링겐에 있는 동안 한 친구가 새를 관찰하라며 쌍안경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걸로 하루에 몇 시간씩 새를 관찰하곤 했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새소리가 아름다운 코러스처럼 들리는 게 흥미로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새라는 생명체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새를 관찰하는 시간은 내게 명상의 시간이자 자기 반성을 통해 겸손해지는 시간이었다. 지난 앨범에 비해 사운드의 변화가 감지된다. 첫 앨범에서는 기타와 보컬만으로 이뤄진 경쾌한 리듬의 곡이 다수였다면, 이번 앨범은 다양한 악기를 동원해 사운드가 훨씬 풍성해졌다. 템포가 느린 곡도 있고. 벨링겐에서 지내며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천천히 사는 방식을 배웠다. 그래서 ‘Underwater’나 ‘Oh My My My’ 같은 곡이 탄생할 수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이런 곡은 너무 느리고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꽤 큰 변화가 생긴 듯하다. 피아노와 플뤼겔호른을 쓴 것도 이번 앨범에서 처음 시도한 음악적 장치다. 플뤼겔호른은 작은 트럼펫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트럼펫이 명확하고 밝은 소리를 낸다면 이 악기는 좀 더 부드럽고 둥글고 온화한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마치 사람이 만드는 코러스처럼 활용하고 싶었다. 사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며 완성했나? 상반된 두 가지를 같이 쓰면서 둘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에 집중한 것 같다.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한 곡에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첨가하거나 피아노를 녹음한 다음에 너무 클래식하게 흐르지 않도록 상반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음악은 재미없다. 그 반면에 대조되는 사운드를 한 곡에 섞기 때문에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 주관적인 선택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라 쉽지는 않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나의 감각을 믿고 선택하는 편이다. ‘Underwater’, ‘Flood’ 등 물과 연관된 제목의 곡이 많다. 의도한 건 아닌데, 앨범 작업을 할 때 바닷가 근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제목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다만 트랙 순서를 정할 때 그런 곡이 앞뒤로 붙어 있으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했다. 사운드 형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고 느꼈지만, 가사는 첫 앨범에서 그랬듯 사회문제를 서슴없이 제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 번째 트랙 ‘Restricted Account’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은 낯선 사람이 온라인상에서 일방적으로 말을 걸고, 애정을 갈구하는 온라인 스토킹에 관한 내용이다. 네 번째 트랙 ‘Underwater’ 에는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지만 호주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시기에 가정 폭력 사건이 300%나 증가했다고 한다. 10명 중 7명이 관계를 끝낼 때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최근 내가 인식하는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고, 그래서 꼭 음악으로 이 상황을 인지시키고 싶었다.

 

“ 지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직과 정의, 이 두 가지다.”

뮤지션 스텔라 도넬리 화보와 인터뷰

니트 원피스 아옵트(Aopt), 셔츠 문스워드(Moonsward), 네크리스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끊임없이 음악 안에 인종차별, 가정 폭력, 성범죄등 사회문제를 담아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나의 성향이고, 음악은 이를 표출하는 수단이다. 불의나 불평등을 마주할 때 굉장히 화가 나는데, 나로서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 음악이고, 가사인 셈이다. 많은 뮤지션이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 나 역시 지금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그것들이 특히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회문제다. 흥미로운 건 잔뜩 날이 선 가사와 대조적으로 사운드와 보컬은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경쾌하다는 점이다. 멜로디를 들었을 때와 가사를 되새길 때의 간극이 무척 크다. 그건 일종의 트릭이다. 내가 어떤 말이 하고 싶을 때 다짜고짜 큰소리부터 낸다면 듣는 사람은 놀라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십상이다. ‘저 사람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드럽고 유쾌하게 다가가면 우선 호감을 살 수 있고, 가까워지면 건설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 방식을 음악에 적용한 거다. 사람들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듣도록 조종하는 작업이랄까.(웃음) 보다 맛있어 보이게, 예쁘게 케이크를 만드는 방식과 같다. 트릭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게 음악의 힘이지 않나 싶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어떤 이야기를 따라 부르게 만드는 것 말이다. 맞다. 음악은 사실 어떤 외침이자 글이자 마음이자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잘 표현해내는 과정을 아주 좋아한다. 그저 분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만들어서 전파하는 과정이 즐겁다. 지금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정직과 정의. 만드는 곡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지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두 가지다. 전파하고 싶은 에너지는 또 다를 것 같다. 세상에 알리고 싶은 나의 생각을 담긴 했지만, 감정까지 전파하고 싶지는 않다. 분노나 슬픔을 담았다 할지라도 라이브 공연에서만큼은 모두가 즐거웠으면 한다. 다 같이 마음껏 웃고 노래하고 춤추게 만드는 것 또한 음악이 지닌 힘일 테니까. 또 같이 즐기며 나와 관객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그로 인해 더 큰 에너지를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