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할 것
차지연
“불공평한 신이시여,
인간을 조롱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불공평해.
난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장난질에
절대 굴복하지 않아.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줬어야지.”
연극 <아마데우스>, 안토니오 살리에리 役
Q. 누구보다 앞서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배우로서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나?
제작사든 감독이든 배우든 젠더 프리를 하나의 화젯거리로 활용하고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관객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고민해 잘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지금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
매년 젠더 프리 특집을 빠지지 않고 감상하는 구독자 중 한 명이라고 들었다. 2018년 첫 회부터 다 봤다. 보면서 내심 내게 제안이 오기를 기다렸다. 무대에서 이렇게 활발히 젠더 프리로 활동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지 싶었다.(웃음) 그래서 올해 제안을 받자마자 드디어 나도 해볼 수 있는 건가 싶어 되게 기뻤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1막 엔딩 장면을 연기했다. 음악가 살리에리가 천재성을 지닌 모차르트를 마주한 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다. ‘왜 나에겐 이런 재능이 없을까, 왜 나는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없는가’ 하며 갈구하고 욕망하는 대사에 깊이 공감해 선택한 신이다. 누구나 자신의 결핍으로 괴로울 때가 있지 않나. 나 역시 왜 천재적인 연기력이 없을까? 왜 노래를 이렇게밖에 못할까? 왜 난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 왜 더 나은 인격체가 될 수 없는 건가? 하는 갈망을 늘 품고 산다.
고민한 작품 중 하나가 영화 <연애의 온도>였다. 많은 사람이 나라는 배우를 세고 강한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반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일상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의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 하다가 촬영을 준비하면서 겨우 선택했다.
꽤 오래전부터 무대에서 젠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하면 배우 차지연의 이름이 꼭 있었다. 내가 가진 이미지를 깨뜨리거나 완전히 바꿔보려고 무척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배우로서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려 했던 노력이 젠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에도 이르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지나 감독님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끔 장을 만들어주었다. 연극 <더데빌> <광화문연가> <아마데우스> 등을 통해 배우도 관객도 젠더 프리라는 단어를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젠더 프리가 한때의 시도에 그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방식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배우로서 나의 모토가 ‘관객을 기만하지 말자’다. 그래서 허락된 시간과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 있으려고 한다. 언제나 맡은 인물로서 느끼고 생각하는 진심과 진짜를 관객에게 다 전하려 한다. 그게 나의 유일한 무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딘지 불나방 같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것이 배우로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나?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큰 힘은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동료들에게서 얻는다. 뭔가 요행을 바라거나 다른 힘에 기대지 않으며 올바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걸어온 길을 함께 가려는 동료들을 만나는 일은 무척 값지다. ‘이 노력이 다 뭔가요’라는 살리에리의 대사처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되게 많았는데, 틀리지 않다며 같이 가주는 사람들 덕분에 무대에서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