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터와 팬츠 모두 렉토 (Recto).

재킷 마르니 (Marni).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화보 인터뷰를 한 게 팬데믹 이전이더라고요.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랬어요…. (웃음)그러네요. 그 사이 군대까지 다녀왔으니까. 진짜 오랜만에.

오는 8월 2일, 영화 <더 문> 개봉을 앞두고 있죠. 처음 시나리오를 읽던 날을 기억해요? 군대에서 읽었어요. 당시는 <승리호>와 <고요의 바다>가 공개되지 않은 때라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벅찼어요. 늘 궁금했거든요. <그래비티>나 <마션> 등을 보면서 저런 작품은 도대체 어떻게 찍는 걸까 싶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 궁금증이 풀리는 거잖아요. (영화 <신과 함께> 이후) 김용화 감독님과 다시 한번 작업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좋은 기회고, 설경구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된 상황이라 그저 감사했죠. 평생 살아가면서 함께 연기할 기회가 없는 분일 수도 있잖아요.

홀로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선우’(도경수)와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의 사투. 시놉시스를 보면 우주를 다룬 SF의 주요 소재 중 하나인 우주 탐사선의 재난을 다룹니다. 익숙한 소재임에도 같은 소재를 다룬 여타 영화와의 다른 지점,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큰 맥락은 비슷할 수 있지만 이야기가 달라요. 한국인이 우주, 달에 간다는 내용 자체만으로도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왔어요. 요즘 좋은 소식(누리호 3차 발사 성공)도 들려오고, 계속 이뤄가는 과정이잖아요. 영화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제가 처음 달에 가는 한국인이 되는 거니까. (웃음) 뜻깊었어요.

SF치고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죠. 그 부분이 큰 에너지가 되었죠.

처음 접하는 장르라 주저하지는 않았어요? 선우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따로 촬영해야 하는 분량이 많고, 혼자 상상해야 할 부분도 많았어요. 우주복을 입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눈물 연기는 그냥 할 때도 어려운데 여러 신체적, 물리적 설정 속에서 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아우터 아미(Ami),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우터와 슈즈 모두 아미(Ami), 팬츠 산드로(Sandro),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선우가 처한 상황, 지구에서 38만4천 킬로미터 밖으로 홀로 떨어진 이의 극단의 고독과 절박감에는 어떻게 다가가고자 했어요? 고독과 슬픔, 분노 등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하잖아요. 제 나름대로 시도하고 몰입해가는 과정에서 환경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린 스크린만 있었으면 힘들 수 있었을 텐데, 실제 우주선과 거의 유사한 크기의 아주 좁은 공간에서 촬영하고 우주복 또한 실제 무게에 가깝게 제작했어요. 선체가 흔들리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강하게 흔들리고 거칠게 부딪혔거든요. 그 상황에서 실제 나올 법한 표정이 지어진 것 같아요.

그간 해온 역할과 비교할 때 가장 극단적인 감정선을 연기해야 했죠? 영화 <스윙키즈>에서도 감정의 고조를 보이지만 동료가 있는 상황이었고, 혼자만의 공포와 절망은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의 디렉팅이 짧은데 디테일해요. ‘내가 선우라면’으로 시작하는 대화를 자주 주고받았는데 바로 이해되는 때가 많았어요. 이해도 이해지만, 중요한 건 상상력 같아요.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어도 남들이 할 수 없는 상상을 아주 섬세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녹음 기능이 켜진 테이블 위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이 화면이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뒤집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화면이 보이게 두는 사람, 말하는 사람 앞쪽으로 가까이 대는 위치나 각도 등 처한 상황을 세밀하게 상상해볼 수 있잖아요. 평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선우는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요. 죽음 앞에서, 죽음을 초월해 임무를 수행하려는 선우의 용기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나요? 선우는 용맹하다 할 만큼 용감한 인물이죠. 영화로 봤을 때는.(웃음) 근데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해요? ‘너 왜 그러니? 도대체’ 하고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찾은 답은 ‘선우는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해내야 하는 사람이다’, 이 하나만 생각했어요. 나아가 극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임무를 수행하려는 선우의 용기가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대리 만족을 안길 것 같아요. 저 역시 어느 순간 선우가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더라고요. 본받게 되고요. 선우에게 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너 진짜 대단한 애구나’ 하는 말도 많이 한 것 같아요.

선우에게서 인간 도경수를 보기도 했어요? 저도 하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면 끝까지 파는 성격이긴 해요.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려는 성향도 있고요. 집요한 면은 있는 것 같아요.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아우터 렉토(Recto).

 

선우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과의 관계 등 영화 전체에서 인류애가 느껴지기도 해요. 일전에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고, 김용화 감독 역시 휴머니즘을 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감독이죠. 혹자는 비관적인 시선으로 현실과 인간을 냉혹하게 반추하게 하는 영화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따뜻한 이야기가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비관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고, 그런 작품이 해내는 역할과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다양한 시선과 메시지를 지닌 작품들, 메시지가 이면에 숨은, 깊숙한 곳에 메시지가 담긴 영화들도 많이 봐요. 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은 저마다 해석이나 풀이를 하기도 하잖아요. 제 경우는 그런 해석을 보고 ‘아, 이런 거였구나’,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지?’ 하는 정도로 끝나요. 그러기보다는 제가 지금까지 희망과 용기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접하며 얻은 에너지가 있으니까. 그 에너지를 보는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죠?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부분을 오랫동안 생각한 사람의 대답으로 들립니다. 그 대답은 아이돌로 살아가는 일과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팬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고자 하는 자세, 영향력이라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그 힘을 아는 사람의 대답 같아서요. 배우의 일로 옮겨와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맞아요.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그걸 아니까 계속 노력하게 되고요. ‘노래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새삼스레 따뜻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 노래를 듣고 좋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거죠. 저도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하거든요. 그 마음을 제가 똑같이 얻는 거잖아요. 팬 한 분 한 분에게 가서 친구처럼 만나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보이는 것, 듣는 걸로 에너지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늘 해요. 이에 대해 고민도 하고요. 아니, 근데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 힘을 받아봤기 때문에 ‘영향력’이라는 말의 무게를 아는 거겠죠. 한데 받은 힘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못할 수도 있잖아요. 단지 배우로서 또는 가수로서 생각하는 직업적 이상, 혹은 결과물의 완성도나 성취에만 골몰할 수도 있는데, 내가 받은 걸 돌려주려는 태도가…. 근데요… 자기만족만을 위해서라면, 단지 그뿐이라면 저는 이 일을 안 했을 것 같아요. 굳이? 자기만족만을 위한 음악이라면 타인이 듣기에 좋지도 않을 것 같아요.

보는 이들이 지금 하는 일의 동력이군요. 가장 큰 동력이에요. 다른 동력은 없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