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벚꽃동산 최희서
LOEWE, 스커트 Sun Woo.

최희서

강현숙 송도영이 입양한 첫딸

뉴욕으로 향하며
<벚꽃동산> 준비 초반에 해외 투어를 생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는 먼 얘기 같았는데 홍콩, 싱가포르, 호주를 거쳐 뉴욕 공연이 확정되니 꿈을 한 단계씩 이뤄가는 듯하다. 뉴욕 무대에서도 순간순간 살아 있으며 이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의 팀워크
현숙이 바닥에 드러눕는 장면을 앞두고 소품으로 준비한 소주병이 깨진 적이 있다. 이를 지켜보던 배우들이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해나(이지혜)가 빗자루로 집 앞을 쓸면서 자연스럽게 치우자는 작전을 짰다. 상황을 모르던 나는 그게 즉흥 연기인 줄 알고 “왜 나왔어?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다.(웃음) 그 때문에 지혜 배우가 유리 조각을 못 치웠지만, 다행히 내가 눕는 자리와 조금 떨어져 있어 무탈히 이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무대에서 서로에게 집중하다 보니, 우리가 하나의 큰 생명체를 이뤄 계속 진화한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식 각색의 여정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관객에게 가닿는 지점이 있는 작품이 ‘클래식’이라고 본다. 체호프가 1900년대 초반에 쓴 원작이 지금껏 수많은 무대에 펼쳐진 것도 보편성을 지닌 이야기의 힘 덕분일 거다. 우리 연극도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 구조를 비롯한 큰 뼈대는 원작과 동일하니 ‘이 공연이 과연 해외에서 통할까?’ 하는 의심은 들지 않는다. 다만 다수의 한국 배우가 해외 무대에서 비언어 공연이 아닌 한국어 연극을 선보인다는 점은 특별하게 다가갈 듯하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마음
현숙은 무너져가는 집안에서 경제적, 정서적 버팀목이자 기둥 역할을 한다. 그에게 가족과 직원들이 얼마나 큰 짐일지 늘 생각해왔는데, 공연을 이어갈수록 그 무게감이 더 크게 와닿는다. 현숙과 실제 내가 맞닿은 지점이 더 증폭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오래 지속되는 연극은 캐릭터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하는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될 대사
“당신, 따뜻한 사람이에요. 차가워지지 말아요.” 현숙이 두식(박해수)과 헤어지며 하는 말이다. 두식이 욕망에 눈이 먼 매정한 사람 같아도 마음은 따뜻하다는 걸 현숙은 알고 있다. 두식뿐 아니라 <벚꽃동산>의 모든 인물 중 ‘최악의 빌런’은 없다.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뼈가 있거나 칼날 같은 말을 던지지만, 결국 온기를 지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연극 무대란
집 같은 곳. 마냥 편하다는 건 아니다. 편안함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늘 함께한다. 다른 매체에서 연기하다가 오랜만에 연극을 하면 무척 떨린다. 그런데 조명이 탁 켜진 무대에 올라 첫 대사를 하고 동선을 따라 움직일 때, 관객이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공연을 잘 이끌어가야겠다는 일종의 주인의식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