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서 하는 인터뷰는 오늘이 처음인 거죠? 맞아요. 그래서 지금 되게 어색해요.
느낌이 좀 다른가요? 많이 달라요. 가수로서는 꽤 많은 무대를 경험했고, 어떤 부분에선 잘한다는 자신감도 있거든요. 그래서 “가수 정동원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익숙한데, 배우로서는 완전히 그 반대예요. 데뷔작인 영화 <뉴 노멀> 이후에 드라마도 한 편 찍었지만, 아직 배우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요. 아까도 촬영하면서 ‘정동원 배우’라고 부르시는데 바로 돌아보게 되지 않더라고요. 누굴 부르는 거지? 했어요.(웃음) 감독님은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하라는데, 아직은 저를 그렇게 소개해도 되나 싶어요. 그래도 오늘 인터뷰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웃음)
그런데 어떻게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어릴 때부터 노래와 연기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두 가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당연히 해야죠!”라고 말했어요.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하겠다고 뛰어든 거예요.
과감한 선택 뒤에 고민이나 후회가 따르지는 않았나요? 자주요.(웃음)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까 멘붕이 오더라고요. 매일매일 외운 대사도 기억나지 않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거예요. 그때가 엄청 더운 한여름이었는데,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가 덥고 힘든 게 보이니까 ‘나 때문에 오래 걸리면 안 된다. 민폐 끼치지 말자’ 하는 생각이 커지면서 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수없이 질문을 한 건가요? <뉴 노멀> 출연진 중 가장 질문이 많은 배우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열심히 해석하고 공부한 게 있긴 하지만, 누구보다 이 영화를 잘 아는 분이 감독님이잖아요. 혼자 해보려 애쓰기보다 어설픈 질문이라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질문했어요. “여기서 승진이는 어떤 감정일까요?” “이 부분에서는 얼마나 떨리는 목소리를 내야 할까요?” 심지어 좀 웃기긴 한데,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는 부분에서 “각도는 이 정도로 할까요?” 이런 질문까지 했어요.
어떤 답을 얻었나요? 제가 맡은 ‘승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되게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지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동원아, 너는 연기가 처음이야.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아니다 싶으면 또 하고, 또 하면서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말이에요. 초반에는 이 작품에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렇게 해볼까?’ 싶을 때도 안하고 질문부터 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해도 괜찮다며 해주신 말씀 이에요. 그때부터 마음을 좀 놓고 제가 하고 싶은 표현을 하게 됐어요. 뭘 해도 다 괜찮다, 좋다 해주시니까 용기가 나더라고요.
정범식 감독님은 <기담> <곤지암> 같은 무서운 영화를 만드는 분인데, 현장 에서는 영화와 정반대의 따뜻함을 보이시는 것 같네요.(웃음)저도 그래서 처음에는 좀 겁이 났어요. 수염을 기른 데다 인상도 어딘가 좀 무섭거든요.(웃음) 그런데 얘기해보면 완전히 달라요. 되게 편한 삼촌 같은 분이에 요.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영화 <뉴 노멀>에는 평범한 일상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는 6개의 순간이 담겨 있어요. 공포물이라는 데서 오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뉴 노멀>은 감독님 의 전작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공포를 담은 작품인데요. 공포물이라서 무서운 부분은 없었어요. 그보다 제가 얼마나 그 공포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죠. 만약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판타지적인 면이 있었으면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을 보여주 는 거라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그래 서 더 무서운 것 같더라고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그런지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어 경각심이 들기도 했고요.
관객으로서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인가요? 아니요. 여름에 친구들끼리 모여 서 공포영화 많이 보잖아요. 이번 여름에도 애들이 집에 와서 보려고 하길 래 나가라고 했어요.(웃음) 공포물을 보면 집 자체가 무서워져요. 얼마 전 에 어렵게 용기 내서 감독님 영화 <곤지암>에 도전했는데, 반밖에 못 봤어요. 감독님께는 죄송하지만 뒷부분은 절대 안 볼 거예요.(일동 웃음)
그런 사람이 어쩌다 처음 출연하는 영화로 공포영화를 선택하게 된 거예요.(웃음) 그러니까요! 현장도 엄청 으스스했거든요. 아마 중반부부터는 승진이의 얼굴에 제 진심도 약간 들어 있을 거예요.
영화 현장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음악 방송 에서 사전 녹화를 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정도 부르면 끝나거든 요. 그런데 영화는 한 신을 이쪽에서 찍고, 멀리서 찍고,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찍고 하며 한 다섯 번은 찍더라고요. 감독님이 오케이 하셔서 끝났다 싶어 다음 대사를 생각하는데, “다른 구도로 다시 갈게요” 하는 식이죠. 그때마다 같은 대사를 같은 느낌과 호흡으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엄청 어렵더라고요. 같은 감정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연기를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나 용기를 발견하기도 했겠죠? 추격 신에서 한 번에 오케이를 받았을 때요. 엄청 뿌듯했어요. 그게 마지막 신이었는데, 그제야 자신감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처음부터 있었으면 너무 좋았겠지만, 모니터링하면서 ‘내가 이렇게 했다고?’ 이런 느낌이 한 번이라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신 덕분에 다음 작품을 하게 되 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생겼어요.
이제 배우로서 하는 또 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어요. 개봉하면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도 해야 하고, 관객과 대화하는 GV도 있을테니까요. 그때도 첫 촬영 때 처럼 기대와 설렘, 걱정이 공존하겠죠? 기대가 되면서도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계속 의심할 것 같아요. 가수 정동원의 무대가 아니라 배우 정 동원의 영화를 보려고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온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요. 요즘 계속 무대 인사를 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실수하면 안 되는데 이런 걱정에 쌓여 있어요. 그래서 엊그제도 감독님께 전화했더니 괜찮다고, 편하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편하게 해도 되는 걸까요?
좀 전에 영상 콘텐츠 찍으면서 미리 무대 인사 연습을 했잖아요. 아주 잘하던데 요. 영화 10편은 넘게 찍어본 배우의 태가 났습니다.(웃음) 영화 제목이랑 제 역할에 대해 얘기할 때 틀리지 않으려고 엄청 연습하고 있어요. 어떤 말을 들으면 걱정이 덜어질 것 같아요? 첫 영화에 대한 성취감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냥 “무섭더라” 이 말이 나온다면 성공인 것 같아요. 그럼 안심하는 걸 넘어서 진짜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정동원 잘하더라”라 는 말도 물론 기분 좋겠지만, 그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칭찬이 최고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처럼 공포영화 못 보는 사람도 봐주면 좋겠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