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목소리는 어떨지 궁금했어요. 노래할 때는 앙칼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귀여운 면모도 있는데, 일상에서도 같은 톤으로 말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거 든요. (웃음) 지금 목소리는 어떤 것 같아요?
훨씬 부드럽고 톤도 나지막해요. 오늘은 아무래도 첫 만남이다 보니.(웃음) 만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데, 흥분할 때는 좀 앙칼져지긴 해요.
그럼 노래할 때 의도하는 부분이 있는 거겠죠? 특히 쏘는 목소리로 랩을 할 때는 변성기 이전의 어린 남자아이를 연상시키길 바랐어요. 작은 악마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지빈이라는 뮤지션을 접하게 되는 경로가 꽤 다양해요. 저는 So!YoON!(뮤지션 황소윤의 솔로 프로젝트)의 앨범 수록곡 ‘Gave you all my love’였어요. 단단하면서 거친 소윤의 목소리와 대조되는 날카로운 래핑이 흥미로워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찾아보게 되었거든요. 그 곡으로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도 찍어서 알아봐주는 분이 꽤 있었어요. 또 제가 시모와 함께 Y2K92라는 팀으로 활동 중인데, 팀을 맺기 전부터 음악 신에서 시모가 워낙 오랫동안 팬덤을 형성해온 터라 그를 통해 저를 알게 되었다는 분들도 있어 요. Y2K92의 음악 중 유독 좋다는 반응을 많이 접한 건 일민미술관 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도래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노 래>의 수록곡 ‘Bi-elijah’예요. 3년 전에 발표한 곡인데 요즘도 종종 SNS나 블로그에 추천한다며 글을 올리는 분이 있더라고요. 물론 최근에는 이센스와 빈지노의 새 앨범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지긴 했죠.
맞아요. 두 앨범이 나온 이후 지빈이 속한 Y2K92의 음악에 호기심을 갖 는 리스너가 급격히 늘었어요. 반응을 실감하나요? 공교롭게도 두 트랙이 비슷한 시기에 나와 임팩트 가 더 큰 것 같아요. 게다가 빈지노와 함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에 나간 덕에 알아보는 분이 확 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빈지노가 그 많은 트랙 중 에 왜 저희와 함께한 곡으로 라이브를 하려 했는지 좀 의아하긴 했어요. 왜냐고 묻진 않았지만요.(웃음)
황소윤, 빈지노, 이센스, 김심야, 창모 등 여러 뮤지션과 협업했어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협업 자체를 즐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협업하며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가사와 멜로디를 원거리에서 또는 실시간으로 조율하며 마음을 맞춰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거든요. 이와 동시에 그런 점이 어렵기도 하고요. 같이하는 뮤지션에게 어떤 도움이 되면 가장 좋을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면 좋을지 생각하고 반영해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Y2K92를 결성한 2019년을 시작점으로 봐 도 될까요? 그렇죠. Y2K92로서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제 음악 작업은 시모라는 아티스트를 만나면서부터 출발한 것 같아요. 그 이전에는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언젠가 같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기를 바랐는데, 그런 존재로 시모가 나타난 거죠. 그를 통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출구가 열린 셈이에요. 그 친구가 해준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음악을 할 수 있는 큰 용기를 얻었거든요.
그땐 어떤 음악에 빠져 있었나요? 사이킥 TV(Psychic TV)의 <Dreams Less Sweet>라는 앨범과 그라임스(Grimes)의 초기 앨범을 엄청 좋아했어요. 케이트 부시(Kate bush)와 비요크(Bjork)의 무대를 보며 가슴을 부여잡을 정도로 사랑했고요. 이 외에도 클럽에 다니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수집하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확고하게 좋아하는 사운드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은요? 요즘은 어떤 음악에 관심을 갖나요? 요즘 찬송가를 많이 들어요. 기도하는 사람들이 노래하며 갖는 마음의 상태는 어떨지 상상하고, 그것이 곧 저의 마음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또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의 게임 OST도 자주 들어요. 이탤리언 하우스나 디스코도 빼놓을 수 없고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Y2K92의 음악을 ‘무정형의,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으로 설명했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답을 들은 것 같네요. 듣는 음악의 범주가 이토록 폭넓으니, 경계 없는 음악이 가능한 거겠죠? 시모도 저도 음악 자체를 워낙 많이 들어요. 그중 마음 에 드는 건 디깅도 하고, 카테고리를 나누기도 하고 또 근원을 찾기도 해요. 그렇지만 특정한 음악을 레퍼런스로 삼지는 않아요. 열심히 좋은 음악을 찾고 모으는 리스너로서의 태도만 작업에 투영하는 거죠. 음악을 들을 때처럼 만들 때도 선택과 조합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편이에요. 음악이 우리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완성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전형성이 없기 때문일까요. Y2K92의 음악을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들 도 있어요. 익히 들어온 방식으로 전개되는 사운드가 아니어서 일종의 버퍼링을 겪는 거죠. 처음에는 이 음악이 누군가에겐 생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어색한 사람들이 만든 음악이라 그런 걸까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반응도 마음에 들어 요. 재미있고요.
한참 솔로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 었어요. 지금은 어떤 단계인가요? 믹스를 거의 마치고 마스터링을 준비하는 단계예요. 혼란스럽고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 오히려 친숙한 정서를 감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 을 이어가는 중이에요. ‘뭐지?’ 싶은데 듣다 보면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드 는 음악이랄까요. 이미 라이브 콘텐츠와 클럽 공연을 통해 들려준 곡들도 있 는데, 이를 더 다양한 버전으로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그 음악에 어떤 말들이 담길지도 궁금하네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락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빈의 가사는 다다이즘적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가사를 쓰나요? 가사를 쓸 때는 지금 나의 상황과 마음을 잘 담은 표현을 쓰는 게 제일 좋아요. 그렇게 쓴 문장이 아름답기까지 하면 더 좋고요. 간혹 감정이 과한 상태로 글을 쓸 때는 감정 그 자체를 노래하기보다 상황을 설명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과하지 않도록 덜어내는 편이고요.
곧 탄생할 지빈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나요? 이 음악을 통해 많은 것을 떠올리면 좋겠어요. 또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위로를 건네는 음악이 되길 바라요.
Y2K92로 함께 활동하는 시모가 지빈이라는 뮤지션을 ‘백지와 같다’는 말로 소개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마음을 상기하게 된다고요. 여전히 같은 상태에서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만드나요? 그렇게 되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순진했던 시기를 지나 이젠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