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의 영화는 단연코 <밀수>였습니다. 시원하고 개운한 활극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관객마다 가장 좋아하는 액션 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배우의 마음에는 어떤 장면이 들어왔는지 궁금해요. 해양 액션 활극인 만큼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참 좋았어요. 특히 언니들이 물속에서 수영하는 모든 장면을 좋아해요. 슬픈 신이 아닌데도 왜 그런지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볼 때마다 눈물이 맺히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이 손을 맞잡고 교차하는 부분이고요. 물론 ‘권 상사’(조인성)와 ‘장도리’(박정민)의 호텔 액션 신도 빼놓을 수 없죠. 그 장면에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진짜 짜릿하지 않아요? 시사회에서 그 장면을 보는데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너무 멋있고 신나서요.
몇 번이나 봤어요? N차 관람하는 관객이 꽤 많던데요. 개봉 후에 박경혜 배우와 4DX로 한 번 더 봤으니, 제작 발표회랑 VIP 시사회까지 합쳐서 총 세 번 봤네요. 너무 아쉬워요. 제작 발표회 때 아이맥스관에서 봤는데 객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분이 오셨거든요. 다 같이 봐서 그런지 재미가 더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영화관에 사람이 많으면 전염되듯이 같이 웃고 울면서 혼자 볼 때보다 훨씬 밀도 높은 감정을 느끼잖아요. 그 재미를 몇 번 더 느껴보고 싶었는데 드라마 촬영하느라 못 갔어요. 누구보다 N차 관람 많이 할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자신의 작품을 잘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는 배우도 많던데, 오히려 즐기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출연한 작품 보는 걸 좋아해요. 괴로워하면서도요. 데뷔 초에는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하면서도 수십 번씩 봤어요.
그렇게까지 괴로우면서도 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문제점을 하나하나 뜯어 살피려고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불만족스러운 연기에 내성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볼 때마다 창피했어요. 그래서 잘 봐두었다가 다음 작품에선 고쳐내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그래도 여유가 좀 생긴 것 같아요. 좋으면 좋은 대로, 아쉬운 부분을 찾으면 찾는 대로 그냥 봐요. 그렇지만 여전히 질릴 때까지 여러 번 봅니다.
2년 전,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하며 꿈꾸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늘 주체적인 인물에 끌려요. 그중에서도 밑바닥부터 자신의 힘으로 목표를 이뤄낸 인물이 좋고요”라는 말을 했어요. <밀수>를 보고 나서 드디어 그 캐릭터를 만났구나 싶었어요. ‘옥분’이야말로 그 말에 정확히 일치하는 캐릭터잖아요. 옥분이 다방 직원에서 마담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하는 대사가 있잖아요. 신랑 있는 마누라들에게 머리채 쥐어 뜯겨가면서 여기까지 왔다고요. 그 말에서 그가 얼마나 악착같이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잡초처럼 밟히고 뜯기면서도 당차고 당돌하게 버텨낸 삶이죠. 그래서 그런 척은 할지라도 속으로는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아요. 눈치도 아주 빨라요. 괜히 군천의 정보통이 아니죠.(웃음) 게다가 끝까지 밀고 가는 의리도 있고요. 저는 그런 옥분이가 지닌 화끈함이 참 좋았어요. 갈매기 눈썹과 은갈치색 한복까지도요.
박찬욱 감독이 나도 그렇게까진 못 할 것 같다고 말한 갈매기 눈썹은 올해 최고의 메이크업이라 해도 무방하죠.(웃음) 어쩜 그렇게 1970년대 다방 마담의 비주얼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던 거예요? 촬영 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 질문을 많이 했어요. 다방 마담을 연기하기에는 성숙한 느낌이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당시에는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마담 또한 연령대가 그리 높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눈썹을 그리고 한복을 입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