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피식거리게 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비극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는 희극.
웃음이라는 귀한 가치를 나누는 호쾌한 여자들을 만났다.
우리의 일상을 빛내는 건 결국 웃음이니까.
이 수 지
나의 가능성 2008년과 2012년, 두 번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그사이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폐지를 경험했고, 시험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지닌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푸하하!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좋아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조용한 성격인 데도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까불고 싶은 본성이 나온다.(웃음) 하루에 몇 번씩 거울을 봐도 내가 예뻐 보일 만큼 자기애가 강한 편이라, 잘하고 있다 생각하며 꿈을 키웠다.
웃음이 시작되는 곳 ‘MZ 교포 제니’를 비롯해 내가 묘사한 캐릭터들은 대부분 공감에서 출발했다. 일상에서 마주하거나 SNS에서 본 이들을 유심히 관찰한 뒤 ‘그래, 이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겠구나’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거다. 이를테면 휴대폰 케이스에 얼굴이 덮은 채 통화하는 등 아주머니 연기의 9할은 엄마를 모방했고, 사우나를 하다가 친구가 된 60 ~70대 어르신들에게 영감을 받기도 했다. 이를 본 어린 시청자들이 “이모 닮았어요”, “할머니가 떠올라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하더라.
캐릭터의 이면 캐릭터를 묘사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모습이 배어나기도 한다. 현장이든 일상이든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내 캐릭터를 사랑스러워하며 긍정의 기운을 얻는 듯하다. 그게 내가 코미디언으로서 지닌 장점이 아닐까 싶다.
웃음의 힘 집안이 어려워져 순댓국집을 시작한 아버지가 내 코너를 보며 즐거워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따님, 소아암을 앓는 아들이 나를 자주 따라 한다며 영상까지 찍어 보내준 어머님이 생각난다. 나로 인해 잠시나마 웃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다시 열심히 일할 힘을 얻는다. 내게 닿은 사연에 마음이 동해 그들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 관객이 공감할 만한 개그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그들의 감정에 이입되기도 한다.
좋은 유머는 근본적으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고, 상처는 최대한 주지 않으려 하는 마음.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유머를 선보일 수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목표를 ‘긍정’과 ‘감사’로 정했다. 이를 어기면 매니저님에게 바로 질타를 받으려고 한다.(웃음)
웃음이 전파되며 상대와 데면데면하더라도 “이거 봤어?” 하며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면 대화의 물꼬가 터지기도 하지 않나. 코미디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줄 수 있는 장르다. 성별과 나이 등이 서로 다르더라도, 웃음을 통해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
코미디언의 기쁨 아이디어를 짜다 보면 혼자 빵 터질 때가 있다. ‘이거 진짜 웃기네!’ 싶은 거다. 이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웃음이 많은 편이라 무대 위에서도 참느라 곤욕을 치른다.(웃음) 특히 <SNL 코리아> 촬영할 때, ‘내가 더 많이 웃겨주겠다’는 욕심을 품은 크루들이 느닷없이 약속되지 않은 분장을 하고 나오더라. 마침 시즌 5가 3월부터 공개될 예정이니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
우리의 내일 코미디언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기와 음악 등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는 이들이 많다. 앞으로 코미디언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며 더 많은 웃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개봉한 코미디영화 <아네모네>를 통해 큰 웃음을 선사한 정이랑 선배님처럼!
신 기 루
하면 되겠다는 희망 지난해 데뷔 19년 만에 처음으로 SBS에서 여자 예능 신인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으로 “하고 싶었던 순간보다 관두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 정도로 안 풀리면 일을 그만둬야 했던 게 맞다.(웃음) 그런데 주변에 (박)나래 씨나 (장)도연 씨처럼 잘된 친구들이 많았다. 동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보단 하면 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일상을 웃음으로 “넌 일상 자체가 웃기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길을 지나가는데 주차 차단기가 나를 차로 인식해서 아래로 내려간 적이 있다.(웃음) 이건 누군가에겐 속상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에피소드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재미있게 느껴지더라. 부정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셈이다. 누군가를 웃기다 보니 내게 주어지는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별거 아닌 것에서 재미를 찾으려 하고.
이기지 않으려는 마음 처음에는 여럿이 모여 토크를 할 때 걱정이 많았다. 에너지가 넘쳐서 기세로 웃기는 사람도 아니고, 말도 덤덤하게 하는 편이니까. 만약 내가 ‘쟤보다 웃겨서 1등이 돼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이기려고 했으면 매 순간 졌을 테니까. 그 마음을 내려놓으면 져도 덜 진 것 같고, 비겨도 선방이더라. 그런데 요즘 그런 생각은 한다. 남은 이길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져야겠다고. 적어도 매일매일 나와의 경쟁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말만 이렇게 하지 쉬운 일은 아니지만.(웃음)
솔직하고 거침없이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니 어느 순간부터 걱정하고 조심하게 되더라.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그러니 나도 재미가 없고 스스로에게도 정이 떨어졌다. 이젠 ‘이렇게 하면 싫어하겠지’ 지레짐작하지 않고 그냥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억지로 쥐어짜내 웃기기보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만 툭툭 농담을 던지는 거다. 그럼 진짜 나에게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공감대가 더 생겨서 재미있어지더라.
코미디언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 저마다 힘듦이 있고 다 참으며 살아가겠지만, 코미디언은 혼자 참는 게 아니라 스스로도 웃고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 자신을 희생해서 웃음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웃음을 나누며 얻는 것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건 그냥 나를 위한 일이다. 직업이니까 돈 벌려고 하는 거지.(웃음) 그런데 나로 인해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힘들어도 멈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아픈데 (신기루의) 영상을 보는 하루 30분은 아프지 않다”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난 옆에서 누가 힘내라고 말해도 딱히 힘이 안 나고 가정이 있는데도 책임감이 없는 편이다.(웃음) 그런데 나 덕분에 즐겁다는 사람을 보면 그것만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다시 나아가려는 힘과 용기를 얻고.
요즘 가장 재미있는 것 지금의 내 삶.(웃음) 요즘 새벽 6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앞에서는 힘들다고 욕하지만 사실 행복하다. 신인상을 받거나 일주일 동안 10시간밖에 못 자는 건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예기치 않게 행복이 찾아올 때, 그때 가장 재미있다. SNS에도 이렇게 적었다. ‘행복이라는 건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데 그게 진짜 존나 짜릿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