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잘했고, 오늘도 잘할 거고,
나중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배현성
드라마 <기적의 형제>가 끝을 맺었습니다.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 상기한다고 들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운이 좋게도 신원호 감독님과 노희경 작가님, 그리고 김혜자, 고두심, 박지환 선배님 등 매번 ‘내가 이분들과 함께하다니!’ 하며 놀라게 되는 분들과 같이 작업했어요. 그래서 현장에 늘 배울 거리가 넘쳤어요. 어떨 때는 선배님이 현장에 머무는 방식을 보면서 따라 하고, 그분들께 칭찬이나 조언을 들으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죠. 물론 연기도 많이 배웠고요. 이번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박찬홍 감독님의 열정이에요. 감독님의 열정이 엄청나거든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멋이 있잖아요. 감독님을 보면서 언젠간 저도 이런 멋이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산’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얻은 것도 있을 거예요. 형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가장 정의롭고 선한 선택을 이어가는 인물이죠. 강산이가 되게 맑아요. 엄청난 풍파를 겪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고, 옳은 선택을 하는 데 주저하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에게 동화되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살다 보면 마음이 혼탁해질 때도 있을 텐데, 그때마다 강산이를 떠올려야겠다 싶어요. 사실 순간 이동이나 염력 같은 강산이의 초능력도 얻고 싶긴 했는데(웃음) 드라마 속에서 경험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강산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장면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신이었을 것 같아요.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인 데다 CG가 입혀지는 터라 표현하면서 더해야 할지, 덜어내야 할지 고민스러웠을 거라 짐작해요. 그럴 때 저는 더하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강산이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컨트롤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스스로 과하다 싶어 멈추면 강산이가 자유자재로 쓰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거든요. 어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분출되어버리는 느낌으로 연기를 했어요. 사실 가장 어려웠던 건 이 이야기에서 제가 맡은 역할의 크기였어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정도의 역할은 처음이라 부담이 컸거든요. 초반에는 엄청 긴장했어요. 긴장할 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편인가요? 오늘 화보만 봐도 꽤 걱정을 하고 왔다고 들었는데, 촬영 내내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맞아요. 잘 숨기는 편이에요.(웃음) 촬영 전에 마인드 컨트롤을 되게 열심히 하거든요. 그래서 끝난 후에 ‘저 엄청 긴장했었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놀라요. 그럼에도 <기적의 형제>를 할 때는 부담감이 워낙 커서 중간중간 티가 날 때도 있었는데 정우 선배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칭찬을 꽤 많이 들었다면서요? 박찬홍 감독님에게 천재라는 소리도 듣고, 마지막 촬영 날에는 정우 배우에게 뽀뽀까지 받았다고요. 사랑이 가득한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많이 예뻐해주셨습니다.(웃음) 제가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칭찬을 워낙 많이 받아서 금세 회복할 수 있었어요. 저한테 혼나고, 치유는 다른 사람들 덕분에 되는 식이었죠. 항상 발전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스스로에대한 믿음을 키우는 데 칭찬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지난해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할 때도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일찍이 저를 믿어주셨던 분들에게 ‘현성이가 이렇게 잘하고 있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런 말을 했었는데, 1년이 흐른 지금 그 바람에 어느 정도 닿았는지 궁금해요. 아직 멀었죠.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에 여러 작품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왔으니 그날로부터 한 발짝은 내딛지 않았나 싶어요. ‘현성이가’까지는 말할 정도인 것 같아요. 내년에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웃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어느 정도인가요? 배우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것 만큼 나를 믿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잖아요. 이 또한 아주 작은 걸음이지만, 이전보다는 커졌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믿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좀 전에 긴장하는 티를 안 내려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를 믿는 부분에 대해서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애쓰거든요. ‘지금까지 잘했고, 오늘도 잘할 거고, 나중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현장에서 더 편하게 연기하게 돼요.
그 믿음을 굳이 수치로 환산해본다면요? 음… 80% 정도요.
비워진 20%는 어떤 마음이에요? 너무 완전히 믿어버리면 배신당할 수도 있잖아요.
스스로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른 말로 안일해지는 거죠.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확신이 되어버리면 위험해지거든요. 누구보다 저를 믿으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을 조금은 열어두려고 해요. 그리고 나머지 20%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믿어줌으로써 채워질 수도 있고요.
듣고 보니 ‘잘될 거야.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이 안일함과 자신감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기에 이 믿음을 더욱 잘 활용해야 할 것 같고요. 어떤 목표를 두고 무작정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그보다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할 때 이 마음을 쓰는 거죠. 예를 들어 오디션을 보고 나올 때,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또 연기하면서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야 할 때도 걱정이 먼저 들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순간마다 행복 회로를 돌리는 데 이 믿음을 써요. 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안 했는데, 연기를 시작하면서 고민하게 된 부분이에요.
꼭 연기할 때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마음이지 않나 싶어요.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리는 중이겠죠? 네. 사실 당장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작품을 이미 시작하긴 했어요.(웃음) 그 현장에도 같은 믿음을 품고 임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