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마레(Maison Marais), 드레스 커렌트(Current).

핑크 스카프 재킷과 버뮤다쇼츠 모두 디올 맨(Dior Men),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보라 베스트와 팬츠 모두 포츠퓨어 (Ports Pure), 슈즈 가니 (Ganni). 김우석 화이트 케이블 니트 베스트와 와이드 팬츠 모두 에트로 (Etro), 스니커즈 디올 맨 (Dior Men).

 

4월 29일 드라마 <핀란드 파파>의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점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김우석 저도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같은 생각을 했어요. 핀란드에 가나? 싶었고요.(웃음) 김보라 다른 건 몰라도 힐링물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왠지 모르게 어감이 따뜻하게 느껴졌거든요.

김보라 배우의 예측이 맞았네요. 가족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핀란드 파파’라는 카페에 모여 지내며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예요. 이 드라마의 어떤 점에 마음이 이끌렸나요? 김보라 잔잔한 분위기에도 끌렸지만, 무엇보다 다 함께 모여 뭔가를 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이 좋았어요.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에서도 여럿이 같이 무언가를 하는 장면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핀란드 파파>에서는 서로 상처도 보듬어주고, 일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잖아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김우석 모든 인물들에게 각자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걸 극단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따뜻하고 온화하게 덮어주는 방식이 좋았어요. 요즘 이런 장르가 흔치 않아서 더 하고 싶었고요. 김보라 음악으로 치면 우석이가 좋아하는 발라드 느낌이지 않나 싶어요. 김우석 그렇죠.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일상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친구 사이였지만,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며 ‘우현’(김우석)이 원치 않게 ‘유리’(김보라) 곁을 떠난 이후의 상황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

유리와 우현은 어떤 인물인가요? 김보라 대본을 읽고 감독님께 유리에 관해 제일 처음 한 말이 “마냥 밝은 아이도, 그렇다고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아이도 아닌 것 같아요”였어요. 할머니, 그리고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때도 아버지에 이어 할머니의 죽음을 겪을 때도 어떤 감정을 바로 인식하고 분출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과하게 빠르지 않은 템포로 유리의 감정을 따라가려고 했어요. 김우석 유리랑 우현이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현이도 상처가 있는데 그걸 밖으로 바로 나타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쪽이에요. 그래서 어떤 감정이든 선명하게 보이면 캐릭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담담하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 때문일까요? 두 사람의 관계도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명확하지 않아 보여요. 서로를 향한 감정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김우석 맞아요. 대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 때 뭔가 스파크가 튀는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우현과 유리는 그런 게 없는 관계예요. ‘내가 언제부터 얘한테 관심이 생겼지?’, ‘이 관심의 정체가 뭐지?’라는 의문을 품어도 답하기 모호한 관계죠. 그래서 연기할 때도 좋아한다는 확신을 품지 않았어요. 그냥 친구로 대하는데, 그 안에 약간은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있는 정도로만 표현했어요. 김보라 둘 다 과하지 않게, 분명하지 않게 행동하는 데 집중한 것 같아요.

이제 시점을 유리가 우연찮게 들어가 일하게 되는 ‘핀란드 파파’라는 카페로 옮겨볼게요. 유리처럼 상처나 외로움을 품은 이들이 모여 일하는 이곳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어요. 저녁 식사는 언제나 함께 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눈물을 흘릴 때 곁에 있어주거나 이야기를 들어준다, 속상한 이야기를 할 때는 충고하지 말고 들어준다, 꿈을 응원해준다 등이요. <핀란드 파파>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규칙이지 않나 싶어요. 김보 라 저 역시 보면서 공감했고, 실제로 살면서 지키고 싶은 규칙이기도 해요. 가장 마음이 간 건 ‘속상한 이야기를 할 때는 충고하지 말고 들어준다’예요. 모든 사람은 소통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때 꼭 필요한 존재가 들어주는 역할이지 않나 싶어요.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들어주기 전에 충고가 먼저 나갈 때가 있는데, 이 규칙을 보면서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김우석 저는 ‘저녁 식사는 언제나 함께 한다’라는 부분이 제일 좋았어요. 현대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싶거든요. 돌이켜보니 저도 가족들이랑 다 같이 밥 먹은지 한참 된 것 같더라고요. 되게 쉽고 간단한 일인데 왜 이렇게 안 했지 싶어요.

다르게 보면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생활 패턴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한날한시에 모이는 것부터 쉽지 않잖아요. 김우석 네. 되게 어려워요. 그래서 ‘핀란드 파파’에서 규칙으로 정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실행하고 나면 서로 끈끈해지는 게 있잖아요.

카페 ‘핀란드 파파’의 규칙 외에도 삶의 지표로 삼아도 좋을 대사가 꽤 많이 나오던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김보라 많죠. 일단 며칠 전에 후시녹음을 하면서 다시 보게 된 대사가 생각나요. “때로는 떠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소한 거절의 말도, 어떤 모임에서 홀로 나오는 것도, 헤어짐을 통보하는 것도 말로는 쉽지만 그 결정 앞에 서 있을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그 대사를 보면서 와닿는 게 있었어요. 김우석 “할머니”라는 우현의 대사가 있어요. 딱 세 음절인데 그 말 안에 우현이가 많은 걸 느끼고 배운 뒤에 앞으로 살아갈 동력까지 담겨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살다 보면 긴 얘기보다 짧은 말 한마디에 더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싣게 될 때가 있잖아요. “할머니”라는 대사를 할 때 그 생각을 했어요. 어떤 말보다 우현의 진심이 다 담겨 있다고요.

 

김보라 카디건 미우미우(Miu Miu), 스커트와 스타킹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우석 패치 장식 카디건 베리(Barrie), 옐로 셔츠 르917 옴므(Le17 septembre Homme), 베이지 팬츠 렉토(Recto).

풀오버, 베스트, 스커트, 이어링 모두 미우미우(Miu Miu).

실키한 플라워 패턴 셔츠 렉토(Recto).

 

촬영을 부산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중간중간 여행의 즐거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우석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평소에 여행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촬영 끝나면 할 게 없으니까 산책하듯 조금씩 부산 여행을 해봤는데 꽤 좋았어요. 숙소 근처에 자갈치시장이 있어서 회도 자주 먹었고요.(웃음) 향어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참 맛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부산에 또 가고 싶을 정도예요. 김보라 저는 고모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산에, 친할머니가 대구에 계셔서 틈나면 뵈러 가면서 조금씩 힐링한 것 같아요. 김우석 그때처럼 오래 집을 벗어나 있는 게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어요. 반려묘 한 마리랑 반려견 두 마리가 있어서 초반에는 걱정이 좀 됐거든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육아에서 해방된 느낌이 나쁘지 않더라고요.(웃음)

각자 소소한 여행을 하면서 로케 촬영을 즐긴 것 같아요. 김보라 비록 한 달치 월세를 날리긴 했지만(웃음) 각자에 맞는 힐링을 하긴 했죠.

촬영 현장도 비슷했나요? 드라마처럼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현장이었나요? 김보라 컷이 워낙 많아 사실 잔잔하지는 않았어요. 여럿이 함께하는 컷이 많다 보니 할 게 많아 힘들 때도 있었죠. 그래도 그 와중에 배우들끼리 소소하게 얘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면서 주어진 시간을 잘 보냈어요.

작품 한 편을 마치고 나면 배우에게 남는 것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나요? 김보라 또 한 번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스태프를 마주하면서 이들과 함께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할머니 생각도 많이 했고요. 유리처럼 실제로 저도 할머니와 굉장히 가까운 사이거든요. 그래서 쫑파티 마치고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바로 할머니한테 찾아갔어요. 더 자주 뵈어야겠다 싶더라고요. 김우석 시청자들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잊고 사는 마음이나 생각이 있는데, 그걸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연기하면서 그걸 많이 깨달았어요. 삶에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되는 드라마인 것 같아요.

두 분은 실제로 어떤 식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편인가요? 김우석 저는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자꾸 꺼내 봐요. 김보라 아, 마주하는구나. 김우석 맞아. 계속 마주하고 또 마주하다 보면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고 그 일로 받은 상처가 잦아들어요. 그러니까 이게 더 이상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한테 “나 오늘 강아지 밥 줬어”라고 할 때의 뉘앙스로 말할 수 있게끔 만들어놓는 거죠. 그러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김보라 저는 그냥 흐름에 맡기는 편이에요. 우석이처럼 명확히 마주하고 파고들지는 않지만 그 상황과 그때의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부정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일은 없는 것 같거든요. 일단 다 받아들이고 담담해질 때까지 기다려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가까이에서 되게 별것 아닌 작은 행복이 보일 때쯤 극복되는 것 같아요. 김우석 사실 우울감이 있어야 행복도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행복하면 그게 평범하고 당연한 감정이 되는 거잖아요. 어떤 삶이든 고난이나 괴로움이 결국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정도면 드라마 한 편을 통해 삶을 통찰한 게 아닌가 싶네요. 김보라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이야기이기는 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