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정난에 처한 강릉의 독립예술극장을 후원하는 캠페인 ‘신영극장을 부탁해’의 일환으로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죠. 바쁜 일정을 쪼개 시간을 내 강릉에 다녀왔어요. 영화관이라는 존재를, 그 공간성을 특별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영극장은 개인적으로 제게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행동을 결심하기 전에 저에게도 ‘왜’가 중요했어요. 신영극장 사무국장이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친구와 신영극장을 살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영화관에서 제각각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타인들이 동시에 영화를 바라볼 때 만들어지는 기운, 공통적인 감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웃는 지점에서 저 사람도 웃는구나, 내가 슬플 때 저 사람도 슬프구나 하고 공유하는 느낌들이요. 반드시 영화가 아니어도 타인과 무언가를 함께 보는 행위는 중요하고, 이는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감각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대의를 이야기하다가 대화의 끝은 ‘우리가 극장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을 지키자’ 하고 개인적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로 돌아왔고요.
개인적인 추억도 많은 공간이죠?
강원도에 있는 유일무이한 독립예술극장이에요. 저에겐 꿈을 실현하는 계기가 되어준 영화 <죄 많은 소녀>를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상영한 극장이기도 하거든요. 그 영화 덕분에 계속 배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저로서는 힘을 보태야만 하는 거죠. 독립예술극장이 없어지면 독립예술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줄어들잖아요. 여전히 상영관이, 무대가 절실한 배우가 아주 많아요. 제가 그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기회가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그와 동시에 독립예술영화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자유롭고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믿어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요.
가장 강렬했던 극장 체험을 기억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왕의 남자>를 봤어요. 신영극장에서 봤는데, 그때는 극장 바닥에 앉아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통로 계단에 앉아서도 보고요.(웃음)
사람들이 오징어포나 쥐포 같은 간식을 사 와서 그다지 좋은 냄새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웃음) 무슨 명절 처럼 왁자지껄하게 영화를 함께 봤어요. 요즘은 극장에서 영화 보면서 이야기를 잘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때는 ‘어머, 어떡해’ 하며 한 마디씩 추임새를 넣어요. 근데 그게 하나도 거슬리지 않고요. 마치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이불을 깔아놓고 잠들기 전 드라마 <태조 왕건>을 보던 순간이 확장된 것처럼요. 영화 속 인물이 줄타기를 하는데, 그 줄 위에 있는 사람이 마치 나인 것 같고, 내가 날아오르는 것 같아서 설레던… ‘너 거기 있니?’, ‘나 여기 있어’라는 대사 하나에 마음이 붙들리던. 극장 안에서 완전히 매혹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고 자란 강릉은 어떤 곳이에요?
강릉이 배우 전여빈에게 무엇을 주었나요? 고향에 대한 고마움은 고향을 떠나고 나서 생겼어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면서 이전까지는 삶에서 너무나 당연했던 바다가 그리워졌어요. 고향 집에 갈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갔어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다는 본래의 나,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의 모습까지 모두 받아주는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는 의심하는 나의 꿈이 가능하다고, 그렇게 꿈꿔도 된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어요. 하루는 엄마에게 “엄마, 나 돌아올 곳이 있어서 되게 좋아” 하고 말했는데, 엄마는 다른 건 못 줘도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고향을 우리들에게 주고 싶었대요. 그거 하나만큼은 주고 싶었대요. 강릉은 새 마음을 채워주는 곳이자, 지나온 모든 것에 안도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곳이에요. 그래도 나 잘 살아냈네, 하는 마음이 드는.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첫 주연 장편영화 <죄 많은 소녀>를 상영하고, GV도 진행해요. 더 말을 보탤 필요 없는 수작이고, 저는 여전히 그 영화를 처음 보던 날, 한여름 날 극장으로 향하던 길의 풍경부터 에어컨으로 차가웠던 극장의 공기까지 생생히 간직하고 있어요. 당시 첫 GV를 할 때 많이 울었다고 했는데, 아마 다음 주에 우리가 함께할 GV에서는 여빈 배우가 많이 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많은 물결을 건너왔죠?
그때 제 마음은 화산 같았어요. 내 안에 뜨거운 것이 가득 차서 넘치는 상태였죠. 막을 수 없는 지경이라 용암이 흘러내리게 두는 수밖에 없었던. 근데요. 그때 그렇게 뜨거웠던 제가, 제 모습이 후회되지 않아요. 그 순간은 지금 다시 흉내 내려야 낼 수 없거든요. 지나고 보니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시작이었지만, 저는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온 기회인 것 같았죠. ‘이 작품으로 뭔가 보여주겠어, 해내겠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배우로서 살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것만 같아 내 모든 것을 던진 거예요. 김의석 감독님 역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그 순간에 저와 함께해줬거든요. 아주 귀한 진심을 제게 나눠 줬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런 마음을 받은 사람은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해요.
무명의 시간을 오래 보내며 만난 영화 <죄 많은 소녀>는 배우로서 자신을 사랑하게 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가능성이나 희망을 본 것을 넘어 온전히 사랑하게 된 계기요.
배우는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잖아요. 매일매일이 불안과의 싸움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언제쯤 세상에 ‘저, 여기에 있어요’ 하고 소리칠 수 있을까 하며 무한한 기다림과 불안 속에서 살기도 해요. 그 한가운데에서 <죄 많은 소녀>를 만난 거예요. 엎어져 있는 나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 같았어요. ‘당신에게 이 역할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이제 몸을 일으켜보라고, 한번 같이 걸어보자고 다독이는 것 같았어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안아주는 것 같았어요. 배우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요. 누군가에게 굳이 ‘너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그 말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제게 그 말을 해주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단순한 동기로 연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일원이 되고 싶기도 했고요. 한데 그런 대의명분을 넘어 원초적 행복을 느꼈어요. 내 목소리를 밖으로 내어보고 그 소리가 공명돼 나에게 들리는 과정이,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누리는 사람들의 눈빛과 에너지, 그로써 공간이 바뀌는 것 같은 환상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느낀 것 같거든요. 그러니 행복한 일인 거죠. 원초적 재미와 몰입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요. 게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결국 나를 살리는 행위이기도 한 거예요.
오늘 촬영하면서 목정욱 사진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가 사랑한 여빈 배우의 첫 얼굴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시간이 흐르고 환경과 처지가 변하면 당연히 그 사람의 외형이나 기운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어쩐지 처음의 모습을 꼭 쥐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면 그건 제가 제 처음의 일부를, 그 상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변화하거나 탈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나아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배우라는 일은 숙명적으로 자신을 마주할 때가 많으니까 때로 내 못난 점들이 여실히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내가 나를 믿어줘야 하죠. ‘이게 나인 걸 어떡하겠어, 이런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좋은 점도 있는 걸’ 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다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껴안을 준비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두려움보다는 용기가 생겼군요.
초심보다 중요한 건 계속 닦아가는 마음인 것 같아요. 어떻게 늘 처음 같을 수 있겠어요. 마음이 창문이라면, 계절이 지나며 바람도 맞고, 먼지가 묻을 수 있고, 색이 변할 수도 있죠. 늘 처음 상태 같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그건 욕심인 것 같고,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무시하는 일 같거든요. 그래서 요즘 느끼는 건 그 창문을 닦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세심히 닦고 잘 들여다보려고 하는 마음이요. 그 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 용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데 그러려면 많은 것을 용서하는 동시에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겠죠. 나를 보는 눈과 밖을 바라보는 눈은 연결된 것 같거든요. 어떤 특정한 시선으로 나를 제한할 때 타인을 볼 때도 그렇게 바라보고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어요. 다정해지는 순간들 속에서 무한히 발생하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나아가 그 다정함은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요. 그러다 어떤 날은 또 엄청 불안해요.(웃음) 미래의 나는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고요. 그럼에도 모든 걸 받아들이고 싶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무한히 믿어주듯이 나에 대해서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도요.
요즘 그 창을 통해 새롭게 보고 느낀 것이 있나요?
고도의 긴장과 집중 속에서 동시에 무한히 자유로워지는, 엄청난 이완을 경험했어요.
가늠되지 않는 엄청난 희열인데요! 최근 영화 <하얼빈> 촬영 현장에서 느낀 건가요?
네. 긴장과 이완은 한데 묶일 수 없는 충돌하는 단어잖아요. 이 다른 말이 동시성으로 느껴지면서 무한한 자유를 느낀 적이 있어요. 행복했어요. 그 시공간 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요. 연기를 즐긴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한 분들에게 무척 감사했어요. 날씨와 자연의 빛이 중요한 현장이었거든요. 인공조명이 아니라 자연이 만드는 매직 모멘트를 함께 느끼고 그 가운데서 연기하며 경이를 공유한 현장이었어요. 그 속에서 내가 버티려고 하지 않아도, 안간힘을 내 도달하려 애쓰지 않아도 불현듯 선물처럼 찾아오는 영화적인 순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좋은 스태프들과 함께 만드는 찰나의 합, 물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제가 준비돼 있어야 하겠죠. 그래서… 질문에 대답하자면(웃음) 저는 요즘 저를 비우고 있어요. 몇 년 사이 극도의 긴장과 예민한 준비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잠시 비우고, 비워진 그릇에 더 많은 것을 담고 싶어요.
영화는 찰나를 붙잡아두는 일이고, 배우는 시간의 유한함을 매 순간 실감하는 일 같아요.
맞아요. 영화 작업 자체가 순간의 예술이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고의 순간을 발췌해내야 하잖아요. 내 의지와 집중이 상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기에 늘 고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요. 그와 동시에 정말로 그 순간을 살아야 하는 작업이고요. 이 수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어느 한순간을 붙잡으려 한다는 것, 붙들고자 하는 간절함이 제게 유독 크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붙잡으면서 동시에 생성해내고 싶어 하는 욕망도 느끼고요. 한데 이 욕망은 영화라는 세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사람들, 모두의 욕망이지 않을까요. 최근에 연극 <파우스트>를 다시 봤는데, 제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요. 파우스트가 악마와 거래를 하기 직전에 하는 말인데요. 순‘ 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