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과 셔츠 모두 서커스폴스(Circusfalse),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레더 재킷 쇼트(Schott), 셔츠 서커스폴스(Circusfalse), 팬츠 엠에프펜(Mfpen), 슈즈 레페토(Repetto),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Swarovski).

 

2013년 데뷔한 이후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올랐죠. 이후 매체를 오가며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대학 졸업 후 자연스럽게 연극 무대에 섰어요. 무대 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 한 인물에 긴 호흡으로 몰입하고 연기하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요. 영상 매체로 가서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호흡으로 집중하고, 몰입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이 제게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어요. 운 좋게 좋은 선배님과 동료들을 만나 뜻 깊은 시간을 보냈고요.

계원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니 동기와 후배 중에는 영상 매체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린 배우도 있었을 텐데요. 그 곁에서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던가요? 부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죠. 그래도 그때마다 나만의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이로울지 다시 생각하는 거죠. 기회가 닿는 대로 연기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 생각의 끝은 늘 무대였고,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통해 선물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무대는 실시간이잖아요. 되돌릴 수 없고요. 무대만이 지닌 특수성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요.

고등학교 때 2학년 때 공연한 연극 <우리 읍내>로 연기의 기쁨을 처음 느꼈다고요. 사실 그 전에는 친구들과 같이 연습하고 어울리는 게 마냥 즐거웠었어요. 한데 그날은 무대에 오르기 전 모두 함께 손을 모으고 눈을 마주보며 ‘파이팅’ 하고 외치는데 마음이 좀 이상했어요. 울컥했죠. 같은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무대에 함께 오르는 거잖아요.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싶어 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졌나 봐요. <우리 읍내>는 삶과 죽음을 다루는 내용이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어린 나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니까 더했을 테고요. 연습 때는 못 느낀 감정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나눴던 것 같아요. 공연이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졌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멈추지 않더라고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우리 읍내>에는 다양한 사랑과 이별이 등장하는데, 사실 그런 감정은 그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선이잖아요. 그럼에도 뭔
가가 다가왔었나 봐요. 관객의 눈빛이 더해지고요. ‘이게 뭘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내가 이 일을 하며 살면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렇게 연극 무대에 서다 서서히 영상 매체에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의 ‘도강재’ 역할로 존재를 강렬하게 인식시켰죠. 지금 제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을 정도인데요.(웃음) <금수저>의 ‘서준태’ <몸값>의 ‘고극렬’ 등 유독 다양한 각도에서, 다층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왔죠.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파하고자 하는 편인가요? 어려워요. 늘 새롭게 어려운 일이예요. 배우라는 일이 결국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설득해내는 작업일텐데요.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설렘과 고통이 동반되요. 결국 인물에 대해 하나씩 궁금해하고, 질문을 쌓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주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며 인물에 가까워져요. ‘왜 이럴까?’, ‘지금 뭐 하는 걸까?’,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얘기할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요. 그렇게 인물의 근원을 조금씩 캐치해보려 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그렇다면 이 인물이 이 말을 할 때는 어떻게 말할까?’ 하고 보다 섬세한 질문으로 이해를 확장해요.

지난 인터뷰들을 살펴보면서 인물에 대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배우가 얼마나 준비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노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게 또 연기인 것 같거든요. 정직한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 배우에게 희열과 좌절을 동시에 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현장에서 연기가 잘되지 않는 순간도 많죠. 현장은 늘 그런 것 같아요. 그때마다 좌절하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고 더 철저하게, 충실히 준비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에요. 매일매일 그날의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 촬영 분량을 체크하고, 어려웠던 부분, 생각처럼 잘되지 않은 부분을 짚어봐요. 잘 된 부분은 왜 잘됐는지 확인하고요. 더불어 당시 내 심리 상태까지도 점검해요. ‘아, 이때 내 상태가 이래서 연기가 이렇게 나왔구나’ 해석해보는 거죠. 연기에 관해서는 작은 것도 놓지를 못해요. 한데 지금은 그것밖에 답이 없다고 믿어요.

돌아서서 크고 작게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순간들도 있을 텐데요. 이를 어떻게 다스리나요? 후회와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가까운 친구들이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요.(웃음) 근데 저는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에 대해 끝까지 들여다보려고 해요. 밖으로 꺼내 그 핵심까지 들여다보고 마침내 인정하는 데까지 시간을 써요. 그래서 하루를 정리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해요. 후회되는 부분이 있을 때 철저하게 끝까지 후회해보는 이유는 막연하게 후회해버리면 그냥 저를 싫어하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디가 왜 그렇게 후회되는지 짚다 보면 ‘아, 내가 여기까지밖에 준비를 못 해서 그랬구나’ 하고 인정하게 돼요. 그제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렇게 다음으로 향하는 원동력을 찾아요.

고된 과정을 압도하는 연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몰입의 순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한데 이전 과정이 잘 이뤄졌을 때 그 순간에 도달한다고 봐요.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고요.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큰 힘을 주거든요. 현장에서 테이크가 반복되더라도 더 좋은 결과물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힘들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힘듦이 즐거움과 행복으로 바뀌기도 해요. 삶에서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나와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이 과정에서 제 한계를 느껴요. 항상. 하지만 이제 내 한계를 인정하고 또다른 가능성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됐어요.

본인의 타고난 성정이나 기질이 연기에 도움이 될 때도 있나요? 평상시에도 예민하거나 민감한 편이기는 해요.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 사람이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세밀하게 헤아려보려 하고요. 이런 일상 속 관찰이 연기에 영향을 주기도 하죠. 어떤 감정을 내비칠 때 그 사람의 목소리 톤이나 떨림 등을 캐치해보려고 하고요. 배우로 살면서 타인에게 더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오늘 촬영 현장에서 유심히 본 사람의 행동도 있었어요?(웃음) 오늘은 제가 워낙 떨려서요.(웃음) 나 왜 이렇게 떨고 있지? 계속 손이 떨려요. 집에 가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겠죠.(웃음)

신기해요. 배우들이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를 하며 떨린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제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거든요. 평정심을 연기하고 있는 건가요?(웃음) 아닙니다. 평정심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심장은 엄청 뛰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계속 요동치고 있어요.

배우로 살아가면서 변화하고, 동시에 변화를 요구받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닳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뭔가요? 첫 순간, 그러니까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순간, 이 일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고 저의 구애가 시작된 순간을 매 순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연기를 바라봐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이 두 가지를 잘 지켜가고 싶어요.

 

셔츠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스카프 서커스폴스(Circusfalse), 링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재킷과 셔츠 모두 서커스폴스(Circusfalse),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재킷 사스콰치패브릭스(Sasquatchfabrix), 슬리브리스와 팬츠,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