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 존 로런스 설리번 (John Lawrence Sullivan), 레더 코트와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재킷 포저(Poszer), 팬츠 디메이든(Demaden), 네크리스 에이지47(AG47), 슈즈 아워레가시(Our Legacy),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미드낫은 누구인가?’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이 ‘이현’은 아닐 테니까요. 본체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자아인 미드낫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실 저도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하는 중이에요. 준비가 안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정체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다른 무언가를 찾아 질문하고 시도하는 것이 미드낫의 방식이에요. 미드낫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이현이라는 기존의 사람이 지니고 있던 것을 백지화하는 데 집중한 거죠.

백지화 과정이 말처럼 간단치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장르부터 창법, 심지어 스타일까지 10년 넘게 고수해온 것을 배제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쉽지 않죠. 그런데 제가 배제하는 것보다 제 시도를 대중이 받아들여줄까 하는 걱정이 더 컸어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불안과 걱정은 ‘에이, 그냥 발라드나 하지’라는 반응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거였어요. 그럼에도 도전한 건 저에게 귀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기회를 갖기가 어렵잖아요.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했던 좀 이상한 얘기가 있는데요. 당시의 제가 이름도 모르고, 왜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꽃을 쥐고서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는데도 놓지 않으려 하는 상태인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이제 그만 이걸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꽃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요. 그 바람이 미드낫으로 이뤄진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워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미드낫과 이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첫 싱글 ‘Masquerade’의 장르가 신스웨이브인데, 넓게 보면 팝의 한 부류예요. 그러니까 장르적으로 처음 해보는 건 아니죠. 다만 소리를 쓰는 방식이나 곡의 전개 과정, 창법 등이 더해져 완성된 곡으로 들었을 때는 이현이라는 가수가 전혀 연상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이현으로 앨범을 냈다면 하지 않았을 시도가 미드낫의 앨범에는 담겨 있는 거죠.

창법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재녹음을 꽤 여러 번 했어요. 이전보다 훨씬 러프하게 소리를 내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로 달리해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또 기존의 제 톤에서 아예 벗어나버리면 너무 장난스러운 것 같았어요. 이현스러운데 이현이 아닌 것 같은 교묘한 간극을 만들려고 노력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가장 큰 고민과 난관은 6개 국어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총 6개 언어로 음원이 발매돼요. 정답입니다.(웃음) 발음하기도 어려운데, 각 언어마다 노래할 때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 달라요. 익히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떤 언어가 가장 어려웠어요? 당연히 더 생소한 스페인어나 베트남어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장 어려운 게 영어였어요. 아예 모르는 언어는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씩 배워가면 되는데, 영어는 친숙한데 제가 잘못 발음하던 부분을 고쳐야 하니까 되게 어렵더라고요. 발음을 교정해주는 분들이 오셔서 디테일하게 하나씩 하나씩 고쳐가면서 녹음했는데, 그렇게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노래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싱글 앨범 <Masquerade>에는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미드낫이라는 뮤지션이 지닌 역설과 모순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신인인데 신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웃음) 그런데 장난처럼 들리는 이 말에서 미드낫의 다양한 면면이 파생되는 것 같아요. 이름에 담긴 뜻 중 하나가 자정인데, 어두운 한밤의 시간을 말하는 동시에 다시 밝아지기를 희망하는 마음도 들어 있어요. 또 미드낫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우면서 동시에 설레고요. 이런 모든 모순적인 마음을 사랑 이야기로 치환해 ‘Masquerade’에 넣은 거죠.

 

모헤어 카디건 올세인츠 (All Saints), 데님 팬츠 51퍼센트 (51 Percent), 실버 네크리스 에이지47 (AG47), 슈즈 아워레가시 (Our Legacy),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재킷 포저(Posze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재킷 이지노이지(Easy No Easy), 톱 생 로랑(Saint Laurent), 팬츠 디메이든(Demaden), 네크리스 에이지47(AG47).

 

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떠올려보자면요? 음악 자체가 지닌 에너지는 한여름의 페스티벌과 잘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 바라는 즐기는 방식은 누구든, 어디서든 마음껏 곡을 변형해보는 거예요. 요즘은 간단한 장비나 앱으로도 리믹스가 가능하잖아요. 이 곡에 있는 소스를 각자의 방식
으로 활용해 즐겨주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이 제안하는 향유의 방식 중 가장 개방적인 형태군요. 혹자는 만들어낸 형태 그대로 보존되길 바라잖아요. 오래 음악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요즘은 예전처럼 음악이 엄청 중요한 세상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여전히 음악을 많이 듣지만 그게 삶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느낀달까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 신이 더 활발하고 건강해지지 않을까 싶고요.

새로운 자아로서 음악을 만들어본 후 어떤 감상이 드는지 궁금해요. 성장과 변화의 순간을 찾기도 했나요? 틀을 깬다는 건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인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세운 벽을 조금씩 밀어본다? 앞이 아니라 옆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정도의 느낌이에요. 처음부터 부수고 나아가 새로운 무언가를 쟁취하겠다는 식의 거대한 목표는 없었어요. 사실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될 줄도 몰랐고요.(웃음) 그냥 지금은 이렇게 한번 해볼까, 해보니까 재미있네, 하는 정도예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저에게 되게 중요한 모멘텀으로 남아 있을 것 같긴 해요.

미드낫으로서는 이제 시작이니 해보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싶어요. ‘Masquerade’ 이후에는 어떤 음악이 나오길 바라나요? 주류로 분류되지 않는 것을 제 방식대로 체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퇴폐적인 록 사운드가 될 수도 있고, 전자음악이 될 수도 있겠네요.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 경계에 있는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 말은 경계 안에 머물며, 그러니까 대중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는 말로도 해석되는데요. 맞아요. 이건 제가 처음 음악을 할 때부터 했던 생각이에요. 내 음악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들려주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은 게 제 음악의 주요한 목표거든요. 그 목표를 향해 가며 잠시 뒤로 빠지기
도 하고, 옆으로도 가볼 수는 있지만, 아예 우주로 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늘의 인터뷰를 기점으로 딱 일주일 뒤에 미드낫의 정체가 공개돼요. 어떤 마음이 드나요? 두렵고 설레는데, 51 대 49로 설레는 마음이 조금 더 커요. 이 과정이 재미있어서 설레는 건지, 설레는 마음이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티저를 보고 남성이다, 여성이다, 그룹이다, 아니다 말이 많고 심지어 AI라는 추측도 있더라고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추측하는지 보는 재미가 있던데요.(웃음)

그럼 주변 사람들도 몰랐던 거예요? 어제 엄마가 아셨고요. 주변 친구들 중에 몇 명이 ‘너지?’ 하면서 연락이 왔어요.

어떤 반응이었나요? ‘이게 네 노래라고?’ 일단 이게 공통된 첫 반응이었어요. 만들면서 이현과 미드낫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이 반응을 접하며 안심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왜 얼굴을 가리는 거냐고.(웃음) 앨범 커버가 천을 쓴 사진이잖아요. 그 점이 아쉬우신가 봐요. 엄마의
마음이죠.

그런데 정체를 숨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스포일러를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 것 같은데요.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은 사람이 아니라서요.(웃음) 오히려 공개가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해요. 이 과정이 즐거웠거든요. 빨리 이 앨범을 들려주고 싶으면서도, 설레며 기다리는 이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쉬운거죠. 이 또한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