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주하는 갈림길 앞에서 오늘과 다른 무언가를 선택하며 자라온 정세운의 음악들.
오전 촬영이었는데, 새벽에 운동을 하고 왔다면서요.
네. 워낙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라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요. 그런데 사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운동은 거의 매일 해요. 일주일에 6일 아니면 7일.
그 정도면 체육인의 삶이 아닌가요? 운동에 빠진 계기가 있나요?
사실 빠진 건 아니에요. 저 운동 너무 싫어해요. 힘들잖아요.(웃음) 그래서 일부러 매일의 습관으로 만들었어요. 고민하지 않고 일단 제 몸을 운동하는 곳에 데려다 두는 거죠. 그럼 어떻게든 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매일 몸을 움직임으로써 얻은 게 건강만은 아닐 거예요.
맞아요. 하기 싫은마음을 이겨내고 해냈을 때 얻는 성취가 제가 일하고 일상을 사는 데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대단한 건 아닐지라도 작은 성취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그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그리고 뜻밖에 음악 작업을 하는 데에도 좋아요. 매일 작업실에서 음악만 생각할 때는 잘 풀리지 않던게 밖으로 나가 다른 걸 하면서 갑자기 확 풀리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이번 앨범의 작업 기간이 워낙 길어서 제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던 답이 운동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까 오히려 번뜩 떠오르더라고요.
이 또한 운동에서 기인한 효과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앨범 를 듣고 어딘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 변화가 이전과 사운드가 완전히 달라졌다기보다 음악의 범주가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랜만에 내는 앨범이니 이전과 같은 스타일로 쭉 가는 것보다 뭔가 색다른 걸 넣으면, 하는 저도 듣는 이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시도 중 하나가 다른 음악가와의 협업이었고요. 이전에는 주로 혼자 곡을 만들었는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선우정아 님이나 해외 밴드 나이틀리(Nightly)와 같이 작업했어요. 이들의 영향으로 제 음악에 새로운 인상이 더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뮤지션 선우정아와는 어떤 인연으로 함께 작업하게 된 건가요?
몇 년 전 선우정아님이 소띠 연예인들과 함께 ‘BUFFALO’라는 곡을 낸 적이 있는데, 저도 피처링에 참여했어요. 그때 작업을 마치고 “아무 때고 나를 이용할 수 있는 자유 이용권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당장 작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준비 없이 불쑥 시작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땐 제가 프로듀싱 경험이 없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좋아한, 제게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다 보니 제가 조금 더 음악적으로 성장한 다음에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용권을 간직했죠. 그 후로 프로듀싱을 해보면서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어떤 걸 신경 써야 하는지,음악적으로 내가 어떤 걸 잘하고 좋아하는지가 더 뚜렷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그래, 이제는 같이 해봐도 되겠다”라는 결심이 섰고, 이번 앨범에서 드디어 고이 품어온 이용권을 쓰게 된 거죠.(웃음)
이용권 사용 후기가 궁금한데요.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Quiz’에서 그 즐거움이 어느 정도 예상되긴 하지만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만나서 네다섯 시간 동안 서로 자기 얘기를 할 때부터 녹음할 때까지 모든 순간이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건 녹음하는 날인데요. 선우정아 님은 음악을 하나의 생명체라고 여기면서 최대한 잘 살아 있도록 하는 데 온 창의력과 감각을 끌어올리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반성도 하고 큰 동력도 얻었어요. 제가 녹음할 때 디렉팅도 해주시면서 가사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도록 계속 자극이 되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외에도 표현력이나 가사를 좀 더 잘 들리게 하는 방식, 녹음할 때 신경 써야 하는 부분 등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캐치해서 알려주셨고요. 같이 작업하면서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저의 한계를 넘어서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앨범의 만족도에 대해 묻고 싶었는데, ‘Quiz’의 작업기로 이미 답을 들은 것 같네요.
사실 어떤 앨범이든 당시에는 만족했기 때문에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쉽고 모자라다 싶었으면 어떻게든 계속 작업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시간
이 흐르고 제 경험치도 늘어난 후에 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하지만, 몇 년 뒤에 보면 다른 부분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후회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음악을 즐겁게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요.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까요? 자신의 음악이 끊임없이 변하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굳건한 나만의 시그니처가 있기를 바라나요?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수없이 그런 갈림길이 있었던 것 같아요. 를 막 끝냈을 땐 기존의 창법을 유지할지 아니면 아예 기초부터 새로 다질지 선택해야 했고, 앨범을 만들면서 작곡과 작사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둘지 생각해야 했어요. 이후엔 프로듀싱을 시작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고요. 모두 다른 질문이지만, 결국은 지금 상태를 유지할지 다른 걸 해볼지 선택해야 하는 갈랫길 앞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마다 어떤 쪽을 택했어요?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낯설고 두려운 일이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제 음악은 계속 변화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제는 더 과감한 선택을 해도 될 것 같아요. 무엇을 하든 한결같이 지켜지는 저만의 것이 있다고 믿거든요. 이제는 음악에서 어느 정도 저만의 기준이 생겨서 하지 않던 장르를 시도하거나, 색다른 협업을 해도 제 음악으로 소화해낼 자신이 있어요.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낯설고 두려운 일이잖아요.
정세운
그렇지만 저는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제 음악은 계속 변화하면 좋겠어요
정세운이 펼칠 음악의 범주가 훨씬 넓어질 거라 기대하게 되네요. 다음 앨범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갈래가 있다면요?
협업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다른 분들이랑 함께 작업하면 저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조금 더 커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요즘은 꼭 음악가가 아니어도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같이 해볼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그리고 데뷔 초 때처럼 곡을 받아서 노래하는 시도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금 하면 또 다른 느낌이 나겠다 싶고요.
무엇이든 가능한 이의 기세가 느껴져요.
아주 활짝 열려 있습니다.(웃음)
그럼 이번 앨범으로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 가능하다면 해보고 싶은 무대가 있어요?
노래하다 보면 막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거든요.(웃음) 특히 타이틀곡 ‘Quiz’의 리듬이 통통 튀고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탁 트인 곳에서 저도 맘껏 뛰어다니면서 노래해보고 싶어요. 여름의 페스티벌 무대를 기대하고 있어요. 제 동선을 무대로 한정 짓지 않으면 더 좋고요.
그 말을 들으니 한정 짓지 않는 것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야 뭐든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정체되지 않을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