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에서 태어나는 희열을 기다리며, 진심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배우 엄태구는 또 다른 얼굴이 된다.



영화 <와일드 씽>이 6월 3일부터 관객을 만나죠.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갑자기 해체된 3인조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재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라고요. 개봉에 앞서 공개되는 콘텐츠마다 반응이 뜨겁습니다.
예…(웃음) 사실 저한테는 사진과 뮤직비디오 등에 담긴 제 모습이 낯설지 않아요. 공개되기 전에 미리 보기도 했고, 현장에서 더 과감한 표현들을 했거든요. 블라인드 시사회를 할 땐 식은땀이 좀 나긴 했습니다. 떨리면서도 설레는 기분을 느끼면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와일드 씽>에서 팀의 막내이자 래퍼인 ‘상구’ 역을 맡았죠. 랩을 하고 춤추는 엄태구 배우라니, 새삼 귀하게 여겨집니다.
귀한 것까진 아닌 듯하고…(웃음) 팬들이 좋아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영화가 작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질문부터 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떤 결심을 하고 <와일드 씽>에 함께한 건가요?
일단 소재와 시나리오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약간 자신은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에는 늘 두려움이 따르는 것 같아요. 상구가 저와 꽤 다른 캐릭터거든요. 제가 가진 ‘내향인’ 이미지와는 상반되지만, 그를 연기할 기회가 저에게 왔다는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했어요.
배우가 뜻밖의 캐릭터를 소화해낼 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죠.
손재곤 감독님도 그 재미를 기대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한데 요즘은 제가 그렇게까지 내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하. 예능에 익숙해지고 이런저런 촬영을 하다 보니 조금씩 바뀐 듯해요. (MBTI상) E와 I의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랩을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요? 수개월간 ‘아이돌 체험’에 가까운 연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랩을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었어요. 군 복무 시절에 부대 노래방에서 랩을 대사처럼 외워서 따라 해본 적도 있고요.(웃음) 이번에 정식으로 배워봤는데 선생님이 저한테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해주셔서 그런지 신나게 익힐 수 있었어요. 연습 영상을 보니 처음에는 고개도 못 들던 제가 어느새 제스처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녹음 부스에서 나오면 랩이 선뜻 나오지 않는 거예요.(웃음) 조용히 있다가 카메라 앞에서만 몰입한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한 팀으로 활약하는 강동원, 박지현 배우도 예상치 못한 실력을 보여줄 거라 짐작됩니다. 강동원 배우와는 영화 <가려진 시간> 이후 또 한 번 호흡을 맞췄어요.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강동원 선배님을 다시 뵙게 되어 일단 반가웠습니다. 첫 만남 때처럼 좀 떨렸고요.(웃음) 선배님의 출연이 제가 <와일드 씽>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선배님이 ‘댄스 머신’인 ‘현우’ 역을 맡고, 제가 옆에서 랩을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배님이 춤추는 모습을 잠깐씩 봤는데, 몸을 아끼지 않고 너무나 열정적으로 임하시는 거예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배우들과 이번 작품을 만들어가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요?
방송국에서 찍은 장면이 있어요. 촬영 전날 리허설을 하러 동원 선배님, 지현 씨랑 무대에 올라가봤습니 다. 실제 음악 방송 카메라와 스태프들을 앞에 두고, 조명 아래에 서 있으니까 기분이 되게… 묘했어요. 셋이서 연습해온 퍼포먼스를 처음 선보이려니 쑥스러우면서도 긴장되고, 잘하고 싶더라고요. ‘가수로 데뷔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복합적인 감정을 잠시나마 직접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장르가 코미디이니 현장 분위기도 유쾌했을 듯한데 어땠나요?
음… 오히려 진지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 코미디가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서로 상의해야 할 것도 무척 많았어요.
<와일드 씽>의 손재곤 감독님은 <해치지않아>를 비롯한 코미디영화를 주로 선보인 분이죠. 그만큼 감독님과 특히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요즘 감독님이 “태구 씨 어때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수다쟁이”라고 답하신대요.(웃음) 이 영화의 선장은 감독님이니까 자주 여쭤보게 되더라고요. “이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건 어떠세요?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엄청 했습니다. 작품 얘기를 할 때면 말이 진짜 많아진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다 같이 고심하며 완성해낸 이번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나요?
마음 편히 웃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물론 관객마다 취향 차이가 있을 테니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에게는 (비운의 발라드 왕자 ‘성곤’ 역을 맡은) 오정세 선배님이 있습니다. 하하하!

링 Tom Wood,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 Tom Wood,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벨트 Taille, 네크리스 Damiani.
기대하겠습니다.(웃음)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게 코미디의 미덕이 아닐까 싶어요.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크게 웃을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저도 언제 크게 웃었는지 돌아봤는데, 바로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한창 촬영 중인 차기작에서 함께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재미있고 좋아 보여서 막 웃었던 게 제일 먼저 생각나고요. 그리고 또… 지금 여기서도 많이 웃고 있습니다. (기자님도) 많이 웃으시네요. 일상에서 자주 웃다 보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잘 가꿀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변까지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현장에 있을 때 좀 더 웃으면서 일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요.
한 콘텐츠에서 박지현 배우가 엄태구 배우에 대해 “(촬영 현장에서) 웃기시고 장난도 많이 치신다”고 말한 게 떠오르네요. <와일드 씽>은 엄태구 배우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작품이기도 하죠.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영화 <낙원의 밤>은 OTT를 통해 공개됐고, 최근에는 드라마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극장 개봉을 한 주연작이 <판소리 복서> 이후 7년 만이더라고요. 시사회에 부모님과 지인들을 초대하고, 어둑한 영화관에서 다 같이 작품을 보는 경험을 오랜만에 하겠죠.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함께한 경험 중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아주 많죠. 오래전에 (엄태화) 형이랑 <터미네이터>를 본 기억,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를 직접 만들어보고 제 얼굴을 스크린에서 처음 마주한 순간, 형이 연출하고 제가 주연한 <숲>이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은 일. 그 외에도 영화와 관련한 경험을 나이대별로 다양하게 해왔어요. 그게 제 안에 쌓이면서 연기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맡은 캐릭터들은 결국 저의 몸을 통해 표현되니까요.
그동안 배우로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탐구하고 표현해왔죠. 그 과정을 거치며 본인에게 생긴 변화가 있나요?
제 주변을 다큐멘터리 보듯이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스쳐 지나가는 분도, 저 멀리 보이는 분도 전부 주인공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살아가다 보면 자칫 나 자신만 주인공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헤아리고 싶어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죠.
모두가 그 시선을 가진다면, 세상이 한층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렇죠. 일단 저부터 더 노력해야겠습니다.(웃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세상을 마주한다면 좋겠어요.
이전 인터뷰들을 살펴보니 작품 안에서도, 평상시에도 진정성을 중시한다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진실된 마음의 힘을 실감하고 있나요?
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힘인 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실감해요. 연기할 때도, 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을 보면서도 진심의 힘을 느낍니다. 그 힘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 노력이 느껴집니다.(웃음) 그렇게 배우로서 충실히 보낸 시간이 어느덧 20년에 이르죠. 그동안 ‘연기란 정답이 없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는데, 그럼에도 꿋꿋이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해야 하니까 어찌 됐건 계속 부딪혀보는 것 같아요. 하기로 한 작품과 캐릭터가 있고, 촬영 날짜도 정해져 있으니까 확신이 없더라도 노력을 다하는 거죠. 그런데 아무리 철저히 노력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준비됐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더라고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준비한 연기가 어떻게 나올지는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사실도 더 많이 확인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항상 안고 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긴장감에 압도되거나 지배당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는 긴장감을 보다 건설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요?
물론 마음 같아서는 이 일을 좀 더 편안하게 즐기면서 하고 싶죠. 그런데 긴장되지 않으면 그 또한 불안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긴장감이 좋든 싫든 그저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날의 장면들에서 해내야 할 것들에 더더욱 집중하면서요. 돌이켜보면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배우로서 지나온 매 순간, 모 든 시기를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낼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러한 마음으로 배우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준비한 연기가 잘 나왔을 때. 어쩌다 한 번씩 준비한 것보다 잘 나올 때면 말할 수 없이 기뻐요. 마치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은 듯한, 그만큼 큰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입니다.

벨트 Taille, 장갑 Berluti, 레이어드한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카프 Berluti, 링 Damia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