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나를 내려놓고 시작하는 마음.
서른의 문턱에서 배우 공명이 다짐하고 기대하는 것.
전역 후 오랜만의 화보와 인터뷰죠?
네, 그래서 설레면서도 좋은 의미로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어제 영화 <시민덕희>에서 함께한 선배님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는데, 소맥 딱 두 잔만 마시고 절제했어요.(웃음)
오늘 촬영하면서 모두 익히 아는 배우 공명의 사랑스럽고 맑은 모습과는 다른 면을 본 것 같아요.
그런가요?(웃음) 군 입대를 기점으로 제 모습과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변화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화보에도 잘 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지난해 6월, 약 1년 6개월여의 군 복무를 마치고 배우의 자리로 돌아왔어요. 데뷔 이후 휴식기 없이 꾸준히 활동해온 만큼 그 기간이 배우로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 짐작해요.
맞아요. 열아홉 살에 활동을 시작해 20대 내내 배우로 활동하다 입대한 터라 입대 날짜가 정해졌을 때부터 이 시간만큼은 배우 공명이 아닌 인간 김동현으로 보내며 스스로에게 쉼을 선물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데뷔 초에는 작품을 마치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가끔씩 있었거든요. 이후에 작품 사이의 공백이 줄고 바로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서는 이런 고민을 점차 잊고 지냈는데, 입대하면 다시 오롯이 저로서 사는 시간을 갖는 거니까 이 기회에 충분히 잘 쉬어보자 생각했죠.
그렇게 인간 김동현으로 보낸 일상은 배우 공명의 삶과 달랐나요?
다를 거라 예상했는데 똑같더라고요.(웃음) 오히려 “공명으로 불리는 순간도 전부 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김동현의 생각이나 관점도 공명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 깨달음이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그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됐어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거든요. 운 좋게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도,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잘해내고 있다는 점도 모두 더없이 감사할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 때문일까요? 전역 직후의 모습을 기록한 브이로그에서 어떤 작품이든 다 도전 해보고 싶다고 밝혔어요.
맞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든 더 소중히 생각하며 임하고, 그 기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이 1년 반 동안 차곡차곡 쌓였어요. 올해의 목표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재민’ 역으로 참여한 <시민덕희>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재민에게 보이스 피싱을 당한 ‘덕희’(라미란)가 곧이어 재민에게 구조 요청을 받으며 범죄 조직의 총책을 잡으러 나서는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입대 전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작품을 마주하니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굉장히 풋풋한 모습이더라고요. 한 달 전쯤 선배님들과 다 같이 모여 <시민덕희>를 미리 감상했는데,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볼 때처럼 다들 조금씩 고통스러워하면서 봤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니 무척 뿌듯했어요. 어떤 작품이든 개봉할 때 관객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는데, 재미있는 작품이라 자부해요.
예고편을 봤을 땐 재민이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물일 거라 예상했는데, 영화 전반에 걸쳐 웃음기 없는 재민의 모습이 많아 좀 놀랐어요. 재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어떤 점에 집중했나요?
재민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지만 중국 칭다오에 기반을 둔 보이스 피싱 조직에 납치돼 강제로 범죄에 가담하는 인물이에요. 덕희를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으니 가해자지만, 자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죠. 재민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연기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과 이 지점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고요.
덕희 역의 라미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어땠나요?
시나리오 전개상 칭다오로 직접 찾아온 덕희와 재민이 만나기 전까지는 내내 전화 통화로만 대사를 주고받는 설정이라 저는 주로 어두운 세트장에서 따로 촬영했어요. 라미란 선배님이 먼저 촬영하신 장면들은 그 음성을 들으면서 연기했는데, 대면하고 대사를 주고받는 상황이 아니어서 어려움도 있었어요. 촬영 막바지에야 선배님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때 현장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해서 함께 등장하는 신을 찍은 며칠간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어느덧 데뷔한 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특히 올해는 30대에 들어서며 새로운 시작점에 서는 해이기도 하고요.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스스로 자신의 어떤 점을 칭찬해주고 싶나요?
딱 스무 살 때, “서른이 되면 다 씹어 먹을 거다!”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었어요.(웃음) 어떤 변화를 주려고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주 많은 걸 경험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잘해왔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듣다 보니 언젠가 TV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에서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며 배우라는 직업을 마라톤에 비유한 게 떠오르네요. 앞으로 긴 레이스를 잘 달리기 위해 배우 공명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꼭 해야 하지만 안 하고 있는 건데요. 아니, 시작은 했어요.(웃음) 바로 영어예요. 저도 배우로서 한 번쯤 할리우드에 가서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 영어를 열심히 배워보려고요. 배우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영어를 배워두면 기회가 많을 거라는 조언을 자주 들었는데, 지금은 그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반대로 내려놓고 가야 할 것은요?
지난날의 나. 저는 과거를 돌아볼 때 후회하거나 낙담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나면 오늘의 저는 생각하지 않죠. 그저 현재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라니, 멋지네요. 앞으로 펼쳐질 10년에서 가장 기대하는 점 하나를 꼽자면요?
이제 마흔도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네요. 하하. 30대를 바라보며 가장 기대되는 것은 제가 배우로서 더해갈 ‘깊이’예요. 깊이를 더할 방법이 무엇일지는 앞으로 차근차근 찾아가겠지만요. 20대의 목표가 주어진 상황에서 변함없이 잘 버티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후를 생각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관이 점차 변화하기 마련이잖아요. 그 변화의 속도에 발맞춰 연기에 깊이를 더해갈 제 모습이 가장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