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와 스카프 모두 에이치앤엠(H&M), 재킷 네이비 바이 비욘드 클로젯(NAVY by Beyond Closet).

 

 

노재원
<세기말의 사랑>

감독 임선애 출연 이유영, 임선우, 노재원

2000년을 앞둔 세기말.
영미(이유영)는 짝사랑하는 남자
도영(노재원)이 유부남인 데다 공금횡령으로
감옥에 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게다가 이를
묵과한 영미 역시 감옥에 가게 된다.
출소 후 영미를 찾아온 도영의 아내 유진(임선우).
모든 것을 잃고 제 몸 하나만 남은 영미와
장애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유진의
기묘한 만남은 불편한 동거로 이어진다.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 서울독립영화제는 나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바라봐준 곳이다. 2021년 배우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참여했는데, 1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참으로 귀한 기회다. 본선 진출 24인에 속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수상 여부를 떠나서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런데 1등을 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뒤풀이 때 큰 용기를 내어 심사위원이던 이희준 선배님에게 다가가 언젠가 꼭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고백한 순간도 생각난다.

서울독립영화제 쌀쌀한 날씨에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도전하러 간다는 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해 수능을 보러 가던 때의 감정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던 이 영화제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여전히 꿈만 같고 신기하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 배우로 참여한 작품이지만, 관객으로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이유영 배우와 임선우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내심 “어떻게 저렇게 했는지 물어봐야겠다” 싶기도 했고. 영미와 유진, 도영 모두 깊고 넓은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임선애 감독님의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든 것 같다. 아주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도영을 만나 내가 따뜻하고 예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실 처음에는 도영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임선애 감독님이 “그만큼 깊이 있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재원 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말에 작은 용기를 얻고, 무조건적인 도영의 사랑에 대해 엄마가 해준 “너 할머니 사랑하는 거 생각해봐. 무슨 조건이 필요하니”라는 말에 얻는 작은 용기를 더해 도영을 연기했다.

연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조차 재미있다. 나의 재능 중 하나가 연기를 참 재미있어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과에 지원했는데, 네 번이나 떨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내가 연기를 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떨어진 건 가슴 아프지만 한 번 더 도전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나는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묘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잘 못하는 것 같아 한없이 작아질 때도 있는데, 그마저 좋다.

지금이라 가능한, 지금만 가능한 연기를 해나가고 싶다. 최근 서툴고 부족하게만 느껴지던 지난 작품을 다시 보며 “아, 이건 그때의 나라서 할 수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최선을 발견한 거다. 이 일을 겪으며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최선을 다하자, 지금 가능한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