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간극도 없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이.
배우 이제훈과 이동휘가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통해 함께 축적한 접점.

이동휘 재킷과 팬츠 모두 Prada, 네크리스 Swarovski,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동휘 셔츠와 안에 입은 티셔츠 모두 Lemaire.
<수사반장 1958>은 1971년부터 18년간 방영되었던 드라마 <수사반장>의 프리퀄입니다. 배우로서는 전작의 존재감이 엄청난 무게로 느껴졌을 것 같은데요.
이제훈 맞아요. 단순히 드라마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유산으로 남은 작품이니까요. 심지어 제 세대는 드라마를 보지 못했는데도 시그니처 사운드를 익숙하게 느끼고, 최불암 선배님 하면 누구나 <수사반장>의 ‘박 반장’을 떠올리잖아요. 종영한 지 30년 넘게 흘렀는데, 본 적 없는 세대까지 인지하는 드라마는 흔치 않으니 프리퀄에 참여하기로 한 이후부터 부담감이 엄청나죠.(웃음)
부담감이 분명하게 자리함에도 참여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이제훈 작품을 선택할 때 제가 시청자로서 보고 싶은지도 중요한 지점 중 하나예요. 그런 면에서 <수사반장 1958>은 제가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참여하는 부분이 커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성형 인물을 만나면 그의 시작은 어땠을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박 반장이 그런 인물 중 하나이지 않나 싶어요.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의 박 반장이 동료들과 어떤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수사반장>을 못 본 세대에는 흥미롭게, 기억하는 이들은 반갑게 느껴질 것 같았어요. 여러 세대가 같이 볼 수 있는, 희귀해서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고요.
이동휘 제가 맡은 ‘김상순’이라는 인물이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잘 해내고 싶은 캐릭터였어요. 전작 <카지노>를 통해 배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웃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정의만을 바라보고, 박영한이라는 인물에게 의리를 다하는 김상순이 되어보고 싶더라고요. 더군다나 박영한을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확신이 든 거죠. 부담감을 내려놓고 일단 가봐도 좋겠다는 확신이요.
오리지널 드라마의 분량이 워낙 방대해 이를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할지 공부하는 과정이 꽤 길었다고 들었어요. <수사반장>의 기조, 그래서 <수사반장 1958>에서도 이어가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동휘 드라마를 찾아 보면서 수집한 것도 많지만, 가장 큰 공부가 된 건 최불암 선배님과의 만남이었어요. 극 중이지만 범죄자를 대하면서 느낀 뜨거운 분노, 사건의 피해자에게 들은 안타까운 감정들에 대해 들려주셨는데 연기가 아니라 진짜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분노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 속으로 들어가 실제로 발현되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제훈 워낙 오래 이어지다 보니 간혹 <수사반장>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MBC에 찾아가서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대요. 그러면 그때마다 최불암 선배님께서 직접 만나서 얘기도 들어주고, 다독여주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믿고, 의지한 박 반장이라는 인물을 맡는다는 게 그저 연기만 잘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상기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보다 세심히 고심하면서 대사 하나도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 서로 의논하고 수정하면서 만들어가려 했어요.
불의에 맞서는 것이 박영한(이제훈)과 김상순(이동휘)의 목표라면, 이 작품 안에서 두 배우의 목표는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훈 ‘굳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이지 않을까요. 프리퀄 작품이 나왔을 때 참여한 사람으로서 가장 허무해지는 말이잖아요. 오리지널 드라마를 추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시간의 흐름과는 별개로 서로 잘 연결되어 존재하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커요.
이동휘 박영한과 김상순을 비롯해 ‘조경환’(최우성), ‘서호정’(윤현수)까지. 다들 집념이 엄청난 형사들이거든요. 이들의 열기가 느껴져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 ‘이 얘기 좀 뜨겁다’라고 느껴진다면, 지금의 걱정과 부담이 많이 덜어질 것 같아요.
그 뜨거움이 식지 않는다면, 오리지널 <수사반장>처럼 10년 넘게 한 작품을 이어갈 수도 있을까요?
이동휘 예전에 비슷한 상황을 가정해본 적이 있는데, 그땐 힘들 것 같았어요. 한 캐릭터를 계속 이어가는 건 어렵고 부담감이 크겠다 싶었는데, <수사 반장 1958>을 하면서 김상순 같은 인물이라면 도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10년은 장담 못 하겠네요.(웃음)
이제훈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래 하긴 하는데 ‘그 드라마 아직도 해?’ 하는 반응이면 너무 외롭잖아요.
이동휘 맞아요. 관심과 사랑이 전제 조건이죠. <수사반장>의 선배님들도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오래 이어갈 수 있었을 거예요.

이동휘 데님 재킷과 티셔츠 모두 Dior Men, 안경 grafik:plastic.



두 분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이죠?
이동휘 그간 다른 작품에서 짧게 스쳐 지나거나, 제훈이 형이 연출한 단편에 제가 나온 적은 있는데 이번처럼 길게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이에요.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음에도 작품을 같이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동휘 드라마 안에서 4명의 형사가 어딘가를 걸어가는 장면이 종종 나와요. 거기서 늘 앞장서는 사람은 제훈이 형이고, 그때마다 제 시선은 형의 뒷모습에 머무르죠. 보면서 엄청난 아우라, 힘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어요. 단순히 주인공이라 그런 게 아니라 ‘아, 내가 이 사람을 잘 따라만 가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달까요. 되게 든든해요.
이제훈 동휘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진짜 같은 연기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분명 드라마 속 인물인데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죠.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엄청난 것 같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팬심 고백의 장이 된 것 같은데요.(웃음)
이동휘 하하. 제가 진짜 팬이고 제훈이 형은 소속사 배우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마음일 거예요. 실은 꽤 오래전부터 형과 어떤 작업이든 같이 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드디어 꿈을 이룬 거죠. 이번에 동료 형사로 나오는 덕에 원 없이 붙어 있어요. 범죄자를 잡으러 늘 같이 다니거든요.
이제훈 진짜 촬영 스케줄이 거의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이 끝나면 엄청 허전하고 심심할 것 같아요. 이렇게 힘이 되어준 존재가 매일 옆에 딱 붙어 있었는데, 이제 누구한테 의지하면서 가야 하나 싶고요.
이동휘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제훈이 형 하는 작품은 다 따라다닐 겁니다. 한 작품만 하고 헤어질 수 없습니다.(웃음)


촬영 중간중간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도 느낀 점인데, 서로 접점이 꽤 많아 보여요.
이동휘 제훈이 형과 제 공통점이 영화를 아주 많이 보고, 영화나 연기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제훈 심지어 취향이나 관점도 비슷해요. 보통 ‘나는 그렇게 안 봤는데 넌 그렇게 봤어?’ 하며 이견이 생길 수도 있는데, 우리는 늘 ‘나도 그렇다’로 대화가 이어져요. 그래서 굳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해요.
이동휘 최근에도 영화 <가여운 것들> 보고 와서 신나서 얘기했더니, 형도 비슷한 감상이 든다는 거예요.
이제훈 <마스크 걸> 얘기하면서 안재홍 배우랑 염혜란 배우 연기 너무 좋다고도 했었지.
이동휘 형이 추천한 <더 베어>도 너무 좋아서 또 한참 그 얘기 했잖아요. 저는 이런 얘기 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형에게서도 그런 면이 보여요.
이제훈 촬영하지 않을 땐 영화랑 거리를 좀 두면서 자신을 비워두고 싶어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저랑 동휘는 끊임없이 좋은 걸 보고 싶어 하고 그걸 토대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쪽인 것 같아요. 아마 연기를 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삶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게 저희의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닌가 싶어요.
괜한 질문인 것 같지만… 의견이 안 맞았던, 간극이 생기는 순간은 없었나요?
이동휘 진짜 없어요. 왜냐하면 형이 다 맞는 소리를 하시니까.(웃음) 사실 완벽히 다 들어 맞는다기보다 형이 받아들이는 범주가 워낙 넓어요. 거기에 저는 작은 조각으로 들어가 있는 거죠. 큰 원 안에 저는 작은 원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웃음)
이렇게 여지없이 수긍하고 신뢰하게 되는 관계는 흔치 않은데요. 어떻게 발현된 마음인지 궁금해요.
이동휘 형이 집념이 되게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생각을 구체화하고 결국 실현해내거든요. 말로만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실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후배로서 믿고 따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훈 아유, 부끄럽네요. 더 부끄러워질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웃음)
이동휘 저는 하루 종일도 얘기 할 수 있어요. 얘기를 더 하고 싶어서라도 형이랑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