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라인 포인트 드레스와 이어링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김재화
<그녀에게>

감독 이상철 출연 김재화, 성도현, 빈주원, 이하린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뤄내고야 마는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은 당차고 유능하게 업무에 매진하다가
쌍둥이 남매를 출산한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
어느 날, 성장이 더디던 둘째 지우(빈주원)가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는다. 이후 상연에게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에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일 것이다. 49회째 이어져온 내실 있는 독립영화제이니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2018년 단편 <다운>으로 독립스타상을 받는 등 서울독립영화제에 참여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맡은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장편 <그녀에게>가 선정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디어 라이프 즉 ‘친애하는 모두의 삶에게’라는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슬로건이 내가 <그녀에게>를 선택한 경위와 딱 들어맞아 놀라웠다. 바쁘게 작품 활동을 하다가 가정에 더 충실하기 위해 강원도 양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무렵 이상철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던 중에 아이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으며 삶의 큰 변화를 겪는 상연과 내가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를 연기하면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선배들의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꿋꿋하게 나아가며 <그녀에게>는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서 출발한 영화다. 작중 상연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유약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가 짊어진 삶의 짐은 마냥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상연과 비슷한 ‘그녀들’에게,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다.

삶에 대한 사랑 “너의 삶을 사랑하렴. 삶은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더라.” 최근 글쓰기 모임에서 나도 몰래 이런 말을 했다. 이전에 배우로서의 행보만을 돋보기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삶 전반을 여유롭게 살필 수 있는 다초점 렌즈를 갖게 된 듯하다. 상연과 만난 이후 삶을 대하는 관점이 바뀐 덕분이다.

다양한 시도의 가능성 독립영화는 다른 형태의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다채롭다. 그만큼 연기할 때 자유롭게 시도하며 배우로서 욕심을 채울 수 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도 독립영화 특유의 재미를 만끽하기를 바란다.

영화의 물 데뷔 후 20년 가까이 함께해온 영화 작업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앞으로도 영화의 물결을 따라 꾸준히 항해하고자 한다. 항해의 시간이 쌓일수록 나 또한 하나의 유기체로서 점점 변화할 테고, 그래서 향후 배우 생활이 기대된다. 80대가 될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그러려면 선한 마음과 순수한 열정을 잃지 말고, 내 삶을 잘 일궈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