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낯설게, 꾸준히 새롭게.
궤도를 벗어난 실리카겔이 펼쳐낼 생경한 세계.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얼마 전 싱글 ‘Molecular Gastronomy’를 공개했고, 한 달 후에는 정규 3집 <Ballad of You>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번 앨범의 여정이 지금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나요?

춘추 거의 다 완성됐어요. 이번엔 좀 일찍 시작해봤거든요. 2월에 녹음했고, 6월 초쯤 전체 작업을 마친 다음 디테일한 부분들을 맞춰가는 중이에요. 인터뷰를 비롯한 프로모션을 다양하게 하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고요.
한주 발매일이 8월 20일인데 마침 ‘NO PAIN’, ‘Tik Tak Tok’, ‘Desert Eagle’ 등 큰 사랑을 받은 곡들이 다 8월에 나왔거든요. 감회가 남다릅니다.

정규 앨범은 3년 만이죠. 정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을 것 같아요.

건재 확실히 있죠. 정규 앨범은 그 시기의 상태를 정리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지금은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는 생각들이 담기는 거죠.
한주 이번 수록곡들이 역대 곡 작업 중 가장 부담이 컸어요.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고, 최근 회사 직원을 비롯한 동료들이 많이 바뀌기도 해서 실리카겔이 여러모로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는 게 체감됐거든요.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성에 대해 고심하면서 3집을 만들어갔어요.

‘Molecular Gastronomy’가 “새 정규 앨범에서 선보일 변화의 흐름을 드러낸 곡”이라고요.

한주 여러 측면의 변화가 있어요. 우선 음악적 변화는 각자 듣고 해석해준다면 좋을 것 같고요. 음악을 꾸며주는 이야기적 요소에서는 이전에 전개했던 무겁고 장황한 서사를 많이 걷어냈어요. 서사보다는 특정한 개념에 집중해서 직관적으로 풀어내려 했죠. 요즘 우리 안에서 떠도는 단어들을 엿볼 수 있는 가사를 더하거나, 비디오를 만드는 식의 작업들을 했어요. 그게 변화된 실리카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계기가 있나요?

건재 ‘변해야 해!’ 하고 넷이서 결의를 다진 건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매번 변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고요. 각자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이 작업에 반영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의 느낌을 내는 듯해요.
춘추 작업이나 연주를 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서 생기는 피드백이 녹아서 나오는 결과물이 다음 곡 또는 앨범이라고 봐요. 스스로 되새김질하면서 더 나은 버전의 실리카겔을 만들어내는 거죠. 이 지점을 어떻 게 하면 흥미롭게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변화라는 테마가 떠오른 것 같아요.
건재 그러니까 변화는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생기는 부산물인 거죠. 그 안에서 나온 고민의 파편들을 정돈한 결과물이 3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파편들을 정돈하기 시작할 때, 무엇이 앨범의 씨앗이 되어주었나요?

한주 큰 영감이 되어준 작품 중 하나가 일본 만화가인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예요. 윤회와 순환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이죠. 그런데 음악도 반복이나 수미상관 구조를 띠는 경우가 있고, 삶의 근본적인 원리에도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3집의 시발점입니다.
웅희 이 영감에 음악적인 살을 붙여나갈 때, 스토리나 비디오도 함께 신경 썼어요. ‘이토록 재미있는 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야 사람들이 한 술이라도 더 뜰까?’라는 고민을 요즘 많이 합니다.
춘추 웅희가 실리카겔 뮤직비디오의 감독을 맡은 적이 몇 번 있거든요. 또 비디오를 직접 만들어낼지 모르겠네요.
웅희 나올까, 안 나올까?(웃음) 끝날 때까진 모르는 일이죠.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사운드에 있어서는 어떤 고민을 오래 붙들고 있었나요?

건재 드러머로서 ‘인간적인 연주’에 대해 더 열심히 생각했어요. 저의 두 팔, 두 다리만으로 해내는 연주요. 예전에 APEX 녹음을 할 때 심벌을 8~9장씩 쓸 정도로 악기를 과장되게 활용한 적도 있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드럼 본연의 역할을 하는 애들만 들이려고 했어요. 연주가 불완전하더라도, 그게 주는 에너지가 있다면 “이것도 좋다”고 얘기하기도 했고요.
춘추 3집을 준비하면서 4명이 공통적으로 원한 게 ‘라이브 환경이 연상되는 음악’이었어요. 그걸 음원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주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고요. 다 같이 연주하는 트랙을 최대한 받아서 쓰고, 더빙 트랙은 덜어내보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콰르텟의 앙상블에 좀 더 집중되는 것 같더라고요. 각 악기 연주의 포인트가 좀 더 명확하게 들리면서 미니멀한 느낌도 많이 생긴 듯하고요.

음원을 완성한 뒤 라이브 방식을 고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이브를 먼저 염두에 둔 거네요.

춘추 팀마다 다를 텐데, 실리카겔 음악은 라이브를 고려하면서 만들 수밖에 없어요. 음원이 나오면, 언젠가 그 곡을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서 선보이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곡을 써나갈 때부터 ‘여기서는 건재가 드럼을 이렇게 치겠지’ 같은 생각들을 많이 해요. 각 멤버의 연주 특징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아니까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최근 인터뷰들을 통해 ‘이전보다 연주가 강조된 라이브감 있는 음악’, ‘성숙한 연주와 라이브 앙상블’에 대해 말한 게 떠오르네요. 이를 위해 특히 중시한 것이 있다면요?

춘추 저는 ‘스테이지 플롯’, 우리 팀이 무대에서 모여 있는 형태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물론 무대미술을 비롯한 여러 요소의 영향이 있겠지만, 널찍한 공간을 어떻게 쓸지는 아티스트의 선택에 달린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밴드 연주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의 ‘인터랙션(interaction)’이 필요하잖아요. 멤버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그게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이번 앨범은 라이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우리 연주를 더욱 쫀득하게 응축시킬 수 있는 거리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건재 음악에도 언어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공연할 때 멤버들과 대화하듯이 연주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한주와 춘추의 보컬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모니터 방식을 바꾸는 등의 사소한 노력도 했고요. 무대 안에서 대화가 잘되면, 무대 바깥에 있는 관객과의 대화도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실리카겔이 지향하는 앙상블, ‘이상적인 조화’란 어떤 형태인가요?

한주 공연하다 보면 멤버들이 함께 뜨거워지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있어요. 우리의 표정이나 몸짓만 봐도 느껴질 거예요. ‘아, 얘네가 지금 진심으로 인투(into) 하고 있구나.’ 우리의 몰입이 딴딴하게 보이고,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도 실리카겔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가 되는 것. 그것까지가 이상적인 조화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도, 3집과 관련한 여러 단서들도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음악 안에서, 나아가 삶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주 브라이언 이노의 책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예술 활동은 다름에 대한 추구이고, 그 추구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 온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움을 찾기보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그게 제가 음악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산소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듯이, 새로움 또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 새로움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건재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새로움을 한 방울 넣으면, 24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 안에 새로운 것들을 조금씩 넣으려고 합니다.
춘추 새로움이 자아내는 두근거림이 있잖아요. 신메뉴나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앱을 업데이트를 할 때조차 마음이 약간 꿈틀거리죠. 그때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인지하면서 원초적인 행복을 느끼게 되는 듯해요. 그래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건 본능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도 해요.
웅희 하지만 새로워지는 건 힘든 일이죠. 웬만하면 침대에 누워 있고 싶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새롭지 않으면 냄새 나는 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잖아요. ‘다가오는 새로움을 피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합니다.
춘추 그 물속에서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나고.
웅희 장구벌레처럼.

예전 인터뷰 중 웅희 씨가 새로움에 대해 한 말이 있어요. “외부보다 내부에서 창출되는 새로움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자는 맥락이었는데, 그래서 더 묻고 싶습니다. 5년 전 공개한 트랙 ‘S G T A P E – 01’의 한 구간이 이번 싱글 ‘Molecular Gastronomy’ 와 맞닿아 있다는 추측이 사실인가요?

한주 잘못된 정보입니다. 그 정보가 회사 SNS에 올라갔고, 심지어 실리카겔 공식 SNS도 스토리에 퍼갔고.(웃음)
웅희 회사조차 몰랐어.
춘추 새롭네.
한주 ‘진작 말할걸’이라고 생각했어.
건재 이런 게 재미있기도 하지.
웅희 하지만 이 반전의 반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웃음)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3집뿐 아니라 9월 말 서울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아시아 투어의 제목에도 ‘Ballad of You’라는 표현을 썼어요. 실리카겔과 발라드의 조합이 생경하게 다가와요.

웅희 한주가 지은 제목인데, 멤버 모두 한 번에 오케이 했어요.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발라드 하면 흔히 느린 템포의 감성적인 노래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연주자 입장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발라드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관점으로 접근하면, ‘Ballad of You’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맞게 해석했나요?
한주 네 해석이 오피셜이잖아.(웃음)

오피셜로 해도 되는 건가요?(웃음)

한주 그럼요.
웅희 관객들도 실리카겔의 ‘너를 위한 발라드’가 무엇인지 직접 들어보기를 바라요. 그런데 의미를 차치하고도, 일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라 좋더라고요. ‘저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한 번씩 찾아 듣게 될 테니까요.
춘추 저도 웅희랑 비슷한 이유로 좋았어요. 발라드라는 단어 자체보다 그 단어가 만들어내는 큰 대비감이 실리카겔이 새롭게 이야기할 ‘썸띵’들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건재 전 제목의 의미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단순하게 ‘실리카겔이 실리카겔을 기린다’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한주 이렇듯 분분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유시적인 제목이라 좋습니다.

이번 공연의 소개 글을 읽어보니 ‘새로운 정신’, ‘초진심’ 같은 단어가 눈에 띄더라고요. 결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건재 9월 26일과 27일, KSPO DOME으로 와주세요.
한주 많이 찾아와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신곡들을 라이브로 쭉 공개할 예정이고,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지는 공연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에요.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관객이 한 명이던 시절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록 밴드가 한국 음악계의 상징적인 공간에서 공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이 팀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재미이지 않을까 싶어요.
춘추 콘서트 형태의 공연은 매번 변화의 구심점이 되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도 최근 실리카겔 무대의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더 나아가 서울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예정이니 실리카겔의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공연은 물론,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비주얼 작업도 실리카겔의 음악을 더욱 깊이 즐기게 하죠. 우리 음악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구현하며 청각적 경험을 확장해갈 때 따르는 원칙이 있나요?

한주 원칙이 뚜렷하진 않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원칙일 수도 있는데요. 일단 여러 문화를 ‘짬뽕’하는 걸 좋아해요. 특정 시대의 인터넷 문화, 고전 미술,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시각적 소스 등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두고 멤버 모두 디깅을 많이 해요. 각 작업에 어울리는 조력자 섭외도 중요할 테니 특정 분야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사람부터 신예까지 두루 살펴보고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형태로 섞어내는 비주얼 작업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실리카겔의 작업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한주 재미있는 해석이 진짜, 진짜 많아요.
웅희 일부러 다양한 해석을 의도한 적도 있는데, 난장판이 된 거예요.(웃음) 그런데 그 상황이 되게 좋더라고요. 우리도 재미있고, 팬들도 서로 다른 해석을 접하면서 재미있어하고.
한주 그 와중에 분명히 틀린 정보를 맞다고 보는 해석도 간혹 있었어요. 이를테면 ‘최웅희 씨는 키가 143cm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본인이 말했어요’ 같은 내용을 공식화하는 거죠. 거기서 소름이 좀 돋았습니다.
웅희 가끔은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품으면서 온전히 맡겨버리는 게 우리가 하려던 행위였어요.
건재 답을 내줘야 하는 작업은 아니니까 교수님처럼 하나하나 교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창작자로서 의도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나요?

건재 눈을 감고 눈앞의 코끼리를 만진다고 치면 누구는 다리를, 누구는 발톱을, 누구는 코를 만질 거잖아요. 그러면 표현하는 바도 제각각일 텐데, 코끼리라는 대상 자체에 대해서는 비슷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겠죠. 우리 작업에 대한 해석도 그래서 흥미로워요.
춘추 건재 말처럼, 저도 의미가 뾰족하기보다 흐릿하고 뭉글뭉글한 작품들에 더 큰 매력을 느껴왔어요. 작품은 어떤 인상만 남기고, 그 인상에 저마다의 경험이 묻히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게 가장 좋은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해요. 또 창작자 입장에서는 작품의 의도가 어느 정도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해요. 다양한 해석을 접하다 보면 느껴지거든요. ‘내가 작업하면서 생각한 지점을 각자 조금씩 읽어내고 있구나.’ 그만큼만 되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전달이 아닐까 싶어요.

작업물의 의도를 명확히 꽂기보다 넓게 흩뿌려놓는 듯한 느낌이네요.

한주 쉽게 얘기하면 그렇죠. 전반적으로는 그런 기조로 임해왔는데, 무대는 달라요. 예를 들어 우리가 준비한 공연의 ‘와우 포인트’가 있는데 관객의 호응이 미적지근하면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연에 한해서는 특정한 해석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의도와 일치되도록.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남들이 오답이라 여겨도 나는 정답이라고 우길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작업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믿거든요. 마치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자기 작품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그때그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련다’ 하는 태도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한주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음악에도 언어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공연할 때 멤버들과 대화하듯이 연주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한주와 춘추의 보컬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모니터 방식을 바꾸는 등의 사소한 노력도 했고요. 무대 안에서 대화가 잘되면, 무대 바깥에 있는 관객과의 대화도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건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음악의 또 다른 장점은 모두가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제시해줄 수 있어요. 다른 취향, 다른 삶도 있다는 걸 동시대나 후대에 전파할 수 있는 일종의 저장 매체인 거예요.”

최웅희
실리카겔 SilicaGel Ballad of You Molecular Gastronomy 밴드 음악 김한주 김춘추 김건재 최웅희

“작품은 어떤 인상만 남기고, 그 인상에 저마다의 경험이 묻히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게 가장 좋은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해요. 또 창작자 입장에서는 작품의 의도가 어느 정도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해요. 다양한 해석을 접하다 보면 느껴지거든요. ‘내가 작업하면서 생각한 지점을 각자 조금씩 읽어내고 있구나.’ 그만큼만 되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전달이 아닐까 싶어요.”

김춘추

실리카겔이 여러 작업물을 통해 선보여온 음악적 시도의 기반에는 무수하고 다양한 실험이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팀이 선호하는 음악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떤가요?

춘추 전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신중해졌어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결정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 순간부터 확신 속에 매몰될 수 있다는 데에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경계심을 함께 가져가면서 다양한 작품을 접하려 하고, 협업도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 싶어요.
웅희 이번 싱글도, 곧 나올 정규 앨범도 저는 정말 좋거든요. 좋아하니까 냈겠죠. 그런데 이 음악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엄청 걱정해요. 첫 음원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어요.
한주 ‘우리가 만든 음악이 좋다’는 확신은 제게도 있는데, 반응을 걱정하진 않아요. 남들이 오답이라 여겨도 나는 정답이라고 우길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작업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믿거든요. 마치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자기 작품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그때그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련다’ 하는 태도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마음을 모아 함께 만들어낸 실리카겔의 음악이 세상에 어떤 형태로 남기를 바라나요?

춘추 예전에 기타 메고 택시를 타면 “그거 기타예요?” 하면서 말을 걸어오는 기사님들이 있었어요. “나는 한때 그 곡 들었는데. 딥퍼플의 ‘Highway Star’ 알아요?” 같은 얘기를 꺼내시면서요. 언젠가 실리카겔도 기사님들의 라인업에 자리하고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도 밴드부 했었는데. 혹시 실리카겔이라고 알아요? ‘NO PAIN’ 들어봤나?”
한주 “모르는데요?”
춘추 그렇다면 시대에 동떨어진…(웃음) 아무튼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곡을 남길 수 있기를 바라요.
건재 사람들이 화가 이중섭의 얼굴은 모르더라도 그분이 그린 ‘황소’는 알잖아요. 우리 음악도 그렇게 남아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실리카겔이 믿는 음악의 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건재
음악은 기쁜 상황을 더 좋게, 슬픈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기분을 바꿔주는 거죠. 그게 하나의 세계가 바뀌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춘추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흐의 클라비아 협주곡 같은 클래식을 듣곤 하는데, 그러면 기분이 되게 좋아지더라고요. 몇 백 년 전의 곡이 현대에도 많이 연주되고 감상되면서 새롭게 좋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럴 때 음악은 오래도록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어요.
웅희 음악의 또 다른 장점은 모두가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제시해줄 수 있어요. 다른 취향, 다른 삶도 있다는 걸 동시대나 후대에 전파할 수 있는 일종의 저장 매체인 거예요. 그리고 사실 음악을 들어서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습니다. 개이득이죠.
한주 제 생각에도 멤버들의 얘기가 포함되어 있고요. 음악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은 다양하잖아요. 우리처럼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뮤지션,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찾아 듣는 수집가, 매번 공연을 찾아오는 관객들. 그렇게 살아가는 모두가 아마 본인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껴봤을 거예요. 일상이 달라질 수도, 삶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겠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사람이 변화한다는 게 굉장히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영적인 영역까지 닿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만큼 음악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