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하에 두 번째 정규 앨범 <BOMM>이 나왔습니다. 봄을 제 방식으로 해석한 음악을 담은 앨범이에요. 봄 하면 대체로 밝고 긍정적인 걸 떠올리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담았죠. 봄은 한편으로 까다로운 계절이잖아요. 일교차도 크고.
라이너 노트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우울이라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왔다가 모르는 사이에 가버리는 봄처럼요.” <BOMM>은 봄의 우울한 정서를 담은 음반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요즘은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하는 시대잖아요. 부정적인 면이나 약점을 보이면 안 될 것 같고요. ‘누구나 약점이 있고, 사람이 밝은 면만 가진 게 아닌데, 꼭 행복한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밝고 새로 시작하기 좋은 계절로 꼽히는 봄을 우울의 정서로 노래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어요. 이 계절에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고, 그게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BOMM>에서 가장 의외의 곡을 꼽으라면 ‘비처럼 음악처럼’이 아닐까 해요. 1980년대 한국 가요를 리메이크한 점도 그렇고, 원곡을 거의 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초안을 만들 당시에는 앨범에 넣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재미 삼아 커버곡으로 만들어둔 노래죠. 그러다 어느 날 새 앨범에 실으려고 마음먹고 써둔 곡을 다시 듣는데, 이 곡이 <BOMM>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원곡도 꽤 우울한 정서가 있는데, 저는 우울할 때 오히려 우울한 노래를 찾아 듣거든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거네요? 맞아요. 이 곡을 음반에 포함하려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원곡자 박성식 선생님께 연락을 취해 허락도 받았어요. 리메이크하고 싶은 이유를 열심히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더라고요. 발매 전에 어느 정도 완성된 곡을 들려드렸는데, 보이스가 멋지고 새로운 편곡도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뿌듯하더라고요.
<BOMM>은 타이틀곡이 네 곡입니다. 이유가 있나요? 제 정규 1집은 수록곡 모두 타이틀곡이에요. 모든 트랙이 자신 있거나 아껴서 그랬다기보다 앨범이 전하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에요. 타이틀곡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 음원 사이트의 방식인데, 저는 그걸 왜 정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의도와 별개로, 정해야 하는 거니까요. 선공개한 곡들을 제외하고, 3, 5, 7, 9번 트랙을 타이틀곡으로 골랐어요.
잘 만든 앨범보다 전략적인 싱글이 유리한 세상이잖아요. 동감이지만 뭐 괜찮아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거든요. 한 곡을 발표하기까지 열 곡을 버린다고 들었어요. 이번 음반을 만들 때도 그랬나요? 쉰 곡 정도는 버린 것 같아요. 마스터링까지 완성한 곡을 버리는 건 아니고, 초안 단계에서 걸러내는 경우가 많죠.
2021년 발표한 정규 1집 <A.M.P. (All My Persona)>의 저드와 2023년 <BOMM>의 저드는 어떻게 다른가요? 1집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거나 꿈을 좇겠다고 말하는 저였다면, 2집의 저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저인 것 같아요. 1집 때 느끼던 감정이 커지고, 성장했달까요.
그럼 <BOMM>에서 우울에 대해 말하는 저드는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올해 스물여덟 살인데, 지난 7년간 일만 했어요. 20대의 대부분을 작업실에 틀어박혀 음악만 만든 거죠. 음악적 성과와 별개로 우울감이 커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작업하기 힘들 지경이 됐어요. 그러던 차에 차라리 이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우울한 정서를 음악에 담아 앨범으로 만들게 된 거예요. 결국 <BOMM>의 화자는 저인 거죠.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매진하다 우울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 사람의 이야기.
어떤 점이 저드를 우울하게 했나요? 젊은 시절을 일에만 매달려 보냈다는 사실과 정규 1집보다 나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요. 작업할 때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힘들었어요.
음반을 발매한 지금도 우울한가요? 신기할 정도로 우울감이 사라졌어요. 감기가 떨어진 것처럼. 만들 때 질릴 만큼 들어서 한참 안 듣다가 발매 직후 다시 들었는데, ‘뭐 하러 이렇게 작은 요소에 집착했을까’ 싶은 지점도 꽤 있더라고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저만 아는 디테일한 요소에도 온 힘을 다했거든요. 스스로 ‘피 흘리며 일한다’라고 말할 만큼 음악 작업에 사력을 다하는 편이라 그런가 싶기도 해요.
뮤지션이 20대의 대부분을 작업에 매진한 게 나쁜 건 아닐텐데요. 성실하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해요. 그렇죠. 돌아보면 제가 뮤지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다 떠나서 한 사람으로서 삶을 더 즐기면 어땠을까,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고, 못가본 곳에 가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뮤지션으로서 공연이나 작업을 위해 가려고 아껴뒀거든요. 저도 영국 가서 축구도 보고 싶고, 애인과 일본 여행도 하고 싶어요.
지난해 4월 해체한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 레코즈 소속이었어요. 그런데 저드의 작품을 보면 힙합 뮤지션이라기보다 전자음악 기반 싱어송라이터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자신의 음악이 힙합에 속한다고 생각하나요? 음악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 곡이 다루는 주제나 제가 음악을 대하는 가치관은 힙합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 포크, 얼터너티브 같은 장르가 좋아져서 그런 요소를 음악에 녹여내고 있어요. 소울이나 힙합에 뿌리를 두고 테임 임팔라, 낫싱 벗 시브스, 제임스 블레이크 같은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달까요. 그래서 <BOMM>을 발매할 때 음원 사이트에 올리며 앨범 장르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인디펜던트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있나요? 솔깃한 제안도 받았을 텐데요. 혼자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거든요. 회사에 들어가는 건 제 역량을 확인한 이후에 결정하고 싶어요. 당장은 <BOMM>의 CD를 만들고 싶고, 확정한 건 아니지만 단독 공연을 기획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요?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위로가 된다는 건, 제 음악에 머문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는 뜻이잖아요. 감동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늘 짜릿해요. 리스너로서 그런 순간의 소중함을 아니까요. 제가 음악을 하는 동력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