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터와 팬츠 모두 렉토(Recto).

아우터 아미(Ami),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그 안이 강한 사람이겠죠. 심리적으로 덜 흔들리고,
빨리 회복한다는 의미가 모두 포함된 상태일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울 수 있죠.
하지만 그 괴로운 상태를 털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강한 사람이라고 봐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필모그래피를 훑다 보니 도경수 배우가 연기한 좋은 역할들이 새삼 보이더라고요. 역할과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하고, 자신의 이력을 적당한 속도로 탄탄히 꾸려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우로서 선택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결정해왔는지, 배우의 삶을 어떻게 꾸리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뒤 질문에 먼저 대답하자면 ‘꾸려봐야겠다’ 한 적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평생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을 뿐이에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았으면 해요. 외모나 체형 등을 비롯해 내적으로 지닌 생각이나 정신, 처한 상황 등을 아울러 지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하고 싶어요. 주연만 고집하거나 규모가 큰 작품에만 출연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 방향은 아예 염두에 없어요.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 개성 있는 캐릭터라면 더할 나위 없죠. 살아가면서 하기 힘든 경험을 연기를 통해 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보시는 분들이 ‘역할이나 작품의 크기에 영향받는 배우는 아니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배우로서 흑역사가 없죠. 맡은 역할이나 작품마다 두루 좋은 평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혼자 고민하는 날도 있었나요? 나는 어떤 배우일까,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들던 순간이요.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미래의 나를 생각해 ‘내가 이걸 어떻게 해’ 하며 우려하거나, 과거의 나를 두고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일은 없어요. 우연히 예전 작품을 보게 됐을 때 ‘나 저기서 왜 저렇게 (연기)했냐. 어휴’ 하고 끝내요. 지나간 건 생각하지 않아요. 후회해봤자 뭐해요. 나만 괴로운 건데. 그보다는 최근에 ‘배우라는 직업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은 했어요. 애니메이션 <모아나> 같은 작품을 볼 때 항상 그 생각을 하는데, 표현이 실사보다 더 실사같이 정교하잖아요. <러브, 데스 + 로봇> 같은 작품은 ‘이거 진짜인가?’ 하는 순간도 많고요. ‘(배우라는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 이런 고민은 했습니다.(웃음)

 

 

재킷,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재킷 마르니 (Marni), 팬츠 우영미 (WooYoungMi), 슈즈 듀칼스 (Doucal ’ s),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 페라가모 (Ferragamo),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지난 시간에 대해) “오는 대로 (도전)해보고, 거기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지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것 같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도경수 배우가 지닌 단단한 태도를 봤어요. 본인에게 ‘강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그 안이 강한 사람이겠죠. 심리적으로 덜 흔들리고, 빨리 회복한다는 의미가 모두 포함된 상태일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울 수 있죠. 하지만 그 괴로운 상태를 털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강한 사람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작은 먼지 하나 묻어도 한 시간, 하루를 힘들게 보낼 수 있잖아요. 그 반면에 이렇게 (엄지와 검지를 튕기며) 툭 하고 그 먼지를 털어내는 사람도 있죠. 심지어 뭐가 묻었는지 보지조차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요.

못 보는 사람도 강한 사람인가요? 무조건이죠. 최강자죠. 남에게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의 티끌이라면.

본인은 어느 쪽이에요? 저는 (먼지를) 봐요. 보여요.(웃음)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툭 털어내는 편이에요.

‘아니 이게 왜, 언제 여기 묻었지?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구구절절 파고들며 땅굴을 파고 후회하는 편은 아닌 거죠? 쉽게 털어내는 태도는 타고난 건가요? 아니면 훈련된 건가요? 훈련된 거요. 저도 자책할 때가 있었어요. 승부욕이나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하기도 했고, 감정 기복도 있었는데 훈련하며 차츰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 스트레스 받으면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제 안에 자리 잡는 순간 적용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크게 바뀌었어요. 단순해졌고요. 무엇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주변에 좋은 분이 많고, 다행히 제가 제게 좋은 방향을 빨리 판단하고 흡수한 것 같아요. 그뿐이지, 운이 좋았어요.

 

재킷 마르니(Marni), 팬츠 우영미(WooYoungMi),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마르니(Marni).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믿는 부분이 있다면요? 할 건 해야 하는 성격이요. 미뤄두지는 않아요. ‘내일 하자’는 없어요. 그냥 해요. 그리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하고요. 도중에 멈추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 한 번을 하기가 쉽진 않지만, 오늘 해야 하는 거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요. 생활 면에서는 청소를 잘합니다. 효율적으로.(웃음) 앉아서 영상 보기도 자신 있고요.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건가요? 최고 기록이 어떻게 돼요? 최고 기록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평균 네다섯 시간 이상이에요. 오늘 좀 길게 봤다 하면 8시간. 누워서 보는 분도 있지만 저는 앉아 있어요. 근데 누우면 오히려 더 힘들던데요? 앉아서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8시간 정도는.(웃음)

마무리할까요. 요즘은 어떤 장면, 어떤 사람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름다워요. 눈물이 없는 편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할 때가 있어요. 감수성이 달라지나 봐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소소한 배려들.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 뭐든 손에 쥐여주잖아요. 그런 마음을 느낄 때 아름다워요. 예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출연하셨는데, 자꾸 미안하다고 해요. 미안할 일이 아닌데. 사과할 일이 아닌데도 못 해준 마음만 남아서 자꾸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예전에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창피하니까 좀 참으려 했는데, 요즘은 창피하지 않아요. 솔직한 거니까.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인간극장>을 보면 오열할 수도 있겠어요. 아직 보진 않았는데, 아마 울지 않을까요. 요즘에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는데, 진짜 좋은 프로그램인 것 아세요? 깜짝 놀랐어요. 육아 프로그램이겠지 하고 봤는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어른들을 위한 거고, 부모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에게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에요. 배울 점도 많고요. 진짜 멋있어요, 오은영 박사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