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과 톱, 모두 미우미우(Miu Miu).

 

“지금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영화를 한 번만 더 만나는 거예요.
이런 운명적 만남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2021년,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이 드디어 개봉해요. 관객으로서도 한참을 기다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배우로선 반가움이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 맞아요. 가장 오래 기다린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꽤 한참 전에 찍은 영화거든요. 영화 <콜> 촬영을 마친 직후에 바로 미국에 가서 찍었으니까요.

2019년이었죠? 네, 벌써 4년 전이네요. 게다가 저는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촬영하느라 영화제도 못 간 터라 아직 관객 반응을 접한 적이 없거든요. 너무 궁금해요. 다들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리 본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감상을 말하자면, 규정하기 어려운 영화예요.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로 밝혔지만 주인공 ‘모나’의 입장에서는 로드무비일 수도 있고, 드라마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누군가 어떤 영화냐고 물었을 때,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 그냥 봐야 해’라고 말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좀 무서웠어요. 새빨간 종이에 ‘블러드 문’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어쩐지 공포물 같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복사가 되지 않게 하려고 그랬대요.(웃음) 오해를 풀고, 다 읽고 나니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힙하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이후에 촬영하고,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파고들수록 되게 많은 레이어가 있는 영화거든요.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 지역의 종교 문화 중 하나인 부두교가 연상되는 부분도 보이고, 카르마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감독님이 여기엔 이런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모나를 연기한 제 관점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음악이 참 좋던데요. 그렇죠?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트랙 리스트도 같이 받아서 들었어요. 대부분이 당시에 제가 좋아해서 듣던 음악이더라고요. <Hotel Coste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자주 들었는데, 거기에 수록된 곡이 많았어요. 신기하고 반갑더라고요.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좋은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감독님이 엄청 큰 스피커를 가지고 다니면서 음악을 틀어줬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범상치 않은 힘을 지닌 채 낯선 세상에 나타난 모나라는 인물은 누군가에겐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또 누구에겐 한없이 유약하고 순진해 보이기도 해요.

모나를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요? 모나는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순수한 존재예요. 세속의 무엇에도 길들지 않은 채 오롯이 자신의 본능과 직관에 의존하는 인물이죠. 이 영화에 임하던 제 모습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한국에 있고 감독님은 미국에 있다 보니 초반부 미팅을 계속 줌으로 했는데, 촬영 전에 한 번은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매니저를 대동하지 않고 홀로 미국에 갔는데, 만나기로 한 날 길을 잃었어요.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헤맨 거죠. 그때부터 모나로서의 여정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실제로 대면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떤 답을 찾았나요? 어떤 설명이나 답을 듣기 위해 간 건 아니었어요. 감독님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요. 그냥 집에서 계속 영화만 봤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제가 모나를 연기하기 전에 봤으면 하는 영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영화를 봤어요? <슈퍼맨> 봤어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도요.

영화의 배경이자 촬영 현장이던 뉴올리언스는 어땠어요? 모나가 그랬듯 본인에게도 낯설고 생경한 환경이었을 것 같아요. 준비 단계가 있으니까 촬영 4주 전에 도착했는데, 그 4주의 시간이 되게 힘들었어요.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야 하는데 호텔로 가니까 뭔가 그 도시에 갇힌 것 같더라고요. 스테이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국 스테이크가 더 맛있는 것 같고.(웃음) 여름이었는데 날씨가 동남아시아처럼 엄청 습하고 더운 데다 느닷없이 비도 자주 와요. LA에 사는 사람들이 일주일씩 휴가를 오는 곳이라는데 도대체 왜 여기에 오는 거지 싶은 거예요. 그런데 촬영 들어갈 때 즈음 되니까 뉴올리언스가 좋아졌어요.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가고 싶어요.

영화를 보면 가고 싶어지는 도시는 아닌데요.(웃음) 그렇죠. 그런데 머물다 보면 좋아져요. 구시가지에 버번 스트리트라는 곳이 있어요. 관광지로 조성된 곳은 아니어서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닌데, 그냥 거기 걷는 게 좋았어요.

작업 방식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나요? 현장에 매니저를 대동할 수 없고, 배우별로 쉴 수 있는 컨테이너가 있더라고요. 이 외에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리나라 현장과 좀 달랐는데,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체험을 통해 분명히 무언가 얻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영화를 좀 편식했어요. 어느 나라 영화는 잘 못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다양성이 뭔지 배웠어요. 생각하는 범위도 넓어졌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랑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국내에 국한해서 작업하진 않을 것 같아요.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 또한 이번 영화로 얻은 귀중한 인연 중 하나겠죠? SNS와 여러 인터뷰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을 적잖이 접했습니다.(웃음) 공식 인터뷰에선 감독님이라 칭하지만 평소에는 릴리라고 불러요. 릴리라는 사람이 제 옆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어요. 함께하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촬영이 끝나면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서너 통씩 보내줬어요. 편지를 써서 줄 때도 있었고요. 그만큼 저를 많이 사랑해줬어요. 매니저가 둘이 사랑하는 사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요.(웃음)

문자메시지 내용이 궁금한데요. 오늘은 너의 이런 부분들이 보였고, 내일은 저런 모습을 보고 싶다. 촬영할 때 너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들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걸 가진 배우이고, 사람인지를 되게 많이 알려줬어요.

지난가을에 한 인터뷰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영화로운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때 경험하게 되는 이상한 무언가, 이를 매직 모먼트라 한다’고 대답했죠. 이 영화를 하면서도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있었죠. 그런데 그 장면이 영화에 안 쓰였더라고요.(웃음) 괜찮아요. 꼭 그 테이크가 아니어도 촬영하는 3개월 내내 영화 안에 머무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찍힐지 신경이 곤두선 적 없이 진짜 모나의 순수한 시선을 따라가기만 했어요. 지금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영화를 한 번만 더 만나는 거예요. 이런 운명적 만남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운명적 만남이 인생에 단 한 번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기다려보려고요.

 

레이스 톱 루이 비통(Louis Vuitton), 팬츠 팜엔젤스(Palm Angels), 헤어핀 셀린느(Celine).

재킷과 톱, 스커트, 벨트 모두 미우미우(Miu Miu).

점퍼와 레이어링한 레이스 톱 모두 프라다(Prada), 안에 입은 니트 톱과 팬츠 모두 셀린느(Celine).

니트 크롭트 톱 베트멍(Vetements), 팬츠 디젤 (Diesel), 안에 입은 브리프 오프화이트(Off-White™), 화이트 큐빅 슈즈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하트 이어링 비올리나(Viollina).

크롭트 카디건과 안에 입은 톱 모두 (Rokh), 블랙 카고 팬츠 무디디(Mudidi),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레스와 레이어드한 슬리브리스 톱 모두(Rokh), 니하이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