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OTT 시리즈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은 단연 <D.P.>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군대에서 악행을 일삼았지만 제대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황장수’가 우연히 후임을 마주하는 몇 초의 시간은 보는 이들을 단숨에 몰입시켰다. 짧은 장면임에도 긴 여운을 남긴 데는 배우 신승호의 힘이 컸다. 웹 드라마 <에이틴>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나아갈 방향을 인지한 채 쉼없이 전진해왔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확실한 동력이다.

 

재킷 호이테(heute), 티셔츠 골든구스(Golden Goose), 팬츠 웰던(We11done), 슈즈 캠퍼(Camper), 벨트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황장수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웃음) <D.P.> 시즌 2 마지막 장면이 화제가 되었어요. 저도 무척 기다린 장면이었어요. 물론 제가 황장수를 연기했으니 이 장면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알고 있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D.P.> 시즌 2가 막을 내릴 때 황장수라는 인물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어요. 많은 분이 인상 깊게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해요.

단순한 장면이지만, 그 안에서 황장수를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가만히 서서 ‘안준호’(정해인)를 쳐다보기만 하는 연기가 별것 아닌 듯하지만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이 장면에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황장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시청자의 의문에 제가 답을 내리고 싶지 않았어요. 황장수의 속마음에 대한 여러 추측이 다 답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추측이 장면 속 상황과 어긋나지는 않아야 하니 고민을 많이 했어요. 황장수의 감정 중 그나마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건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아닐까 싶었어요. <D.P.> 시즌 2 이후의 황장수는 대한민국 남성이자 성인으로서 갱생하고 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특별 출연임에도 황장수를 <D.P.>의 중요한 인물로 만든 건 배우가 지닌 힘 덕분이기도 할 거예요. 우선 한준희 감독님이 훌륭한 작품에, 그것도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로 저를 다시 한번 불러주셔서 좋았고요. 배우라면 사람들이 나의 어떤 면 때문에 나를 찾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턴가 칭찬을 받으면 ‘왜 나한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걸까?’ 하고 자문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당도한 결론은 제가 가진 외적 이미지의 영향이 있다는 거예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얼굴과 큰 몸집, 낮은 목소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게 제 장점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이미지가 배우로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해요. 이를테면 여리고 풋풋한 역할을 제 또래 배우들은 보다 쉽게 해낼 수 있지만, 전 훨씬 더 노력해야 하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등을 통해 학생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잖아요. 열여덟 살 인물을 네 번이나 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여덟 살을 연기한 게 3년 전이네요. 당시에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고등학생 때도 이 얼굴이었어요. 물론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변했겠지만요.

지금 답변을 이어가는 얼굴에서 풋풋함이 느껴집니다.(웃음)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 분위기의 간극이 커요. 헤어스타일에 따라서도 그렇고요.

 

데님 셋업 순진 (soonjeans), 셔츠 준지 (Juun . J), 부츠 손신발 (Sonshinbal),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승호 DP 약한영웅 OTT 부활남 부산국제영화제 BIFF

롱 코트 비욘드 클로젯(BeyondCloset), 그린 셋업과 슈즈 모두 코스(COS),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그동안 또래 배우들이 등장하는 작품에 다수 참여해 왔어요. 그래서 ‘신승호 유니버스’라는 말이 생겼더라고요. 신승호 배우와 인연이 있는 또래 배우들을 거치다 보면 전부 이어진다고요. 신기해요.(웃음) 일만 두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또래 배우는 경쟁자잖아요. 하지만 그들을 떠올리면 개인적 친분이 없더라도 마음의 의지가 돼요.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 주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등 이 모든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요. 그래서 작품 속에 멋지게 존재하는 또래 배우들을 보면 용기를 얻고, 욕심이 생겨요.

그 마음이 신승호 배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겠군요. 요즘은 백종열 감독의 신작 <부활남>을 촬영 중이라고 들었어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순간 열심히 했지만, ‘내가 이렇게 열정적이던 때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촬영에 몰두하고 있어요. 연기하는 저 스스로 신이 난 건지, 지금 연기와 가장 친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저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에 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현장으로 향하며 즐거움을 느끼나요? 물론 현장으로 출근하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는 않죠.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동안 더 좋은 연기,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는 과정이 즐거워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사명감을 품고, 치열한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요즘 아주 행복한 상태예요.

<부활남>을 통해 <D.P.>에서 함께했던 구교환 배우와 다시 만났어요. 교환이 형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제가 <부활남>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너무도 존경하는 선배와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기쁨과 자부심을 느껴요. 교환이 형이랑 호흡을 맞추다 보면 매번 새로운 무언가가 피어나요. 뻔하지 않게 연기하고 싶다는 일종의 고집이 있는데, 제가 감히 생각할 때 형은 그런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인 것 같아요. <D.P.>의 ‘호열’(구교환)이 느닷없이 황장수의 새우깡을 집어 먹듯이, 형은 어딘가 다른 영역에서 고민하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분이라고 느끼죠. 현장에서 교환이 형을 보며 자연스레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형한테 가서 이것저것 여쭤보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연기에 대한 열정이 아주 크다는 게 느껴져요. 연기에 처음 매료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연기를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고 학원에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때, 수강생들이 각자 연기를 선보이는 시간이 있어 대본을 하나 받았어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근성이 있는 편이라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부끄러움과 동시에 온갖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 흥분되더라고요. 그때 연기의 희열을 처음 만끽한 이후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순간적으로 발현된 근성이 신승호를 배우의 길로 이끈 셈이네요. 그 근성은 타고난 기질에 가까운가요? 아니요. 배우가 되기 전, 11년 동안 축구를 하며 생긴 근성이에요. 운동선수로서 필드에 올랐던 시간이 제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느껴요.

단단한 내면이 배우 활동에 도움이 되죠? 그럼요. 현장에 있으면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부담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한정된 시간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면, 저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일단 저질러봐요. 이게 최선일지는 모르지만, 최악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요. 스스로 부족한 점을 발견할 땐 이를 인정하고 더 노력해요. 그러면서 신이 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 같아요.

건강한 방식이네요. 그렇게 배우로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꾸준히 전진해온 점은 잘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멈추지 않았고, 지친 적도 없어요. 앞으로도 속도에 상관없이 계속 나아가려 해요. 나태함, 게으름, 과식을 경계하면서요.(웃음)

그 과정을 거쳐 어떤 배우로 각인되고 싶나요?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어요. 신승호가 아니라 <D.P.>의 ‘황장수’, <약한영웅 Class 1>의 ‘전석대’, <에이틴>의 ‘남시우’ 등으로요.

하지만 작품 속 캐릭터를 본 후 신승호 배우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팬들의 응원은 제가 배우로서 부단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줘요. 그들과 대면한 순간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요. <약한영웅 Class 1>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영화의전당에서 관객들을 만난 순간도 그중 하나고요. 당시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머물렀던 1분 1초가 참 소중했어요. 도시 전체가 활기로 가득한 시간이었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현장은 영화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는 자리이기도 하죠. 맞아요.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고, 그곳에서 하루의 일부를 작품을 감상하는 데 온전히 쓰잖아요. 그 경험 자체가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객석 뒷자리에 앉아 제가 출연한 영화를 봤는데, 관객들이 상영 시간 내내 스크린에 집중하더라고요. 그 순간 피가 끓었어요. ‘아, 연기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