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피식거리게 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비극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는 희극.
웃음이라는 귀한 가치를 나누는 호쾌한 여자들을 만났다.
우리의 일상을 빛내는 건 결국 웃음이니까.
엄 지 윤
여성 코미디언이 함께 코미디언 중 여성의 비율이 낮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코미디언을 꼽아달라고 했을 때 여성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지 않더라. 그중 한 명으로 이번 기획에 참여해 영광이다. 무엇보다 멋진 사람들과 함께해 즐거웠다.
처음 관객을 마주한 순간 코미디언 지망생이었을 때 <개그콘서트> 방청을 자주 다녔는데, 2018년 데뷔해 처음 무대에 서자마자 당시 앉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공간에서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으니 생경했고 책임감도 느꼈다. 사람들이 웃는지, 집중을 못 하는지 다 보이더라. 코미디언은 관객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웃음을 나누는 일의 기쁨 신인 시절엔 내공이 탄탄한 선배님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고, <개그콘서트> 폐지로 상황도 어려워졌다. 슬픔에 빠져 보낸 날이 많았는데, 이제는 쉽게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웃길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하고, 주변에 웃음을 주는 이들이 많아진 덕분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며 마음이 건강해졌다.
유튜브라는 무대 <개그콘서트>가 잠시 막을 내리면서 <숏박스>를 비롯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활발히 활동해왔다. 유튜브는 코미디언이 쉽게 도전할 수 있지만 그만큼 포기하기도 쉬운 플랫폼이다.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밀고 가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려 한다. 요즘 유행하는 숏폼 중심의 시리즈를 기획하거나,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시도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일상적 코미디 일상 속 이야기를 다루면 다른 분야의 지식이 없더라도 웃을 수 있는 지점이 많아진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에 스케치 코미디가 사랑받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대화를 오롯이 담아낸 콘텐츠를 선호하듯이, 코미디 콘텐츠를 볼 때도 작위적이지 않은 웃음을 원하는 듯하다. 과장을 더한 한 방으로 웃기기보다는 자연스레 웃게 하는 개그를 선보이고 싶다.
유머의 선순환 코미디언이 어떤 말을 했을 때 모든 사람이 웃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필요로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좋은 유머를 선보였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코미디의 수요와 공급이 딱 맞아떨어져 웃음이 스파크처럼 터지는 순간에 좋은 유머가 탄생한다고 본다. 나를 보고 한 명이 즐거워하면, 그 감정이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었다가 결국 내게로 돌아오더라. 웃음은 선순환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소탈하고 가볍게 최근 들어 유쾌함의 기준이 흐릿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웃음에 박한 것 같기도, 웃음에 대한 각자의 잣대가 높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웃음이 소탈하게 탁 터지고 금방 날아가는 가벼운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 삶에 필요한 웃음을 더 많이,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열린 마음으로 코미디 자체를 순수하게 즐긴다면 함께 웃는 시간이 많아질 거라 기대한다.
코미디언의 우정 코미디언 집단은 서로 돕는 데 큰 힘을 쏟는다. 호흡이 잘 맞아야 시너지 효과가 나니 본능적으로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후배들이 내 콘텐츠를 따라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좋은 선례를 남겨주고 싶다. 어떤 식으로 모사해도 괜찮다. 나도 웃겨서 배를 잡고 구를지도 모르겠다.(웃음)
박 세 미
코미디 안에 머물 수 있던 원동력 이전에 코미디 공채 시험에서 열 번이나 떨어졌다. 그런데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끼가 많아서 사람들 웃기는 걸 좋아했고, 어딜 가든 재미있는 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즐겁고 주변의 반응도 좋으니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웃음이 시작되는 곳 내 모든 경험.(웃음) 지금까지 했던 아르바이트 종류만 20가지가 넘을 정도로 일을 다양하게 많이 했다. 20대 때는 돈도 없고 매일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하니 슬프고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30대가 된 뒤에 깨달은 것이 있다. 의미 없는 경험은 없고, 결국 그 모든 것이 모여서 내가 된다는 것. 개그의 소재가 되든, 실생활에서 사용하든 어딘가에 써먹는다. 보고 겪은 것이 많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어지더라.
나누고 싶은 웃음 공감할 수 있거나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웃음. 내 개그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로부터 나와 비슷한 지점을 발견할 때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 또 유용한 물건을 소개하거나 꿀팁을 전달하는 것도 좋아한다. 무언가를 알려주면서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개그가 아닐까 싶다.
결국엔 플러스 웃음이든 정보든 무언가를 나눴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 친구에게 옷을 줬었는데, 오늘 그걸 입고 왔다는 거다. ‘세상에, 내가 선물한 걸 입었다고…?’ 그럼 나 진짜 눈 돌아간다. 흐하하. 무언가를 나누는 건 표면적으로 보면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플러스가 되더라. 나눠 주고 싶으니까 더 써보게 되고, 그럼 새로운 것이 내 안에 쌓이니까.
주의사항 캐릭터를 만들 때 그 인물이 호감과 비호감 사이를 넘나들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한다. 서준맘은 언뜻 보면 억척스럽고 진상 같아 보일 수 있는데, 마지막엔 늘 호감으로 느껴지도록 풀어낸다. 자칫 누군가에겐 혐오로 느껴질 수 있고, 아기 엄마를 비하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어 “이것 좀 더 주세요~ 깎아주세요~”라고 하다가도 깎아주면 자기가 공구하는 물건을 딱 꺼내서 선물로 주는 거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얼마나 좋아?’ 이런 느낌으로.(웃음)
요즘 가장 재미있는 것 의도한 것과 다른 반응을 보는 것. 서준맘 영상을 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울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거라는 생각을 단 0.001%도 안 했는데! 이렇게 의외의 반응을 만날 때 짜릿하다. 생각해보니 앞서 한 말과도 이어지는 듯하다. 생각하지 못한 반응은 새로운 경험이 되고,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하니까. 웃음도 나누면 또다시 돌아오고…. 세상에, 인생은 순환이다.(웃음)
여성 코미디언들은 농익을 나이, 30대쯤 되면 경험으로 쌓인 지혜가 야무진 성정과 만나 포텐을 터뜨리더라.(웃음) 여자 코미디언은 다들 잘하고 있어서 바랄 게 없고, 지금처럼 쭉쭉 가면 좋겠다. 간혹 롤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런 건 없다. 존경하는 선배님이야 수두룩하지만, 제2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 색깔대로 나아가고 싶다. 요즘은 서준 맘뿐만 아니라 박세미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도 많이 보여주려 하니, 모쪼록 기대해주시라. 흐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