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75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받은 데이비 추(Davy Chou) 감독의 영화 <리턴 투 서울>은 LA 비평가협회상 등을 수상하며 기대를 모았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된 ‘프레디’가 우연한 기회에 서울을 찾으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친부모를 찾는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프레디가 겪는 필연적 방황의 중심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반복해서 떠나고 돌아온다. 파리에서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던 박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데뷔하며 규정짓기 어려운 에너지를 분출했다. ‘자유의 투사’인 프레디의 모습에는 박지민의 면면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닮았다.
<리턴 투 서울>을 통해 배우로 도전했습니다. 원래 연기에 관심이 있었나요? 사실 연기에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더 정확하게는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죠. 영화를 아주 좋아하긴 해요. 많이 보기도 하고, 종종 제 아트 작업의 커다란 영감이 되기도 했어요. 영화를 볼 때마다 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언젠가 직접 연기를 해야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처음이었으니 카메라 앞에서 편안해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카메라 앞에서 익숙해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정식으로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서 많은 것을 제 본능에서 끌어올렸거든요. 본능에 충실하다 보니 카메라의 존재를 잊은 것 같습니다.
주연배우일 뿐 아니라 각색 과정에도 참여했는데, 배우가 참여하며 캐릭터나 이야기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졌겠군요. 이야기의 큰 흐름이나 틀이 바뀌진 않았어요. 데이비 감독은 저를 만나기 3년 전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제가 참여하면서 프레디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전 프레디가 메일 게이즈(male gaze)와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길 바랐어요. 데이비와 충돌이 많았죠. 남자 입장에서 여성 캐릭터를 연출하다 보니 그가 원치 않아도 그런 시선이 존재했거든요. 그래서 데이비와 함께 한 달 동안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어요.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프레디라는 캐릭터의 존재와 사고방식, 다른 캐릭터와 맺는 관계 등이 주로 달라진 점입니다.
언급한 것처럼 <리턴 투 서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혹시 실제 주인공도 만났나요? 네, 칸에서 영화 상영 후에 로르(Laure Badufle)와 만났어요. 만나기 전엔 걱정이 앞섰죠. 일단 자신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영화에서 알 수 있듯 로르의 삶이 행복하거나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기억을 영화로 다시 보는 일 자체가 괴로웠을 것 같았거든요. 로르도 영화 상영 후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 캐릭터와 만나면서 바뀐 게 많아서 로르의 반응을 걱정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로르가 먼저 이 영화와 캐릭터에 변화를 가져와서 고맙다고 말해줬어요.
<리턴 투 서울>에는 생략된 서사가 많습니다. 대부분 사건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처음 등장했을 땐 중요해 보이던 인물이 어느새 사라져버리기도 하죠. ‘프레디’ 혹은 ‘연희’의 행동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없어요. 프레디, 연희라는 인물은 어떤 일이 있건 자유롭고 싶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입니다. 이와 동시에 프레디는 로스트 소울(lost soul), 즉 방황하는 영혼이고요. 방황은 나쁜 의미가 아니에요. 제 생각에 방황하는 영혼이란 자신과 타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유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한자리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 존재예요. 그리고 모든 질문에 답을 꼭 찾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프레디는 물 같아요.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썩어버리는 존재, 항상 흐르는 존재요.
본인의 경험이나 성향 중에서 프레디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나요? 제 실제 성격이 프레디를 연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프레디는 분노가 많은 캐릭터인데, 저도 그렇거든요. 프레디에게 모순적인 부분이 많고, 패러독스가 많은 것처럼 제게도 모순과 역설이 엄청 많죠.(웃음) 그리고 제가 아티스트인 점도 하나의 캐릭터를 창작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아티스트도 창작하는 일을 하니까요.
하나의 배역을 연기를 하는 일과 시각적 조형물을 만드는 일은 어떤 점에서 닮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닮은 점이 더 많은 것 같고, 다른 점은 재료예요. 연기할 땐 제 몸이 재료이고, 조형물을 만들 땐 다른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죠. 닮은 점을 꼽자면 저는 작업할 때도 본능을 중시해요. 본능적으로 색을 고르고, 몸을 움직이죠. 물론 본능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건 아니에요. 연기든 아트든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제가 가진 감정과 감성을 이해하고, 다듬고 또 다듬어 정확하게 자기만의 색깔로 표출해내는 작업 같아요. 두 직업 모두 창조하는 일이죠. 자기만의 방식으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는 길을 창조하는 일이요.
생부를 처음 만났을 때 프레디에게선 어떤 감정의 동요보다는 그저 당황스럽고 지친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그 반면 생모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만나기 전부터 눈물을 보이죠.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하는 감정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 것 같아요. 실제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하는 감정에 차이를 두고 싶었어요. 생모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 어머니는 너무나도 궁금하고 만나기 두려웠던 존재였기 때문에 대면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온 것 같아요. 그 반면 아버지는 만나기 전부터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죠. 프레디가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밀어붙이는 캐릭터니까요. 자신의 미안하고 슬픈 감정이 프레디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폭력적이죠. 이 외에도 극 중에서 다른 여자 캐릭터와 남자 캐릭터를 대하는 감정에도 확실한 차이를 두고 연기했어요. 이러한 차이점은 프레디가 친부모 각각에게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고요.
영화의 후반부에서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보낸 메일이 전해지지 않았을 때 프레디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끝내 외로웠을까요? 프레디가 처음 느낀 감정은 허무였을 것 같아요. 극도의 슬픔을 뛰어넘는 허무감, 쇼크에 가까운 상태죠. 그 허무감이 조금 지나고 나서는 제 생각이지만 프레디는 안도했을 것 같아요. 예상한 답변을 드디어 들은 기분이랄까요. 없는 메일 주소라는 답변조차 어떤 답변을 받은 셈이고, 그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겠죠. 조금 더 가벼워졌기 때문에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분. 외로움은 지워지지 않지만요. 만약에 메일이 어머니에게 닿았는데 답변이 아예 오지 않았다면, 프레디의 슬픔과 외로움은 훨씬 더 컸을 것 같아요.
극 중 8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어떤 식으로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나요? 사실 촬영 기간은 총 32일이었어요. 영화 속 8년 동안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 외적 변화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우선 큰 도움이 되었죠. 저는 프레디가 외적으로 겪는 변화와 관련해서도 많은 의견을 냈어요. 어떤 면에선 이런 외적인 변화가 내적인 변화를 도운 것 같아요. 저 나름의 캐릭터 스터디였달까요. 프레디 자체가 워낙 카멜레온 같은 존재잖아요.(웃음)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애틋한, 혹은 특별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여러 장면이 특별한데, 지금 바로 생각나는 장면은 두 개예요. 하나는 프레디가 테나의 아버지 차 뒷좌석에서 테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운 채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를 그만 읽으라고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그 뒤로 편집되어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 더 있어요. 프레디가 계속 테나의 무릎에 누워 있고, 테나가 잔잔하게 노래를 불러요. 무척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울컥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밀려드는 순간이었죠. 또 하나는 프레디가 바에서 춤추는 장면이에요. 저한테 춤은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춤을 출 때 너무나 기쁘지만, 한편으론 한없이 슬퍼요. 춤을 추는 동안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한편으로 죽음의 존재감이 뚜렷해져요. 춤을 추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정말 행복한 죽음이겠다’ 이런 생각을 종종 해요. 죄송해요. 너무 깊이 들어갔네요.(웃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어떤 과정을 거쳐 프레디가 되었는지, 비로소 프레디가 되었다고 실감한 순간이 있었는지, 아니면 끝내 프레디가 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프레디는 나고, 나는 프레디다’라고 굳게 믿었어요. 제가 프레디를 맞이해야 했고, 프레디도 저를 받아들여야 했죠. 계속 타협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단념한 부분도 있고, 프레디가 놓아줘야 했던 부분도 있어요. 이 둘 사이의 밸런스가 잡혔기 때문에 제가 프레디라는 생각을 쭉 유지할 수 있었어요. 프레디의 이야기에 관해 화면 밖의 우리가 결국 기억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정체성이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다수의 정체성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 항상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것.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경험이 인간 박지민 혹은 시각 예술가 박지민에게 남긴 흔적, 영향도 있겠죠? 일단 시각 예술가로서 또 다른 자아를 찾은 기분이 들어요. 이 값진 경험은 인간, 인간관계와 세상에 대한 훨씬 더 큰 이해심을 심어주었죠. 그리고 연기라는 아주 묘한 쾌락을 발견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