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연극 <클로저> 안팎에서 배우 안소희가 그리는 사랑의 모양.


연극 <클로저> 공연이 한창이죠. 요즘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 4월 말부터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어서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제가 참여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도 곧 개봉할 예정이라 설레는 마음을 품고 있고요.
<클로저>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했어요. 첫 공연의 막이 오른 뒤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진짜 재미있다!(웃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어요. 함께 공연하는 배우분들도 제가 재미있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고 해요. 사실 무대 위에서는 실수를 만회해야 하거나 애드리브가 필요한 순간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상황에 매끄럽게 대처하기 위해선 준비해둔 것이 있어야 하거든요. 나의 노력과 예상치 못한 순간이 만나서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역시 무대 체질인가 봐요.(웃음)
가수 활동을 할 때도 무대에 서서 관객과 호흡하는 걸 참 좋아했어요.(웃음)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확실히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주어진 순간 과 배역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요. 오래전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는데 <클로저>가 제게 와줘서 감사해요.
<클로저>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궁금해요. 작품의 어떤 점이 안소희 배우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가장 큰 건 사랑을 다룬다는 점이에요. 이전에 사랑을 중심으로 한 작품에 참여한 적이 없었거든요. <클로저>는 제가 맡은 앨리스를 포함해 댄, 안나, 래리까지 네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작품이에요. 한 사람의 입장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클로저>도 인상 깊게 봤고요. 영화가 나온 당시엔 제가 어렸지만, 이젠 사랑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표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느끼거든요.


<클로저>에서 투명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비밀스러운 면을 지닌 ‘앨리스’를 연기하고 있어요.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무엇이에요?
음… 아픔이요. 앨리스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 결핍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고, 앨리스를 둘러싼 것 중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어요. 그 모호함이 앨리스의 매력이라고 느껴요.
실체를 알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결핍이 명확히 드러나는 인물이라면 오히려 연기하기 수월할 수 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연출님이나 다른 배우들과 깊이 대화하며 앨리스에 대해 가정을 했어요. 자라온 환경에서 결핍이 있었을 텐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식으로요. 명확하게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인물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보는 데 도움이 됐죠.
함께하는 동료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은 어땠어요?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움도 있었을 듯한데요.
드라마나 영화는 각자 준비한 뒤 리허설을 하는데,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함께한다는 점에서 새로워요. 특히 연극은 준비 과정에서 참여 하는 사람이 모두 모여 작품에 대해 의논하는, 이른바 테이블 작업을 하거든요. 다 함께 앉아 작품의 주제와 내용, 장면이나 대사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들여다 보며 의견을 나누는데, 저희는 그 작업을 2주 동안 했어요. 다른 연극에 비해 꽤 긴 기간이었다고 해요.
사랑을 주제로 끊임없이 토론한 셈이네요. 그 시간을 거쳐 무엇을 배웠나요?
우선 집단 지성의 힘을 크게 느꼈어요.(웃음)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이니 한 사람의 생각 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지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의견, 사랑에 대한 개 인적인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공유했죠. 그 덕에 앨리스뿐 아니라 다른 인물의 입장과 감정에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극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랑에 관해 더 넓고 깊게 사유할 수 있었던 듯하고요.

사랑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지점도 있어요?
아무리 끈질기게 파고들고 고민해 봐도 사랑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요. 어떤 날은 댄처럼 거짓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정답인가 싶다가도, 다른 날에는 앨리스처럼 그저 뜨겁게 행동하는 게 사랑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정답은 없다. 어쩌면 그게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연습하거나 공연하다 보면 매일 마음에 남는 대사가 달라요. 오늘은 이 문장이 꽂히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싶고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랑은 복잡하고 다면적이구나 하고 깨달아요. 어떤 태도나 마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고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안소희 배우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편인가요?
제 사람들에게 큰 힘을 얻지만, 동시에 내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기보다는 타인에게서 힘을 얻어 내 심지를 굳건히 하는 편이에요.
이때 말하는 내 사람들에는 누가 포함되나요?
가족, 친구, 함께 일하는 식구들, 그리고 팬들이요. 사실 팬들과 저는 가족이나 친구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 관계가 아닐 수 있음에도 저의 여러 면을 지켜보고 무한한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요.

영상 콘텐츠를 촬영할 때도 느꼈는데, 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져요.
고맙고 애틋한 감정이 한 번에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진심이거든요.(웃음) 늘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요. 팬들이 제게 커다란 애정을 주는 것처럼, 저도 당신을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요. 결국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드러내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갇히지 않고 정체되어 있지 않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오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배우 안소희는 연극 <클로저>와 여러 관계의 안팎에서 꾸준히 확장되고 있구나 싶어요.
여전히 노력 중이에요.(웃음) 연극이 재미있지만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 있거든요. 그럴 때면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 시키는 일임을 상기해요. 제가 언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며 팬들과 소통할 수 있겠어요. 결국 내가 더 넓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이라 믿고 또 되새기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연극 <클로저>가 배우 안소희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연극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시작한 건 아니라서 뚜렷한 지향점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저에게도 도전인지라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해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고요. 많이 듣고 또 생각하며 작품이 끝난 뒤에도 안소희의 앨리스를 만들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