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 드레스 프라다(Prada).

레이스 톱과 팬츠 모두 블루마린(Blumarine), 스커트 렉토(Recto), 브라렛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이스 톱 블루마린 (Blumarine), 브라렛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점점 현장을 중요시하는 건 내가 그 안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이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공개를 앞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나? <길복순>과 <택배기사> 등 선보일 작품이 남아 있는데, 빨리 공개됐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과 긴장감이 반반 섞여 있다.

‘길복순’(전도연)을 견제하는 인물인 ‘차민희’로 등장한다. 차민희를 어떻게 바라보려 했나? 차민희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캐릭터가 잡혀 있었다기보다 촬영하며 인물의 조각들이 점점 쌓이다 보니 성향을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다. 감독님의 디렉션 역시 ‘어떻게 하면 더 이상해 보일까?’였고,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좋다’고 하더라. 그 방향성에 따르다 보니 나 역시 처음 보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는가? 사랑하게 된다기보다 사랑해보려 하는 편이다. 아무리 악역이어도, 나라도 그 캐릭터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다.

차민희의 어떤 점을 사랑했나? 길복순을 사사건건 견제하고, 할 수만 있다면 제거하고 싶어하는 인물이지만, 대놓고 악행을 일삼는 악역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차민희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다. 연민과 사랑은 아주 가깝지 않나. 한데 이건 설명하기보다는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편이 낫겠다.(웃음)

변성현 감독, 전도연과 설경구, 구교환 배우 등이 함께한다는 조합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현장 자체가 배우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결정할 때 작품 자체보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현장을 더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점점 현장을 중요시하는 건 내가 그 안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전도연, 설경구 배우는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들이고, 이분들이 만들어온 경력과 경험의 아우라는 감히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이다. 현장에서 선배들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고 싶고, 그저 같이 있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변성현 감독의 날것 같은 디렉팅이 재미있어서 현장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어서 공개될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에서는 군인으로 등장한다. 배우 이솜이 연기해온 인물은 작품마다 결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자아가 강한 인물로 다가온다. 이쯤 되니 이 역할들을 취사선택했다기보다 짧은 순간에도 ‘나의 연기’로 변환한 배우의 역량으로 느껴진다. 주체적인 캐릭터를 좋아하고, 또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내 안에 있는 주체성이 많이 투영되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주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있나? 음, 나라는 사람… 일상에서도 주변에 크게 휘둘리는 편이 아니다. 고집이 있다.(웃음)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고. 설사 결과적으로 그 직관이 틀리더라도 ‘넘어지면 또 일어서면 되니까’ 하는 마음이 크다. 누가 봐도 득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에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해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선택하는 편이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게 내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어떤 캐릭터가 끌리면 그걸 해야만 했다. 스스로 인물이 용납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촬영 전 캐릭터에 대해 생각할 때 우선 나를 설득하려 한다.

인물에게 쉽게 동화되는 편인가? 혹은 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이해에 도달하는 편인가? 작품이나 캐릭터마다 다르지만 준비 시간이 주어지면 감독님을 수시로 찾아가 대본을 리딩하고, 대사를 다듬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질문도 많이 하고. <소공녀>의 ‘미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유나’가 그랬다. 한데 <길복순>은 이전 작품에 비해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갔는데, 그 스타일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연기에 이런 접근 방식이 있고,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백리스 톱과 스커트 모두 더 로우(The Row).

니트 튜브톱 렉토(Recto).

아카이브에서 영감 받은 재킷과 데님 팬츠, 실버 슬라이드 모두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아카이브에서 영감 받은 재킷과 데님 팬츠, 실버 슬라이드 모두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커리어를 배우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얻은 이솜만의 ‘다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델로 시작해 배우로 나아가는 경로에서 우회했기에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많은 경험을 한 것이 지금의 일에 도움이 됐겠지만, 그보다 앞서 스스로 도전에 나서게 한 동력이 되었을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모델 이미지를 지우고 싶어 더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이렇게 너무 힘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애써 이걸 지우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름의 분투가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스스로에게 냉혹한 편이다. 그래서 누가 칭찬해도 잘 듣지 못하고, 비판도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비판이라면 누가 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하기 때문에.(웃음)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살아오며 지금 내가 된 것 같다.

본인의 확고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잘 쉬어야 한다. 한데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잘 못 쉰다. 쉼에 대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배웠다.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쉬라고. 쉬는 날에도 할 일을 다 정해놓는 편이다. 마냥 쉬면 뒤처지는 것 같고, 안일하게 느껴져 싫었던 거다.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데, 막상 해보니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이제 2~3일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 좀 아파서 3일 정도 집에서만 지냈다. 이게 나에겐 엄청난 건데.(웃음)

몸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서는 외려 마음의 소리가 커지지 않나. 맞다. 그 점이 가장 힘들다. 어느 도시든 여행을 가면 그곳의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인다. 일 생각밖에 안 한다. 그러니 여행을 가도 잘 즐기지 못하는 거다. 근데 나만 그런 건 아니더라.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웃음)

자책이나 후회의 감정은 어떻게 다스리나? 매뉴얼이 있는데 단순하다. 반신욕을 하고 걷거나 운동을 한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본다. 예고편만 봐도 설레는 작품이 있지 않나. 너무 좋다. 누군가가 추천해준 영화는 거의 다 챙겨 본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뭔가? 이 질문에는 대답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왜? 어디선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가장 많이 봤고 좋아한다고 대답했는데 너무 시네필스러운 대답이라고 놀림당한 적이 있다.(웃음)

영화배우가 시네필인 게 뭐가 어떻다고.(웃음) 인생 영화 한 편을 고르라니 너무 어렵지 않나. 장르도 시대도 워낙 방대하니까. 인생 영화가 있나?

나는 누가 인생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가장 최근에 본 좋은 영화를 꼽는다. <애프터썬> 봤나?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그렇다면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바빌론>이다.

우리가 7년 전쯤 만났을 때도 영화 이야기를 꽤 길게 했던 것 같다. 이솜 배우가 아트하우스 영화관에 대한 애정이 컸던 것도 기억난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기는 즐거움과 영화 안에서 배우로서 연기하는 즐거움은 다를 텐데. 영화 안에서 배우로 사는 즐거움은 뭔가? 음… 영화 <바빌론>에 이런 장면이 있다. 브래드 피트가 아주 유명한 배우 역할을 하는데, 그가 촬영 중에 문득 현장을 둘러보는 신이다. 연기하다가 현장을 가만히 둘러보는 순간 기분이 참 좋다. 이 한 작품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자기 할 일을, 그것도 최선을 다해 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음… 답이 잘 됐나?(웃음)

 

니트 튜브톱과 데님 팬츠 모두 렉토(Recto), 뮬 프라다(Prada).

백리스 톱 더 로우(The 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