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아도, 밤새워 고민해도, 수산시장에서 젊음을 쏟아부어도 가물거리기만 하던 꿈을 무대에서 찾은 박지현. <미스터트롯2>에 도전한 이후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블랙 롱 코트 Alexander McQueen, 실버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블랙 롱 코트, 팬츠, 슈즈 모두 Alexander McQueen, 시스루 이너 톱과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아요. 가수의 꿈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막연하게 갖고 있었어요. 당시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을 매우 좋아했어요. 원더걸스, 2PM, 비(Rain)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댄스 가수’라고 적을 정도로요. 부모님께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나요. 그때는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꿈은 취미로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죠.

연예인 하겠다고 하면 많은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죠.

현실적인 조언이죠. 막연히 가수를 꿈꾸던 중학생 때 저도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가수 하겠다는 생각은 접었죠.

가수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봤어요?

‘내가 저 무대에서 춤을 춘다면 참 멋지겠다.’ 이런 상상을 하면 항상 기분이 좋았어요.

주로 2PM의 춤을 따라 췄겠죠?

맞아요. 장우영 님과 이준호 님을 특히 좋아했어요. 사실 박진영(JYP) 님이 가장 좋았어요. JYP를 보며 제 취향이 형성된 것 같아요.

JYP에게 매료된 사연이 궁금하네요. 무대 위 모습에서 언뜻 그가 보이거든요.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음악에 심취한 모습이요. 무대에서 퍼포먼스 할 때 표정에서 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여요. 그리고 춤을 파격적으로 잘 추는데, 키 큰 사람들이 춤을 잘 춰 보이기 어렵다고 해요. 팔다리가 길면 빈 곳이 많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JYP는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원한 춤 선을 보여줘요. 그가 음악을 표현하고 즐기는 모습에 매료된 것 같아요.

가수의 꿈을 접은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나요? <미스터트롯2>에 출연하기 전까지 청년 박지현은 무얼 꿈꿨나요?

중학생 때 가수의 꿈을 접고 나니 부모님은 제게 중 국어 능력을 살려보라 권하셨어요. 어릴 때 중국에서 2년 동안 살아서 중국어는 조금 할 줄 알았거든요. 해양경찰공무원 중국어 특기자 특채가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해양경찰관이 제 진로라고 생각하며 군대를 해양경찰청 의무경찰로 갔는데, 실제로 배를 타며 그 직업을 조금 경험해보니 아주 멋지고 훌륭한 일이지만 제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목표를 잃고 공허감이 찾아왔겠군요.

네, 나중에 자녀를 갖게 된다면, 자식들이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제가 전역 후 미래에 대한 방향을 못 잡고 방황했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거든요. 갈피를 못 잡고 대학에 복학했어요. 학교에 다니면서 어머니 가게 일을 도왔죠. 어머니가 수산물 관련 일을 하셨는데, 작은 가게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하다 보니 자꾸 부딪치고 별거 아닌 일로 다투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구석에 앉아 있을 때면 제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죠.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스트라이프 재킷 Dolce & Gabbana.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블랙 레더 슬리브리스 재킷, 와이드 팬츠, 브레이슬릿 모두 Dolce & Gabbana.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미스터트롯2 박지현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 화보
블랙 수트, 슈즈 모두 Dior Men.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언제였어요?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꿈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보겠다 결심하고,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춤과 노래가 있더군요. 평생 후회할 바에야 시도라도 하고 관두기로 결심했죠. 제가 트로트를 부르면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PC방, 노래방, 당구장 등 장사를 하셔서 트로트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트로트를 잘 부르는 편이었죠. 그 이후 무작정 트로트에 도전했어요. 매일 연습하고, 여러 가요제와 방송에도 참가했고요. 결국 이렇게 성큼성큼 잘 올라와서 여기까 지 오게 됐죠.

트로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본인이 느끼기에는 어때요? 노래를 할수록 애정이 더 깊어지고 있나요?

트로트를 무척 좋아해요. 앞으로 1백 년이 지나도 변함 없이 사랑받을 장르라고 생각해요. 돌려 말하지 않는 매력이 있거든요. 가사에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 사랑을 비롯한 온갖 감정 등 삶이 담겼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좋아요. 소름 돋게 매력적일 때가 많죠. <미스터트롯 2>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 앞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팬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는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변한 제 모습에 팬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살도 찌지 않도록 하고요.(웃음) 그분들이 사랑해주는 모습으로 계속 남고 싶습니다.

성장한 환경은 아티스트에게 큰 영향을 끼쳐요. 고향 목포의 기후, 바다와 섬, 아름다운 자연과 특유의 정취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확실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특히 가을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군 생활을 할 때도 2년 동안 배를 타면서 자연과 가깝게 지냈고요. 목포는 그 자체로 특별해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감하며 자랐어요. 그곳의 자연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죠. 시인들이 왜 자연을 찾아가는지 알 것 같아요. 서울에서 살면서 산속 단독주택에 사는 꿈을 꿔요. 아침에 일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강아지들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럴 때면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목포에서 보낸 시간은 저를 감성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으로 키웠어요. 마트 이모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먼저 말을 걸기도 하죠. 사람 냄새 나는 걸 좋아해요. 어른들의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만약 도시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요?

제 꿈과 진로가 완전히 달랐을 것 같아요. 서울에선 주변의 누군가가 가수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목포 같은 작은 도시에선 그런 가능성이 더 적어요. 가수가 되는 꿈은 막연하고 불가능하게 느껴졌어요. 연예인은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마음을 빨리 접었고요. 목포에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절대 본인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꿈이 있다면 도전해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