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할 것
차지연

네이비 스트라이프 베스트 레호 (Lehho), 체인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Portrait Report), 안에 입은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불공평한 신이시여,
인간을 조롱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불공평해.
난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장난질에
절대 굴복하지 않아.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줬어야지.”

연극 <아마데우스>, 안토니오 살리에리 役

 

크림색 베스트와 팬츠 모두 위크엔드 막스마라 (Weekend MaxMara), 브라운 스퀘어 토 슈즈 레이첼 콕스 (Rachel Cox),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누구보다 앞서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배우로서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나?
제작사든 감독이든 배우든 젠더 프리를 하나의 화젯거리로 활용하고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관객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고민해 잘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지금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

 

매년 젠더 프리 특집을 빠지지 않고 감상하는 구독자 중 한 명이라고 들었다. 2018년 첫 회부터 다 봤다. 보면서 내심 내게 제안이 오기를 기다렸다. 무대에서 이렇게 활발히 젠더 프리로 활동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지 싶었다.(웃음) 그래서 올해 제안을 받자마자 드디어 나도 해볼 수 있는 건가 싶어 되게 기뻤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1막 엔딩 장면을 연기했다. 음악가 살리에리가 천재성을 지닌 모차르트를 마주한 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다. ‘왜 나에겐 이런 재능이 없을까, 왜 나는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없는가’ 하며 갈구하고 욕망하는 대사에 깊이 공감해 선택한 신이다. 누구나 자신의 결핍으로 괴로울 때가 있지 않나. 나 역시 왜 천재적인 연기력이 없을까? 왜 노래를 이렇게밖에 못할까? 왜 난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 왜 더 나은 인격체가 될 수 없는 건가? 하는 갈망을 늘 품고 산다.

고민한 작품 중 하나가 영화 <연애의 온도>였다. 많은 사람이 나라는 배우를 세고 강한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반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일상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의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 하다가 촬영을 준비하면서 겨우 선택했다.

꽤 오래전부터 무대에서 젠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하면 배우 차지연의 이름이 꼭 있었다. 내가 가진 이미지를 깨뜨리거나 완전히 바꿔보려고 무척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배우로서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려 했던 노력이 젠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에도 이르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지나 감독님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끔 장을 만들어주었다. 연극 <더데빌> <광화문연가> <아마데우스> 등을 통해 배우도 관객도 젠더 프리라는 단어를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젠더 프리가 한때의 시도에 그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방식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배우로서 나의 모토가 ‘관객을 기만하지 말자’다. 그래서 허락된 시간과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 있으려고 한다. 언제나 맡은 인물로서 느끼고 생각하는 진심과 진짜를 관객에게 다 전하려 한다. 그게 나의 유일한 무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딘지 불나방 같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것이 배우로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나?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큰 힘은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동료들에게서 얻는다. 뭔가 요행을 바라거나 다른 힘에 기대지 않으며 올바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걸어온 길을 함께 가려는 동료들을 만나는 일은 무척 값지다. ‘이 노력이 다 뭔가요’라는 살리에리의 대사처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되게 많았는데, 틀리지 않다며 같이 가주는 사람들 덕분에 무대에서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