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소개 사진
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의 김혜미 감독

클라이밍 

개봉 2021.06.16.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애니메이션
국가 한국
러닝타임 77분

유망한 클라이밍 선수 ‘세현’에게 어느 밤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다른 세계의 ‘세현’. 그곳에서 세현은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미스터리 공포 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은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심도 깊게 보여준다. 특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커다란 혼란과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 세현의 꿈과 현실과 망상을 넘나들며 리얼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김혜미 감독은 “외면하기에는 내 안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감정들을 오롯이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클라이밍>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2개의 상을 수상하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6월 16일 개봉을 앞둔 <클라이밍>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여성 스포츠 선수의 임신과 출산을 이 정도로 현실적이고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을 본 적이 없어요. 이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임신을 하면서 제가 느꼈던 낯선 감정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어요. 임신에 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많은 반면 그 반대의 영화는 드물죠. 산모의 내적 변화에 집중한 영화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임신을 통한 산모의 어두운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임신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임신 당시 ‘왜 나는 남들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죄책감으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감정들이었기에 외면하고 감추고 싶지만은 않았죠. 스스로 받아들이고 적나라하게 펼쳐서 오롯이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 어둠을 들여다보면서 진짜 제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 할 수 있길 바랐어요.
이러한 과정은 어둠을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야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빛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음을 지금은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이 이야기를 왜 ‘클라이밍 선수’를 통해 하기로 했나요?  

임신했을 때 가장 제약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강한 신체를 이용하는 직업군을 생각했어요. 클라이머는 자신의 단련된 몸을 이용하기 때문에 몸무게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직접적인 이유가 맘에 들기도 했고요. 클라이밍 경기 중 ‘리드’ 경기는 경기 당일 홀드(돌 모양의 작은 손잡이) 들을 분석하고 자신이 오를 길을 선택해서 다른 선수와 경쟁 없이 혼자 올라가는 시합이에요. 떨어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꼭 완등을 하지 않아도 경기에 따라 우승을 할 수도 있어요. 저는 이 점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대부분의 삶과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멋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했죠.
로프는 클라이머에게 생명줄과 같을 텐데요, 영화 <클라이밍>에서는 이 생명줄이 아이의 탯줄을 상징하기도 해요. 이 생명줄을 양쪽에서 잡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클라이머(엄마)와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클라이머로서 완벽하게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엄마와 반드시 태어나야 하는 아이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일거라 생각했죠. 놓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클라이밍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 눈에 띄어요. 클라이밍은 스포츠 뉴스에서도 접하기 흔치 않은 분야인데, 현실 고증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궁금합니다.

스태프들과 함께 클라이밍 단체 레슨을 받기도 했고, 주로 유튜브에서 클라이머 선수들의 영상을 많이 참고했어요. 3D 팀장님이 실제로 클라이밍을 하고 계셔서 클라이머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암장과 클라이밍 소품들을 3D로 구현할 때에도 사실적인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명암이 선명하게 드러난 섬뜩한 그림체가 눈에 띄어요. 이전의 단편들에서 선보인 그림과도 다른데 이러한 스타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캐릭터를 클라이밍 선수의 특성대로 마르고 근육 있는 몸으로 설정했는데 내용에 맞춰 좀 더 왜곡되고 비현실적인 형태를 갖추게 됐어요.
인체와 비례가 닮은 캐릭터 일수록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어색함이 더 부각돼 보일 수 있어요. 기존의 3D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캐릭터라면 관객들이 그만큼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클라이밍>만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했어요. 기존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차별성을 두는 것이 <클라이밍>만의 개성을 더 드러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독립장편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했기에 최선의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면도 있고요.

출산에 대한 여성의 공포가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죠. ‘아이를 위해서라도 좋은 생각’ 이라거나, ‘가족끼리는 입덧도 같이 한다더니’ 같은 식으로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취급되는 기괴한 통념을 비트는 대사가 많이 나와요. 

주변에서 하는 말들에 특별한 악의는 없다는 걸 알아요. 익숙해진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겠죠. 다만 듣는 입장에서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특정한 얘기가 있다면, 그 부분을 넘어가지 말고 계속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분명히 있고, 그것을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세현의 남자친구 ‘우인’이 입체적이었어요. 무해하고 걱정해주는 듯 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취할 땐 폭력적이죠. 

극중 모든 캐릭터는 저의 편견이 반영되어 있어요. 제가 남자친구였어도 비슷한 행동과 말을 했을 것 같았죠. 남성과 여성을 떠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도 결국 타인의 불안과 고통은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마음이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죠. ‘우인’을 통해서 주인공 ‘세현’의 고민도 타인에게 이해되기는 어렵고 스스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이 진행될수록 ‘세현’의 망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져요. 나중에는 그 구분이 중요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진짜 하고자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가 연출자의 큰 고민일 텐데, 이 작품에서 쓰인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임신을 했을 때 임신한 내 모습에 적응하기가 늘 어려웠어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할까요. 꿈에서는 임신 전의 나로 자주 등장했고, 가끔 꿈에서 술을 마시고는 뒤늦게 놀라서 깨기도 했어요. 현실의 나와 과거의 내가 뒤섞인 몽환적인 기분을 자주 느꼈는데, 이런 부분이 영화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이것이 클라이머인 주인공과 산모인 주인공이 평행세계로 존재하며 임신을 매개체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설정에 모티브가 됐죠.

첫 장편 데뷔작인 만큼, 만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내가 완성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가장 컸어요. 3D 애니메이션 제작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항상 의심하고 불안해했죠.

그 시기는 어떻게 지나왔나요? 

처음 생각했던 연출 의도가 흔들리지 않게 마지막 편집 때까지 계속 고민을 했어요.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고 연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들을 확인하고 다시 고민했죠. 고민을 주로 했네요.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기도 했고요.

연출자로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에 얼마나 잘 반영된 것 같은지요.

영화 속의 모든 선택은 연출의도를 통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과 창작자 사이에 의도된 연출 외에는 존재할 수 없기를,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하고 만들었어요. 얼마나 잘 반영되었는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지만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클라이밍>을 본 관객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저 역시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데요, 임신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편견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편견이 있었고, 그 편견을 통해 이면에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